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탑승기-철로에 배인 기관사의 땀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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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김지선 센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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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지하철 기관사로 근무하다가 폐암 선고를 받고 퇴사한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안산지사는 2015년 11월, 이 기관사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유해물질과 미세먼지에 노출돼 각종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가운데 기관사가 폐암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철 기관사들은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이 소식을 전한 날 지축역 지하철 차량기지에서 김학년 기관사를 만났다. 그이와 함께 3호선 열차 운전실에 올라 지하철 기관사의 업무 현장을 취재했다.  


비정규직도 노조에 가입된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지하철 3호선을 운행하는 5급 과장 김학년 기관사는 네 번이나 해고됐다가 복직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모두 파업을 주도하다가 해고된 만큼 그에게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하 서울지하철노조)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은 평조합원으로 돌아왔지만 전에는 승무지부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노조 설립부터 지켜봤다. 서울지하철노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설립됐다. 공사 창립 기념일뿐만 아니라 노조 설립일까지도 휴무인 것을 보면 노조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메트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규직이지만 일부 비정규직도 있다. 주로 사내 직원들을 위해 필요한 인력이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노조에 가입하길 원했지만 지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작용한 것이다. 이를 본 김학년 기관사는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조언했다. 노조 규약을 한 부 복사해 ‘지하철에 근무하는 이는 누구나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내용에 밑줄을 긋고 노조 가입서와 함께 내용증명으로 보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식적인 회의체에서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지부회의도 아니고 중앙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왔는데 아무도 비정규직을 받지 말자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안 받아들이면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식당 아주머니들은 서울지하철노조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 비정규직분회 소속 조합원이 되었다.


지하철 기관사의 고충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직업이 운전사라는 말이 있다. 공간적인 제약이 비교적 덜한 도로 위의 운전도 스트레스가 심하다. 좁고 어두운 지하터널 안을 달리다가 역마다 정확한 위치에 정차해야 하는 지하철 운행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를 요구한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실수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바로 징계로 이어진다. 장시간 근무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운전 시간과 대기 시간을 합해 하루 평균 10시간을 근무하고, 인원 부족으로 휴일 근무는 일상화되었다. 이런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지하철 승무원들은 신체적, 정신적 위험 상태에 놓여있고, 공황장애나 수면장애, 우울증 등 신경정신질환을 겪는 경우도 많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1~4호선은 차장과 기관사가 함께 타는 2인 승무제이므로 1인 승무제인 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 5~8호선보다 상황은 조금 나은 편이다. 그래도 직업상 수반되는 외로움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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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콘에 손을 얹고 지하철을 운전 중인 김학년 기관사


지하철 기관사라는 직업적인 특수성에서 한 가지 빠질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사상사고다. 초긴장 상태에서 사상사고까지 겹치면 트라우마로 남는다. 삶을 비관해 지하철에 뛰어드는 승객을 불가항력으로 들이받는 기관사의 사례를 듣다 보면 납량특집을 방불케 한다. 사상사고가 난 경우 기관사가 사체를 처리해야 한다. 끔찍한 사고를 목격한 것도 모자라 손에 피를 묻히며 사체를 옮기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열차를 몰아야 한다. 사상사고를 겪은 날 저녁 술로 이 경험을 씻어내는 것을 기관사들은 ‘손 씻는다’라고 한다. 전에는 이런 일을 겪은 다음 날에도 출근해 지하철을 운행했다. 하지만 치열한 투쟁 끝에 사상사고 후 4주 진단 이상이 나오면 4일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그리 긴 휴가는 아니다. 사고와 관련해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꾸미고 하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승강장 안전문(Platform Screen Door)이 생겨 사상사고가 거의 사라졌다.


지축역 지하철 차량기지에서 출발한 운전실 탑승기


지하철을 타기 전 지축역 지하철 차량기지를 둘러봤다. 드넓은 기지 안에는 테니스장, 축구장, 자재창고, 검수 공장, 정비 공장, 직원 편의 시설 등이 있었다. 차량 10개를 연결해 조성하고 10량으로 묶어서 차번호를 받으면 비로소 열차가 된다. 10량의 길이는 200미터다. 그래서 매일 차량을 점검하는 검수 공장이나 주기적으로 정밀하게 점검하는 정비 공장은 폭이 기본적으로 200미터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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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통째로 들어가서 정비 받는 주공장


