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연대] 시선이 머무는 곳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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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시선이 머무르는 지점은 관찰자의 의도와 연결되어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권투선수에게는 상대 선수의 가드 사이로 보이는 빈틈만 보일 것이고, 축구 경기에서 슈팅하려는 선수에게는 골키퍼와 골대 사이의 빈 공간만 보인다. 물리적 충격을 주려고 하는 목적이나 득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에 당연히 그렇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의제를 중심에 두고 오랜 기간 연대해왔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 해결능력이 진화하고, 규범적 효력을 갖는 법과 제도, 정책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내며 여전히 사회 변화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안 하니만 못한 연대 때문에 오해를 증폭시키고 불신의 벽이 더욱 두터워져서 이후 연대에 걸림돌로 작동했던 사례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검증되지 않은 경로를 통해 수집된 사실관계로 인하여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이에 기반해 연대의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에 소중한 동력을 소진하기도 한다. ‘꺾이지 않는 연대’를 위해 연대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집중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여러 가지 연대 경험을 두고 상반된 결과를 낳은 각각의 사례를 펼쳐놓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운동 영역과 시민사회단체 간 연대에 있어 대개 의제의 시급성과 연대에 대한 절실함 때문에 막상 연대의 조건과 환경을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이 생략되곤 한다. ‘연대’는 간절한데 ‘연대하는 사람’은 잘 모른다. 자신들의 의제에 매몰되어 시선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야 하는지, 효율적인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의 어떤 장점에 집중해야 하는지 살피지 못한다. 도리어 상대방의 단점에 집중하며 정확성과 객관성도 담보되지 않은 비판지점을 찾아내는 일에 익숙하다. 미운 놈은 뭘 해도 밉다는 명제를 강화할 뿐이다.

 

상대방의 운동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대를 의도하고 있다면 연대의 대상을 두고 시선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연대의 과정에서는 현재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이 과연 연대의 목적에 부합하는 지점인지를 지속해서 점검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연대할 마음’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연대라면 연대의 대상, 연대를 둘러싼 조건과 환경을 두루 살피는 작업, 연대할 마음이 있는지 우선해서 점검해야 한다.

 

연대.jpg

3월 7일 공공그라운드 001스테이지에서 개최한 노동시민사회 연대 ‘솔라시’의 시작을 알리는 ‘여는 포럼’에 참석한 활동가들.(@공공상생연대기금)

 

당연하지 않은 당위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연대는 당위인가?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시민운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시대이다. 내용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주체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시민운동은 복잡하다. 아니 복잡해졌다. 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규정짓고,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의 지침을 만들어 동력을 형성해가는 방식의 운동은 이제 무언가 규정지어야 하는 초입부터 난해하다. 무언가로 규정짓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더러 있다. 더 이상 목소리 큰 몇 놈이 목 놓아 떠들고 결의를 낸다고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체와 내용의 다양성을 그간의 사회운동이 남긴 성과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존 시민운동의 주체들은 오히려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많아진다. 특히 마을공동체, 생협 및 사회적 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 자원봉사, 주민자치 등 새로운(이미 새롭지 않은) 주체들과 연대를 시도하는 과정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를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의 변화 없이 날것 그대로의 연대를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노동운동과의 연대는 더 복잡하다. 신성하고 존엄한 인간의 ‘노동’을 부정할 이는 많지 않겠지만 이것이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데 당연한 전제가 되지는 않는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운동으로 연결되기까지 몇 단계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간 노동 사안을 중심에 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 방식은 노동과 노동운동을 동일하게 인식했던 시절의 연대 방식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고백하건대, 필자의 경험상 그나마의 연대도 노동운동 주체들과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몇몇 시민운동가들의 의리, 품앗이에 근거한 이름 걸어주기 연대 방식이 주를 이룬다. 몇몇 활동가들과의 친화력을 강화하는 대안 이외에 상호 간 연결될 수 있는 공통의제를 발굴하고 입체적인 연대 전략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못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가 문제 해결을 위한 당위라 하더라도, 각 영역 운동의 주체들에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당위의 전제

 

물론 연대가 모든 사회적 문제 해결의 만능열쇠는 아니다. 소수의 이해 관계인들이 기동성을 발휘해 다양한 방법 중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편이 보다 효율적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 경우 연대는 불필요한 과정일 뿐일까?

 

중요한 것은 연대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이다. 연대를 현안 대응 체계로 이해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정형적 상태로 인식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잠재적으로 연대가 가능한 대상의 범위를 지속해서 확장해 가며 언제든 연대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선택지를 다양하게 확보하여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키우는 데 크게 힘을 보탤 수 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간 연대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보다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당위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이 있다. 노동자라는 이름의 시민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민운동적 시각을 정립하는 문제에 노동운동이 관여하며 상호 간 협력의 포인트를 찾는 문제를 비롯하여 이제껏 당연하다고 인식해왔던 부분들에 대한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여야 한다. 이를 포함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서로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서로 간 운동의 구조화된 특징과 장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는 의제를 매개로 한 연대에 있어 상호 개입력을 높이고, 개별적 사안에서 합리적인 연대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제이다. 이런 전제들이 하나하나 축적되는 과정을 통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간의 운동적 신뢰는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이 처한 현재 상황을 위기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동의 되는 지점이 있는 반면 동의할 수 없는 진단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든, 아니면 시대 변화에 대한 사회운동의 적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든 연대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생산하고 크든 작든 실행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다린다면 위기가 될 것이고 준비한다면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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