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삼성_일본 미쯔보시(三星)화학공업 후쿠이 공장의 직업성 암 산재 인정 투쟁

by 센터 posted Ju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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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노동과 환경, 그리고 직업병


올봄 대지진이 발생한 일본 쿠마모토현 해안지역에는 미나마타시라는 소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는 이곳에서 발생한 일본 전후 최대의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이 공식 확인된 지 6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1)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인근 화학공장에서 누출된 유기수은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노동조합 운동은 역사적으로 공해병을 비롯한 환경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예외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 미나마타병의 경우만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적극적인 연대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문제가 발생한 지 십수 년이 지난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와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와 같은 연합조직이 결성되어 노동조합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이보다 앞서 시작된 일본의 유해물질 감시 운동에서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작업장 내 직업병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주류 노동조합 운동은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노동조합이 화학일반노련이다. 채 만 명이 안되는 조합원을 둔 화학일반노련은 주로 화학업종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유사하게 비정규직 이상으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커다란 문제임은 잘 알려져 있다. 고용과 생활의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위험’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과 하청 관계 말단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쯔보시화학공업의 직업성 암 문제


이하에서는 지난해 일본의 중소영세업체인 미쯔보시화학공업 후쿠이 공장(후쿠이현 후쿠이시)에서 화학 물질(방향족 아민) 노출에 의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방광암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소개한다. 얄궂게도 ‘미쯔보시’의 한자 표기는 한국의 삼성과 동일하다. 최근 일본의 노동 안전보건 이슈들 가운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사건의 특징은 영세규모 사업장의 한 노동자가 직장 내 노동자들의 방광암 다발에 의심을 품고 지역 내 노동조합에 상담을 요청하여 조사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직장 내 노동조합 결성에 이르러 산재 인정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쯔보시화학공업은 1950년 설립되어 사이타마, 후쿠시마, 후쿠이에 공장을 둔, 총 2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염료 중간물 제조회사이다. 문제가 발생한 후쿠이 공장은 1989년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4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후쿠이 공장 노동자인 다나카 야스히로 씨(현 미쯔보시화학공업노동조합 위원장)는 지난해 9월 지역 내 노동조합인 화학일반노련 간사이 지방본부를 찾아 문제를 호소하였고, 간사이 지방본부는 즉시 사업장 노동 환경 및 취급 물질에 관한 조사에 들어갔다. 후쿠이 공장에서는 방향족 아민 물질(오르토 톨루이딘 등)을 원료로 아세틸화 반응을 통해 염료 중간물을 생산하고 있었다. 문제의 물질은 20여 년간의 잠복기간을 거쳐 작업자의 방광암을 유발하고 있었다.2)


방향족 아민의 일종인 오르토 톨루이딘이라는 발암 물질 자체는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1급으로 규정하고 있는 발암 물질로서,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영세규모사업장의 특성상 적절한 위험 물질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그밖에도 가스와 분진이 만연하는 등 노동 환경 전반이 매우 열악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노동자들은 문제제기는커녕 일상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출로 인한 발병률이 10만 명당 20여 명꼴인 화학 물질로 인해 후쿠이 공장에서는 2014년 이후 40여 명의 노동자 가운데 여섯 명의 암 발병이 확인되었다.


기자회견.jpg

후생노동성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있는 방광암 환자 타카야마 켄지 씨(좌측)와 다나카 야스히로 씨(우측)


화학일반노련 간사이 지방본부와 다나카 씨의 대응


후쿠이 공장의 주된 공정은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반응 공정과, 반응 결과로 생성된 결정을 세척하고 건조하는 건조 공정으로 구분된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건조 공정인데, 고온다습한 작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2011년 이전까지 사측은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노동자들에게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작업하도록 하였으며, 2011년 이후로도 공장 내에 비치하게 된 물질안전보건자료(SDS)에 발암 위험성이 기재된 것을 보고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기재된 위험성은 동물실험 결과라며 개선 요구를 무시하였다. 나아가 2014년 이후 일부 노동자들에게서 방광암이 발병하자 손을 씻지 않고 소변을 봐서 그렇다는 둥 문제의 책임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돌렸다.


이에 간사이 지방본부, 그리고 1996년 화학 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적절한 취급 방법의 확립을 목표로 전문가들과 현장 노동자 및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하여 화학 물질 관련 조사 및 대응 등의 활동을 벌여온 ‘화학 물질과 노동자 건강 연구회’ 등은 후쿠이 공장의 다나카 씨를 비롯한 노동자들과 함께 대응 및 방지 대책, SDS 등에 관한 학습회를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2011년에 이르기까지 동 사업장에 SDS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던 사실, 비치 이후 해당 작업자가 작업 환경 개선을 요청하였으나 사측이 이를 거부하였던 사실 등이 확인되었다. 이후 간사이 지방본부와 다나카 씨는 과도한 화학 물질 노출의 주된 요인인 작업 환경 및 사측의 관행 개선이 우선과제라 보고 노동조합 결성 및 단체 교섭을 통한 환경 개선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다나카 씨도 육안으로 혈뇨를 확인하여 진찰받은 결과 방광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한 달 뒤 방광 적출 수술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다나카 씨마저 방광암을 앓게 되자 그간 문제를 숨기려 했던 사측도 결국 후쿠이 노동국에 보고하게 되었다. 이후 12월 들어 노동기준감독서의 현장조사가 이루어지는 한편, 다나카 씨 등이 산재신청서를 사측에 제출하였으나, 사측은 계속하여 서명을 거부하였다. 이에 다나카 씨는 간사이 지방본부와 함께 노동기준국 및 노동기준감독서를 방문하여 기자 회견을 열었고, 행정당국도 공장을 방문하여 가동을 중단하도록 지도하였다. 사측은 지도를 받아들여 가동을 중단하였고, 다나카 씨와 간사이 지방본부는 다시금 후생노동성 측에 조속한 산재 인정, 방향족 아민류의 특별 관리 대상 지정, 방향족 아민류 전반에 대한 발암성 조사 실시, 해당 사업장의 공정 개선 지도, 적절한 증거 보전을 요청하였다.


