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날에 받은 선물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글 | 강인수 센터 편집부장


지난 4월 말까지 서울지하철 시청역 5번 출구 지하, 한 쪽 구석에 나지막한 천막농성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가기 위해서는 지나쳐야 할 길목이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차량지부 농성 17일차 ‘시민 안전 위협하는 외주화 반대. 서울메트로는 경정비 용역 환수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라!’ 하고 큼지막하게 쓰인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땅 아래 세상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있었다. 천막농성이 처음인 그이들은 연차를 사용해서 2인 1조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땅 위에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일인시위를 하고, 땅 아래에서는 천막을 지키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천막농성장.JPG

지난 4월 말까지 시청역 5번 출구 지하에 자리 잡았던 서울 지하철노조 차량지부 천막농성장


같은 일터, 다른 조건


차별 없는 현장과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지난 4월 8일부터 시작한 천막농성. 서울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서울메트로 직접고용을 하고, 2017년이 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역·유실물센터, 구내 운전, 전동차 경정비, 모터카·철도장비, PSD 5개 분야를 위탁업체에 맡겼다.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위탁받은 곳은 (주)프로종합관리다. 서울메트로 정규직과 (주)프로종합관리 비정규직은 같은 작업장에서 다르지 않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게다가 정규직에게는 위험 수당이 지급되지만 비정규직은 받지 못했다. 전동차 경정비 업무 종사자는 2종의 위험 수당을 지급받도록 되어 있다. 차량기지 내에는 1,500볼트의 고압 전류가 수시로 흐르고 있고, 차량 하부와 옥상에 올라가서 업무를 해야 하는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규직만 위험 수당을 받 아온 것이다.

좀 복잡한 문제도 있다. 용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채용 방식도 다르다. 업체에서 자체 채용한 계약직과 촉탁직, 그리고 서울메트로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동한 전적자로 구분된다. 그런데 전적자의 경우 서울메트로에서 보장해주는 임금액과 (주)프로종합관리에서 옵션으로 주는 금액을 같이 받았다. 계약직이 식대와 각종 수당을 포함해 월평균 170여만 원의 임금을 받는 반면 전적자는 정규직 보수 규정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다보니 월 450만 원의 임금과 별도의 성과급을 받기도 한다. 전적자는 임금인상률도 서울메트로의 임금인상률과 동일하게 반영 받는다. 따라서 자체 채용된 계약직과 임금 격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계약직은 같은 현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뿐만 아니라 원청 출신 전적자들과도 심각한 차별을 받는 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는 일이 다를까?


그렇다고 일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도 않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능성 점검을 하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모품 점검을 하는 등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기는 하지만 공간적으로 한데 모여 일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출입문 커버 잠금 볼트를 점검하고 나면 정규직 노동자가 출입문의 이상 여부를 확인한 후 커버를 닫는 식이다. 또 정규직 노동자가 전동차 하부 판넬을 열고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지나가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내부를 닦고 판넬을 닫는다.

이런 예는 많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적인 역할은 구분되어 있지만 한 공간에서 동시에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점검 사항에 대해 서로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담당하는 역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협력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서울메트로 측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라고만 강조하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노조 최인수 지부장은 “제동 장치, 화재 감지기 관련 업무를 비정규직이 하는 상황에서 안전 업무와 관련이 없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유성권 사무국장도 “요즘 우리 사회가 안전 불감증이잖아요. 제가 세월호 사고 이틀 전에 한 언론사와 인터뷰하면서 지하철 안전 문제에 대해 지적했는데 3일 후에 왕십리역에서 사고가 났어요. 경정비 업무는 시민의 안전과 맞물려 있는 일”이라며 지하철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결의대회.JPG

노동절 행사를 앞두고 가진 서울지하철 비정규직지부 정규직화 쟁취 결의대회


정규직화 약속 받아내다


처음부터 안전과 직결된 경정비 업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온 것은 아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창의혁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외주화 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해왔던 일을 비정규직이 하게 된 것이다.서울메트로는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주)프로종합관리와 2008년 12월,3년 단위로 1차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박원순 시장은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2015년 3월 31일 용역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경정비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다시 외주용역 계약을 3개월 더 연장했고, 7월 이후에는1년 단위로 용역 발주를 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을 이유로 내세웠다. 서울시와의 약속만 믿고 기다렸던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서울시 대책만 믿고 기다렸는데 통합 발표를 하면서 용역을 연장해버렸어요.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라 한 지가 몇 년째 이어져온 건데···.”

경정비 용역 업무를 하는 인원은 5개(수서·지축·창동·군자·신정) 기지 140명이다. 자체 채용 63명, 촉탁직 38명, 전적자가 39명이다. 서울시는 전적자의 퇴직금 문제를 핑계 대며 당장 정규직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동절 행사를 앞두고 서울지하철 비정규직지부 정규직화 쟁취 결의대회에서 만난 그이들에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최인수 지부장은 “노동절을 맞아 큰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했다. 4월 29일 열린 ‘서울메트로 경정비 용역 노동자 근로 조건 개선 대책을 위한 민생실천위원회’ 회의에서 서울메트로 경정비 용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로 했고 정규직화를 약속 받았다는 것이다. 합의 내용은 ‘서울메트로 경정비 용역을 한시적(2015년 7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으로 발주하되 (주)프로종합관리에서 고용한 자체 채용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고용승계, 임금, 후생복지 등)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서울시 제2차 공공 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에 의거해 양 공사 통합 계획에 반영하여 2017년 1월 1일부로 정규직화 한다’는 것이다.

임헌영 차량지부장은 결의대회에서 “집회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면서 사업장으로 돌아가면 꼭 정규직화 해야 하냐고 말한다. 정규직노조가 서울지하철 비정규직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문제”라며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힘차게 외쳤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