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by 센터 posted Jun 27,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이미 시작된 하청 구조조정


지난 4월 19일 현대중공업에서 다섯 번째 사망사고가 일어나자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없이 많은 언론사가 기사를 토해냈고 인터뷰 요청도 줄을 이었다. 2014년 현대중공업 그룹 13명 하청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이 떠올랐다.

모두가 산재사망에 분노했고 급기야 현대중공업 설립 이래 최초로 전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한다는 작업 중지가 내려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장에는 특별 근로 감독이 진행되고 지게차 작업을 무기한 중단하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4월 21일 갑자기 현대중공업 3천 명 해고설과 100개 부서 폐지라는 기사가 언론을 메우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조선업 구조조정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여론은 특별프로그램까지 편성하며 조선소가 곧 망할 듯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제 산재사망에 대한 얘기나 특별 근로 감독 진행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청 노동자들은 잠시 혼란스럽다. 이게 뭐지? 우린 날마다 잘려 나오는데? 새삼스럽다는 표정이다.


지난해 4월, 현대미포조선에서도 폐업이 속출하면서 하청 노동자들의 분노도 타올랐다. KTK선박 소속 100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과 퇴직금 체불에 맞서 미포조선 사장실에 쳐들어가는 등 원청 현대미포조선의 책임을 물으며 212일간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KTK선박은 원청 현대미포조선이 주도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었다. 수개월 간 지속적으로 기성금을 깎아버려 인건비를 줄 수 없었던 업체 대표는 원청에 맡겨 둔 영업 보증금과 지급 받아야 될 도급비를 받아 챙겨 종적을 감춰 버린 것이다. 영업 보증금은 원청과 업체 간 도급계약서에 따라 도산이나 폐업 등 유사시에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현대미포조선은 이런 영업 보증금을 업체 대표에게 가불 형식으로 이미 지급해버려 소속 노동자들은 한 푼도 건질 수 없었다.


2013년 말부터 진행되어 온 하청업체들의 폐업은 KTK선박 방식으로 은밀히 진행되었고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의 피해를 양산했다. 10년 이상 근속자가 임금은 물론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현대중공업에서만 81개 업체가 폐업을 했고 근처에 위치한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이미 100개가 넘어서고 있다. 폐업으로 인한 하청 노동자 수는 2014년 10월 4만 1,230명에서 2016년 4월 3만 2,569명으로 8,661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폐업된 대다수 업체 노동자들은 임금은 고사하고 퇴직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5년 10월까지 체당금 지급은 55억에서 12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원청 현대중공업이 책임져야 할 임금을 세금으로 메운 것이다.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도 늘었다. 2016년 1/4분기 구직급여 신청자 수는 9,454명으로 2015년 4/4분기에 비해 무려 4,100여 명이 늘었다.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의 3천 명 구조 조정설은 어떤 의미였을까?


탈의실.jpg

해양사업부 소속업체 탈의실 내부 모습(@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신히 폐업 위기를 넘긴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떨까? 지난해 말부터 솔솔 불기 시작하던 임금 삭감 소문은 올해 초 현실이 되었다. 건조부와 도장부를 중심으로 업체들은 임금 10퍼센트, 수당 30퍼센트 삭감을 강요하고 나섰다. 거부하면 된다고? 천만에, 거부는 곧 퇴사를 의미했다. 지난 4월까지 임금 삭감을 거부해오던 몇몇 강단 좋은 하청 노동자들은 “서명 못하겠으면 나가라”는 말을 결국 들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말 비상 경영 선포를 시작으로 잔업과 휴일근무를 통제했다. 실제 임금은 반 토막이 났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해양사업부 헤브론 공사에 투입된 10여 개 업체 소속 노동자 1,800여 명은 관리자할 것 없이 해고예고통보서를 받았다. 3월 18일자로 발행된 통지서에는 한 달 뒤인 4월 18일 자로 해고를 통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4월 18일 당일 해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다시 한 달 뒤 날짜로 예정된 해고예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무급순환휴직에 들어갔다. 마무리 공사 기간은 남았고 따라서 당장 해고할 수 없으니 해고예고통지서 발급을 통해 부당해고의 법적 책임을 피하겠다는 업체들의 얄팍한 수였다. 무급순환휴직으로 인건비 부담도 줄게 생겼으니 업체 입장에서 보면 신의 한 수인 것이다. 확약서 강요도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며 회사가 지정하는 날짜에 퇴사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살아도 산 게 아니라 반 토막 난 임금으로 버티든지 아니면 스스로 보따리를 싸야 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들이 따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실업의 행렬은 무려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쫓겨난 기간에 벌어진 중대재해


2013년 말부터 2016년 5월까지 벌어진 거대한 구조조정 물결은 하청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은 물론 목숨까지 집어 삼켰다. 2014년 3월, 현대 삼호중공업 하청 노동자 추락사고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그룹사에서 무려 13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15년 3명, 2016년 5월까지 5명(정규직 2명 포함하면 7명) 등 산재사망 사고는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죽음의 행렬이 시작되던 그 시기는 해양사업부의 플랜트 수주로 하청 인력이 물밀 듯 밀려오던 시기다. 당시 해양사업부에는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보통 40분을 기다려야 했고, 탈의실이 없어 창고와 같은 임시 천막에서 옷을 갈아입고 먼지 묻은 도시락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안전이 지켜질리 없다. 현장에는 누가 누군지, 어디 소속인지도 모른 채 마구 섞여 일했다. 하청의 존재 이유는 생산성이었다. 짧은 시간에 검사 일정을 맞추고 잔업과 특근도 부담 없이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두려운 것은 이 죽음의 행렬도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산재사망이 이어질 때도 구조조정 기사가 언론을 도배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똑같이 대답했다.

