일본의 비정규 노동 동향2-비정규 노동과 과로사 위험군은 동전의 양면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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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직수 센터 정책위원



일본에서도 고용의 질 저하, 비정규 노동 및 불안정 노동 확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이 어떤 것인지 검토해 보기에 앞서 정규직-비정규직 분단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정규직, ‘정사원’, 그리고 ‘정규 종업원’


일본에서 ‘정규직’에 해당하는 표현은 ‘정사원’이다. ‘정사원’이라는 용어는 이미 1970년대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공식문서에서는 ‘정사원’이라는 표기가 1980년 <노동백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내용을 검토해 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에 걸쳐 남성 정사원의 장시간 노동과 가계 보조형 여성 파트타임 노동이 짝을 이루는 노동 시장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규 종업원’이라는 표현은 이미 1955년에 홋카이도 도립 노동과학연구소가 간행한 백서인 <임시공>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정규 종업원은 ‘사원, 공원, 수습사원, 촉탁을 포함’하는 범주로 정의된다. 이 백서는 임시공 중에서 매년 다수가 정규 종업원으로 채용되고 있으나, 임시공의 총수에는 변화가 없고, 임시공의 근속기간 또한 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임시공의 항구화가 전후 폐지된 신분제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논평하고 있다.

그밖에도 ‘정규 종업원’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 말에 작성된 <고용심의회 제2부회 심의 참고자료>의 ‘임시공, 사외공에 대하여’라는 항목에 등장한다. 그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공장의 현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 직원에 대해서도 ‘사원’, ‘본공’ 내지 ‘상용공’에 포함시켜 정규 종업원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분단 구조 형성


이상과 같이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정규 종업원’과 ‘사외공을 포함한 임시공’의 신분제적 격차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자영업자 및 가족 종사자가 전체 취업자의 과반을 차지한 반면, 임금 노동자는 소수에 머물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본공-임시공의 격차 구조가 어떻게 정규 고용-비정규 고용 형태로 변화하였는지 살펴보자. 1960년대 중반 이후 사외공은 별도로 하더라도 임시공은 줄어들었고,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비정규 고용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뒤이어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와 세계 경제 불황 시기에는 우선 임시공, 계절공, 일용직 등이 고용 조정의 대상이 되었고, 본공 또한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조선 및 철강 부문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고 물결이 일어났다. 이후 일본 경제는 생산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나, 본공의 고용 규모는 정체된 반면, 불안정 고용층이 증가하였고, 1980년대 들어 현재와 같은 정규직-비정규직 분단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비정규직 확산이 정규직에 미친 영향


노동조합이 기업의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력을 지녔던 시절에는 적어도 남성 정규 노동자는 일정 정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노동조합의 규제력은 서서히 쇠퇴하였고, 정규직 고용에 대한 보호조차도 약화되었다. 잔업 수당이나 야근 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결과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포함한 정신장해가 증가하였다. 대기업 노동자와 공무원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직장 내에서는 정규직 수가 줄어들고 이제껏 정규직이 담당해오던 일들을 파견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맡게 되면서 정규직이 받는 압박이 커졌다. 정규직인 만큼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이 강화되고 보다 큰 책임을 강요당하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성과주의 인사 관리의 확산은 이러한 압박을 한층 강화하였다.

이처럼 전반적인 비정규직화가 확산됨에 따라 정규직의 기업 구속성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이처럼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증가와 정규직 축소의 악순환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비정규직과 상대적 고소득인 정규직 모두 고용 및 노동의 내용에 있어 곤란을 겪고 있다. 양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문제에 접근할 때에도 정규직-비정규직 간 단순 소득 격차보다는 상호 규정 관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늬만 정규직, 주변적 정규직의 확대


최근 정규직 노동의 또 다른 특징은 ‘무늬만 정규직(이름뿐인 정규직)’, 주변적 정규직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지대가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이라 함은 무기고용, 직접고용, 전일제고용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를 말하는데, 직장 내에서는 정규직으로 통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취업구조 기본조사’의 결과에서도 상당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2012년에는 비정규 고용 규모가 처음으로 2천만 명을 돌파하였고, 비정규직 비율이 40퍼센트 가까이 나타나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고용 계약 기간 정함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2012년 취업구조 기본조사에서 처음으로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중 고용 기간에 정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정규 고용은 정규직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고용 기간의 정함 유무를 알지 못하는 정규 고용의 경우에는, 사용자와의 고용 계약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경우, 또는 직장 내에서는 정규직으로 통칭되나 사실상 손쉽게 해고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고용 계약 기간의 정함 유무에 별 의미가 없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이른바 ‘블랙기업’에서는 단기간에 대량 이직을 전제로 신규 졸업자들을 대량 채용하고 있으나,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는 ‘정사원’으로 채용되더라도 고용 계약 기간에 정함이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와 같이 ‘무늬만’ 정규직을 비정규직에 포함시키면 그 비율은 40퍼센트를 상회한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회색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고용 계약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고용의 경우에도 승급과 상여금이 없음을 전제로 ‘정규직’을 채용한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단 취업을 하더라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므로 사실상 기간의 정해진 고용과 다름없는 것이다. 정사원이라는 직함을 주고서는 단기간 동안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기업 관행이 ‘회색지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는 서비스업, 특히 도소매 숙박업, 음식업 등을 중심으로, 연령대별로는 30대 미만층과 60대 이상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청년층의 고실업 및 취업난, 그리고 연금 수급 연령대인 고령층의 빈곤 상황을 반영한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확대되는 과로사 위험군