이윽고 올해 1월 하순에는 화학일반노련 산하에 미쯔보시 화학공업 지부가 결성되었고, 후생노동성의 현장조사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후생노동성은 오르토 톨루이딘을 취급하고 있는 76개 사업장 가운데 9개 사업장3)의 20명(종래의 15명에서 5명이 늘어남)의 노동자에게서 방광암이 발병하였으며4), 주된 원인은 분말상의 오르토 톨루이딘 가공물질의 피부를 통한 흡수로 판단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20명의 노동자 가운데 7명이 산재 신청을 한 상태로써 이제 후생노동성 측이 전문가 검토회를 통해 산재 인정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현장조사.jpg

미쯔보시화학공업 후쿠이 공장에 대한 행정당국의 현장조사


한국과 일본의 같고도 또 다른 모습들


이상의 과정에 대해 화학일반노련과 후쿠이 공장 노동자들은 오르토 톨루이딘 이외의 다른 방향족 아민류에 의한 방광암 산재 인정 사례(이시바시 사건 등)가 있음에도 역학 조사가 지연되는 등 산재 인정에 소극적인 후생노동성5) 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산재 인정 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사례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는 단연 노동감독행정의 차이다. 담당 행정기관인 노동국과 노동기준감독서가 원칙에 따라 조사를 실시하고 직접 기자 회견 등을 통해 문제를 공개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어디까지나 행정기관으로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하기보다는 제기된 문제에 대한 대응이 주를 이루지만, 한국에서 많은 경우 발견되는 기업 측의 ‘눈치 보기’에만 바쁜 형식적 대응이나 문제의 외면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물론 해당 사례가 중소영세기업 사례라는 점, 노동조합이 적극적인 요구를 제기했다는 점 등도 작용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방향족 아민 노출에 의한 방광암 문제에 대해 행정 당국인 후생노동성이 공식적으로 직업기인성에 대한 인과 관계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조사 발표를 통해 오르토 톨루이딘이 발암 물질임을 명시하였고, 방광암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전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노동감독행정이 한국처럼 허술하지는 않다. 이미 수년 전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인쇄업계의 화학 물질 노출로 인한 담관암 발생 문제에 대해서도 간사이 지방본부의 활동에 힘입어 오사카에서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은 적이 있고(대표적으로 SANYO-CYP 등),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담관암에 대한 산재 인정이 이어졌는데, 당시에도 노동기준감독 당국은 해당 업체들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이는 등 비교적 진지한 조사 활동을 벌인 바 있다.


후쿠이 공장 사건을 비롯한 직업성 방광암에 대해 산재가 인정되더라도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잃어버린 몸과 마음의 건강은 다시 찾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산재신청서를 제출해도 증명거부 사유서를 건네줄 뿐이었던 사측에 대한 원망, 환자들의 건강과 보상은 생각지도 않고 조업 재개만을 원하는 사측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이처럼 현재까지도 후쿠이 공장 노동자들은 질병에 대한 불안과 사측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몇 개월만 빨리 암이 발견되었더라도 방광을 적출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의 호소와 더불어 언제 방광암이 발병할지 모르는 비환자들의 두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조속한 산재 인정과 규제 강화, 적절한 보상과 사후 관리 조치 등을 기대해본다. 일본 내에서 이번 사건은 노동 안전보건 문제에 있어 노동조합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난 5월부터 공기업인 항공사를 배경으로 한 TV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이 드라마의 초반부에서는 새로운 집행부를 맞이한 노동조합이 한 정비직 노동자의 사고사를 계기로 안전을 위한 노동 조건 확보, 임시직의 정규직화, 인력 확보를 내걸고 싸워 승리를 얻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한때 일본의 ‘안전제일’ 이면에는 어용노조와 사측, 그리고 정부를 상대로 쟁취해 온, 소수 나마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원작대로라면 그 후 20여 년간 노동조합은 파괴되고, 현장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상 초유의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다. 드라마의 원작인 야마사키 토요코의 소설 《지지 않는 태양》은 바로 1985년에 일어난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 사고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 인원 524명 가운데 52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현실에서’ 다시 써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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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고 긴 법정 투쟁을 통해 2004년에는 기업 외에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인정되었다.

2)   이미 1895년 독일의 한 의사가 염료공장에서 사용되는 방향족 아민 물질인 아닐린이 방광암을 유발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벤지딘은 일본에서 1950년대 후반 암 유발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1972년 노동안전위생법 제55조에 의해 생산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3)   미쯔보시 화학공업 공장 이외에 방광암이 발견된 사업장들 역시 대부분 30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었다.

4)   후쿠이 공장에서는 오르토 톨루이딘 외에도 아닐린 등 합계 5종의 방향족 아민류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들 5종의 물질은 현재 일본에서 수입 및 제조의 금지 대상은 아니지만 규제가 검토될 예정이다.

5)   후생노동성은 오르토 톨루이딘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지난 2007년 실시한 평가 결과 ‘종합적 위험’은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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