“하청 중심의 생산 구조가 원인이다.”

다른 원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해양플랜트 수주 격감과 해양플랜트 사업의 무모한 확장, 그리고 기술력 축적 실패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면 무계획성과 무정부성에 근거한 자본주의 모순에 의해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는 게 솔직한 답변이다.


하청 중심의 생산 구조는 현대중공업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품질 실패 비용으로 무려 6,076억 원을 쏟아 부었다. 설계 외주화에 따른 오작과 잦은 이직으로 인한 작업 공정 지연이 주요 원인이었다. 결국 하청 인력 중심의 생산 구조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빅3의 제 발등을 스스로 찍어 온 셈이다.


중대재해도 원인은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작업 현장이 바뀌고 원청이 지시한 시간에 일을 끝내야 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안전은 돼지 목에 걸린 금목걸이에 불과했다. 위에는 불꽃 튀는 화기 작업이 진행되고, 아래에선 페인트 작업이 병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에는 족장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아래에서 용접과 취부 작업이 병행되는 건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생산이었고 공정 준수였다.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도 이런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러나 거부하지 못한다. 거부는 곧 해고이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액 도표.jpg 폐업건수 도표.jpg


하청 노동자 없는 하청 노동자를 위한 대책들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아니 원인을 알면서도 모른 채한 결과라는 게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난 2014년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질 때 현대중공업은 3천억 원의 안전시설 투자와 안전총괄 책임자를 부사장으로 승격시키는 등 요란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안전사고에 대한 임원의 성과제를 포함해 중대재해를 일으킨 업체에 대해 재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대책을 쏟아냈다.


처벌과 징벌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원청 부서장의 승진에 영향을 끼치는 안전사고는 오히려 산재 은폐를 부추겨 왔다. 산재 건수는 줄어드는데 사망사고는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의 원인이었다. 산재 은폐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질 것이다. 게다가 시설물의 관리와 변경에 있어 아무런 권한도 없는 업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원청의 책임을 하청업체가 지라는 공식 선언인 것이다.  


잇따른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하청 노동자를 주체로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이다. 안전 대책이 있어 참여는 고사하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는 것은 주체로서가 아니라 단지 일하는 기계로만, 내놓은 대책에 따라야 하는 객체로서만 보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위험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생산보다 안전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애초에 박탈당한 상태에서 실효성 있는 안전 대책이 현장에 적용될 리 만무했다. 


누구를 위한 대책인가?


여태껏 침묵하던 울산시와 동구청은 놀랍게도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에 맞춰 대책을 발표했다. 울산시는 1,6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해 업체들에 대한 세제 지원과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동구청도 이에 발맞춰 공공 일자리 180개를 만들고 조선소 실직자를 위해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원·하청 대표자들이 모여 ‘함께 살자’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런 대책들이 나온 이유는 하청업체 대표단들이 울산시에 간담회를 요청하고 ‘살려 달라’ 간청한 결과였다. 사내하청 협력사 대표단은 9개 대정부 요구안을 만들고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9개 정부 요구안은 그야말로 노동개악의 축소판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 확대, 세무조사 보류, 세금 면제, 최저 임금 하향 요구 등 현장을 값싼 일용직으로 채우겠다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사내하청업체들이 어렵다면 과연 얼마나 어려울까?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원청의 기성금 삭감에 무조건 어렵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지원을 한단 말인가? 업체들은 왜 근거를 대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업체들이 원청 부서에 대한 상납과 세금 포탈, 허위 인원 등록으로 주머니를 채워 왔기 때문이다. 회계의 투명성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벌어온 업체 대표들에게 줄어든 이익은 적자일 뿐이다. 지자체에서 내놓은 대책은 이들의 불법을 공식화시켜 주는 일이자, 불법을 돕겠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은 일찌감치 관심 없었던 지자체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안성맞춤의 대책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구조조정할 것인가?


지금이 조선경기의 하강 국면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수만 명의 노동자를 쫓아낼 만큼의 절체절명 위기인가?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14조 원. 이중 1년 이내 현금성 전환이 가능한 금액이 무려 1조 7천억 원이다. 부채 비율도 150퍼센트대로 안정적이다. 2016년 1분기 3,4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2분기도 흑자가 예상된다. 그런데 고작 3,400여억 원의 부채를 가진 KEB하나은행이 나서서 자구책을 요구하고, 현대중공업은 이에 인력 감축안을 내놓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혹시 조선경기가 영원히 수직상승해야 정상이라고 믿는 것인가? 아니다. 모든 업종에는 경기에 따른 부침이 있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23조의 천문학적 이윤을 올리고 고작 2년간  4조 8천억의 적자를 봤다는 이유로 수만 명을 잘라야 한다면 과연 합리적인가? 아니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인가?


현재의 조선 경기 침체는 앞서 거론한 외부적 요인은 물론 내부적 요인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현대중공업의 부실 경영과 과도한 하청 인력 확대는 조선 경기 침체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당연히 부실 경영진들의 책임을 묻고 하청 중심의 생산 구조를 바꾸는데 맞춰져야 한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공장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청만으로 운영이 불가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23조 영업 이익의 원천이 되었던 하청 인력이 이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인력 감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지우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향후 조선 경기 변동에 따라 위기의 방파제로 하청 인력을 영구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현재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도 이와 유사하다. 한 마디로 암 환자에게 우선 급하니 감기약이라도 먹이자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고용을 안정시키는 구조조정이다. 다시 말하면 하청 중심의 생산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하청 인력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린 현대중공업에게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벌어들일 때는 사용하다 쓸모없으면 버리고, 그 책임은 사회가 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하청 노동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실업급여 몇 푼과 취업 알선이 아니라 바로 고용 안정이다.


확약서.jpg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