3호선 지축역에서 대화행 열차 운전실에 올라 1시간가량 운전을 지켜봤다. 대화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다. 운전실 안은 복잡한 스위치와 계기판, 표시등으로 가득했다. 김학년 기관사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기관사에게 가장 중요한 장치인 마스콘은 주간제어기(Master Controller)를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로 주행과 제동을 제어하는 핵심기기이다. 지하철은 둥근 핸들이 아닌 검은색의 T자형 마스콘을 앞뒤로 움직여 운전한다. 운행 중인 기관사는 마스콘에서 거의 손을 떼지 않는다. 마스콘은 안전장치인 DSD(Driver Safety Detector)를 포함하고 있다. 기관사가 마스콘에서 5초 이상 손을 떼면 “안전 운전 합시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오고, 계속해서 손을 대지 않으면 기관사에게 이상이 있다고 인식해 비상제동이 걸리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전류계, 조광기, 냉난방기, 송풍기, 각종 차단기, 관제와 연락하는 무전기, 전자 기적, 고장 표시등, 가선 전압과 축전지 전압, 열차 공기 압력 등을 알려주는 숫자판 등 한번에 소화하기 힘든 설명이 이어졌다. 운행을 하다 사소한 결함이라도 발견하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고, 이 경우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하므로 기관사는 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서서히 열차가 출발해 속도를 높이다가 역에 들어서면 속도를 낮춘다. 기관사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정확한 위치에 정차하는 것이다. 10량인 열차 길이가 200미터이므로 플랫폼은 200미터보다 조금 더 길다. 예전에는 210미터였는데 업자들의 로비로 새로 만들어진 플랫폼은 205미터라고 한다. 5미터가 줄어든 만큼 기관사는 더 힘들어졌다. 열차의 정차 위치를 알려주는 적외선 센서도 있고 운전실 좌우 창을 보며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관사의 연륜에서 오는 감이다. 열차마다 상태가 다르고 역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승강장 안전문과 출입문이 닫혔다는 표시등이 들어오고, 열차가 가도 된다는 표시로 차장이 ‘부’하는 소리를 내면, 기관사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열차를 출발시킨다. 역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승객으로 탔을 땐 몰랐는데 운전실에 있다 보니 역과 역 사이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관사가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역을 그냥 지나치는 통과사고를 낼 수 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서다 가다를 몇 번 반복하니 대화역이다. 열차의 앞뒤를 바꿔 돌아가야 하므로 승객이 모두 내린 텅 빈 열차를 관통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 운전석으로 갔다. 이따금 마주친 열차 안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지하철 소속이 아닌 청소용역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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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터널을 달리는 지하철


기관사 의견 반영된 노동 환경 개선 필요


마스콘 키를 꽂고 열차 방향을 바꿔 다시 출발했다. 김학년 기관사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답게 약간의 충격도 없이 부드럽게 운전했다. 돌아오는 길에 기관사로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는지 물었다.


우선 업무적인 면에서 보면 운전실 구조가 인체공학상 기관사에게 불편하게 되어있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마스콘의 위치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한시도 손을 뗄 수 없는 마스콘의 위치가 기관사의 팔 가까이에 있지 않아 장시간 운전을 하면 어깨에 무리가 간다. 프랑스나 독일 지하철의 경우 마스콘의 위치가 기관사 가까이에 있다. 그나마 운전석의 위치는 좀 나아졌다. 예전 운전석은 고정되어 있어 기관사 체형에 맞지 않으면 불편했지만, 지금은 운전석이 앞뒤로 움직여 그나마 편해졌다고 한다. 운전실을 설계할 때 실제 사용자인 기관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이의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유해물질과 미세먼지에 노출돼 폐질환에 걸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환기시스템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이런 문제를 공식적으로 접수해 지하철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황장애 등 신경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상담 치료나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노조에서 요구해야만 마지못해 들어주지 말고 사측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꼭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단연 기관사 처우 개선이라고 말한다. 노동 강도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기관사뿐만 아니라 기관사의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차장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운행에 있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실수는 용납되지 않으며 사고는 모두 징계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일해야 하는 기관사에게 지금의 대우는 너무 박하다. 이는 서울메트로에 종사하는 이의 자긍심과 연결된다. 그이는 자신과 동료들이 지하철에 종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한 처우와 스트레스, 사측의 통제로 인해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지하철에서 종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그이의 소망을 듣는 사이 열차는 지축역에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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