이제 비정규 고용과 과로사 위험군의 결합이 일본의 고용 및 노동의 표준모델이 되었다. 과로사 위험군 일자리라 해도 정규직 지위를 한 번 잃게 되면 복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취업구조 기본조사’는 통상 ‘1주간 취업 시간’을 조사해 오고 있는데, 2007년까지는 ‘65시간 이상’이 최대치의 선택지였던 것이, 2012년부터 ‘65~74시간’, ‘75시간 이상’의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이처럼 공식 통계 조사의 선택지가 개정된 것 자체가 초장시간 노동의 확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2012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297만 명으로 전체 남성 정규직의 13퍼센트에 달한다. 일본의 연평균 평일 일수는 248일 전후로서, 250일 이상 일한다 함은 토·일요일 및 공휴일을 빼면 유급 휴가도 쓰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업 시간 또한 월간 80시간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후생노동성도 인정하는 과로사 위험라인을 넘어선 초장시간 노동이다. 주75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에는 월간 잔업 시간이 140시간을 넘게 된다. 비정상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초장시간 노동이지만, 이에 해당하는 남성 정규직은 약62만 명에 이른다.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장시간 노동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 및 정신질환을 유발한다. 2011년 ‘사회생활 기본조사’에 의하면 전체 노동자 중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8.3퍼센트인데,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 비율이 13.4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12년 뇌심혈 관계 질환 산재보상 지급 결정 건수는 338건, 정신장해 지급 결정 건수는 475건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은 정규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취업구조 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비정규 노동자 중 전일제와 유사한 수준인 주 35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40퍼센트 이상이며, 주 43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은 4분의 1에 이른다. 더욱이, 주 43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 중 30퍼센트 정도가 연간 소득 200만 엔 미만의 저임금층이다. 더욱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중에는 두 개 이상의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최근 10여 년 간 이러한 전일제 비정규직의 저임금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연간 소득 200만 엔 미만 비율이 2002년에는 26퍼센트였으나, 2012년에는 30.7퍼센트로 증가하였다. 과로사 위험군이 비정규 고용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9년부터 고용 형태별 과로사 및 정신장해 등의 산재 인정 현황을 공표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경우 뇌심혈 관계 질환의 인정 건수는 전체의 수퍼센트 수준에 머물러있는 반면, 정신장해는 10퍼센트 전후를 점하고 있다. 이는 보상 지급 결정 건수이므로, 신청 건수는 몇 배에 이르며, 신청을 단념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2012년의 뇌심혈 관계 질환 산재 보상 신청 건수는 842건, 정신장해 등의 신청 건수는 1,257건이나, 신청 건수에 대해 고용 형태별 파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밤일하는 노동자, 떠날 수밖에 없는 노동자


1일 노동 시간 외에도 어떤 시간대에 일하는가 또한 노동자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심야 시간대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야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특히 순환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심야 노동과 교대 근무가 발암 위험을 높인다는 점도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 조건은 높은 이직률로 이어진다. 최근 수 년 간의 이직률을 검토해보면, 2009년 상반기에 9.6퍼센트에 이른 뒤 소폭 감소하다가 2011년부터 다시 상승하여 2013년 상반기에는 8.9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특히 장시간 노동 관행이 확산되어 있는 산업에서 이직률이 높다.

다수의 노동 예비군을 포괄하고 있는 노동 시장 상황은 기업들로 하여금 손쉽게 인력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 그 한 예가 애니메이션 업계다.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애니메이터는 노동자가 아니라 크리에이터’라는 구실 아래 개인 사업자 형태로 고용하여 노동기준법의 규제를 회피하는 수법이 만연해 있다. 2014년 4월에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한 청년 노동자의 과로자살이 산업 재해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이 노동자는 월 600시간을 근무해왔고, 잔업이 많을 때에는 잔업 시간이 월 344시간에 이르기도 하였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편승하여, 경영자들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채 ‘재량노동제’를 구실로 무제한의 시간외 노동과 휴일 노동을 강제함은 물론, 사실상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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