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현장] PD가 되려는 자, 비정규직 ‘조연출’을 견뎌라

by 센터 posted Nov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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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되려는 자, 비정규직 ‘조연출’을 견뎌라

 

지서연 프리랜서 PD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던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관련 학과로 진학해 시사 PD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PD7년째 방송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홍보 영상, 사내 방송 등 다양하게 일하고 있다.

지금이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이라도 생겼지만 내가 조연출일 당시에는 조연출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었다. 구조적으로 열악했다. 처음 외주제작사의 프리랜서 조연출로 들어가서 시작했던 프로그램의 CP는 시사 때우리 회사 팀장과 PD를 향해 갑질, 욕설을 일삼았던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 CP의 말을 녹취한 파일이 유출되어 CP가 해고당한 일이 있었다. 나는 시사 자리에는 안 나갔지만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들었고, 회의록을 봐도 욕설이 난무했다. 지금부터 어디서도 속 시원히 말하기 힘들었던 프리랜서 PD가 겪는 이야기를 전하겠다.

 

열정만 가지고 PD가 될 수 있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첫째로 월급이었다. 20167월 당시 1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는데, 고시원 한 달 월세가 40만 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자취생에겐 턱없이 부족한 급여였다. 둘째로, ‘작업량이었다. 당연히 돈이 적은 것도 힘들었는데 당시 작업량도 엄청났다.

PD들의 촬영 방식이 일명 테이프 방식이다 보니 조연출이 테이프 캡처를 받아야 하는데 많을 때는 18장까지 되다 보니 업무량 과다로 매우 힘들었다. 납품기한이 정해져 있는 방송 특성상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샌 적도 많았다.

그래도 임금은 계속 올랐다. 2018년도 7월 무렵으로 기억한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아 월 180만 원 이상으로 급여가 올랐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제작사에서는 퇴직금 미지급 문제도 발생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조연출은 워낙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최저임금에 맞춰 올려준 것이다. 조연출이야 원래 급여가 워낙 낮았으니 인상이 가능했지만, 10년차, 20년차 PD는 조연출의 인상분만큼 올려주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되레 낮은 연차의 PD를 고용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4~7년차 PD를 제작사에서 가장 선호하는데 10년차 이상의 PD보다 말도 잘 듣고, 급여를 적게 줘도 되기 때문이다. PD가 아예 회사를 차려서 대표가 되거나 팀장급 이상의 PD가 되지 않으면, 높은 연차의 임금을 감당하기 힘든 제작사, 방송사에서는 채용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 보니성평등해진 방송계

나는 조연출 당시 나이 많은 남자 선배들 사이에서 일을 배웠다. 말로는 남자 여자 구별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 방송계가 남자PD가 많이 줄고, 여자PD가 많이 늘어나고, 예전보다 여성 스태프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이 되어 가고 있다.

예전엔 여성 조연출을 출장에 데리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제작비(숙박비) 절감을 위해 남성 조연출만 데리고 가는 것이다. 여성 조연출은 촬영 기회를 얻고 싶지만 제외되고, 업무 스펙트럼을 넓힐 기회를 얻기 힘들다. 그래도 요즘은 남성조연출이 줄었기 때문에 여성조연출이라도 데리고 가는 추세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방송계의 성평등은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그냥 남성 스태프가 줄었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된 것 같다. 그리고 안 좋았던 환경 속에서도 여성조연출이 참고 견디며 PD가 되어 길을 만들어 준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PD 이야기

같은 제작사의 조연출 후배가 맡은 방송의 PD랑 친해졌었다. 다같이 힘든 방송 생활을 하는데, 자기네 프로그램 후배의 회사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도와주시고, 야간작업도 같이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정말 따듯한 선배였고, ‘인간적인 PD’였다. 그런 선배가 아프리카에서 촬영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사건을 접하고 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독립PD협회에서 연 추모제에도 참석했다. 그 선배의 안타까운 사망은 내가 방송계를 변화시키고 싶어진 계기가 됐다. 그 선배가 바로 김광일 PD.

출근하면 월급을 받고, 명절이 끼어 있는 달에도 같은 월급을 받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PD는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수한 상황에서 방송이 결방될 때의 이야기인데 올림픽, 아시안게임, 명절, 선거 등의 상황에서 PD들은 프로그램 작업을 다 해두고도 정당한 급여를 못 받는 것이다. 올림픽 경우 거의 한 달까지도 급여를 받지 못한다. 예비분을 작업해놓아도 방송이 안 되면 작업한 대가를 아예 지급 받지 못한다.

계약할 때도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으로 진행한다. 4대 보험 가입은 말도 안 되고, 업무 영역이 명확하지도 않다. PD인데 자막을 치라고 하면 쳐야 한다. 조연출 한 명 붙여주지 않으면 오롯이 나 혼자 해야 한다. 촬영 중 다쳐도 산업재해 처리가 거의 안 된다. 나는 지방에서 촬영하다가 개물림 사고를 당했는데 회사에서 50만 원을 받았다. 프리랜서 PD에게 치료비를 50만 원이나 주는 일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같은 방송에서 다른 스태프가 다친 적도 있었다는데 그때는 그냥 넘어갔다고 하는 걸 보아도 그렇다.

또 작가나 성우, 배우는 참여한 프로그램이 재방송을 했을 때 재방송료를 받는데, PD는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이 방송사에 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협회는 재방송료를 쟁취했지만 아직까지 PD들은 재방송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PD들이 만든 제작물의 저작권을 일부 인정받게 되어 재방송료를 받을 수 있도록 PD들이 뭉쳤으면 좋겠다.

 

PD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며

모든 방송국, 외주 구별 없이 PD의 안전을 보장해주길 원한다. 나의 경우 개물림 사고도 있고, PD들이 마감에 쫓겨 급하게 일하다 보면 다치는 경우가 많다. 제작 기간의 여유가 있기를 바라고, 다칠 경우에는 산재 처리가 되길 바란다. 대체 인력 보유도 필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열정 갖고 조연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멀리 출장 가고, 밤도 새야 하는 조연출 일을 최저 시급받고 하려는 분위기가 아니다. 적어도 안전 보장이 된다면 조연출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래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영상 만드는 PD라는 일이 좋고, 방송계를 개선하여 신입 PD, 조연출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앞서 말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선배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 안 나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이후 방송계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는 뜻을 담아 아는 PD와 막내 작가와 팀을 꾸려 기획안을 썼고, 방송 관련 노동 단체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보기도 했다. 2018년도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가 생겼을 때도 바로 가입했다.

처음 내가 조연출 일을 시작했던 당시보다는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그래서 계속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프리랜서PD 들이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PD가 되고, 편당 페이 제도가 월급제로 바뀌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을 시작할 땐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길 바란다. 이렇게 되면 올림픽 등 특수한 상황에서도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날도 보장이 되고, 다쳐도 보상을 받으니까. 언젠가 이런 나의 염원들이 다 이루어져서 PD를 꿈꾸는 이들, 힘들어도 PD라는 직업을 놓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욱 나은 방송계가 될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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