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덕한 지역·노동 활동가_최진혁 회원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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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최진혁.jpg

  • 인터뷰이 최진혁 회원, 노무법인 해담 노무사
  • 인터뷰어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격월간 《비정규노동》 160호 회원 인터뷰 주인공은 최진혁 회원이다. 그는 서울노동권익센터(이하 권익센터) 설립 때부터 함께한 초창기 멤버다. 작년 초에 권익센터를 퇴사하고, 현재는 대학원에서 노사관계를 공부하며 틈틈이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교육위원이기도 하다.

 

운동권 끝자락에서

 

그의 부모님은 강원도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상경했다. 그는 어릴 땐 약간 불같은 면이 있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잦아졌고, 학교 공부를 충실히 했다. 머리가 나름 좋아 성적이 잘 나왔다. 법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이었다. 아버지 직업이 교사였던 터라 경제적 어려움은 딱히 없었다.

당시 대학은 운동권이 사그라들 무렵이었다. 그는 어쩌다 한 번씩 집회에 나갔고, 학회 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스니 사회주의니 하는 것들을 공부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활동한 건 아니었다. 운동권 내부의 수직적인 문화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채 어정쩡한 자리에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사범대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에 맞추다 보니 법대에 갔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다. 법을 공부했으나, 진짜 하고 싶은 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공부하면서 소외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니 왜 공부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타인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웠으나 마땅히 뒤따르는 거라고 봤다. 그러나 스스로가 앎과 삶으로부터 소외되었단 걸 점차 깨달았다. 불편했고 거슬렸다. 실존적 물음에 직면했다.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택한 건 공부였다. 철학회 활동을 하면서 인간 존재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들여다봤다. 특히 마르크스의 분석에 크게 공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소외되고 착취가 일어나는지 배웠다.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교육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련 끝에 찾아온 육아

 

당시 법학 전공자는 대부분 고시를 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원을 선택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담당 교수는 그에게 고시를 보길 권유했다. 법학자가 되려면 사법시험을 붙는 게 필수라는 이유에서였다.

그즈음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교통사고가 나 허리를 다쳤고, 고시 공부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늦게 시작한 공부인데 수험 기간이 길어졌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좋은 일도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그는 육아를 시작했다. 경제적인 부분은 아내가 맡았다. 틈틈이 간디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 과정을 다니고, 수유너머에서 마르크스 연구도 더 했다. 마포 지역의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 내 아이와 마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돕고 싶었다. 놀이터에선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젊은 아빠라고 동네 아줌마들의 귀여움도 받았다. 마을학교에서 인턴 교사와 배드민턴 강사를 했다. 이후에는 마을극장 스텝으로 일했다.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과 가장 가까운 경험이 문화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아이를 키우면서 마을 아이들을 만나기도 좋았다. 그 외에도 마을 합창단, 마을 사람 인터뷰와 책 작업, 거리 공연 등 폭넓게 연이 닿는 대로 다양한 마을 활동을 했다. 그는 성격상 앞장서서 투쟁하는 것에 맞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걸 만들어나가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가르치고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지역과 노동

 

마을 활동이 즐거웠지만 고민도 있었다.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경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차에 사회적 기업으로 지원을 받던 마을극장에 지원이 끊기면서 문을 닫았다(이후 협동조합으로 전환). 앞으로 뭘 할지 고민하다 법 공부를 해둔 것도 있고 노동에 관심도 있던 터라 노무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동과 교육을 연계해 지역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년 공부 끝에 노무사에 합격한 그는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을 찾아갔다. ‘노동자의 벗’이라는 수습 노무사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곳이었다. 그는 운영팀 총무를 했다. 그리고 수습 기간과 그 이후에 사실상 알바노조 활동가로 일했다.

1년 정도 되어갈 무렵, 서울에 막 노동센터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25개 구에 노동센터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방향으로 이야기되었다. 그러다 광역센터를 만드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지금의 권익센터다). 그는 노동센터 활동을 함께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마을 활동 경험이 있던 그로서는 지역에 기반을 둔 노동센터에 끌렸다. 권익센터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권익센터 활동

 

그는 권익센터에서 원 없이 노동 상담을 했다. 당시 권익센터에는 그를 포함해 노무사가 두 명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노동센터가 각 구나 권역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후 인원 변동이 생기면서 교육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조가 생기면서 사무국장도 맡았다.

권익센터는 서울시에서 민간위탁을 해 운영하는 기관이다. 그는 민과 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운동적인 가치를 좇다가도 행정의 벽에 막히기 일쑤였다. 노동·시민사회 단체와 서울시 양쪽에서 불만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상근자가 늘었는데, 그는 중간 관리자로서 조직 내 관계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았다. 거기에 더해 노동조합 활동까지 하게 되면서 여러모로 힘에 부쳤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권익센터는 지역 운동과 비정규 노동 운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그는 권익센터 설립 단계부터 함께했단 사실을 뿌듯해했다. 또 권익센터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수많은 노동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보다 경비, 청소, 알바, 돌봄 노동자 등 다양한 비정규 노동자 상담을 많이 하기는 힘들 거라고 자부했다.

 

수신제가

 

그는 권익센터 활동을 하면서 노무사로서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상담 비중이 크다 보니 전문성을 쌓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욕구는 늘 있었다. 센터 일을 하면서는 도무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코로나19 시기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학원도 제대로 안 다니는 아이들이 방치된 걸 깨달았다.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리면서 그는 퇴사를 결심했다. 공부도 하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현재 대학원에서 노사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개별 법률 지원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싶었다. 공부하면서 노동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단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오랫동안 노동센터 활동을 하면서 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다 보니, 굵직굵직한 산업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무지했다. 

 

후덕한 얼굴

 

그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리고 현재 집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자극을 받았으면 했는데 아직은 효과가 미미하다. 어찌 됐든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늦게 시작한 공부를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릴 적만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올해 논문을 마무리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주제는 플랫폼 노동 쪽을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 통제와 플랫폼 기업의 책임 문제다. 정책과 교육 역량을 갖춘 노무사로서 자리도 잡고 싶어 했다.

끝으로 그는 후덕하게 늙고 싶다는 인생 목표를 밝혔다.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살아온 삶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는 따뜻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그래서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거창하진 않아도 일상에서 주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 지금까지 이런 맥락에서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운동을 꿈꿨다. 더 후덕해질 그의 얼굴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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