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동자

by 편집국 posted Mar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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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근 시인’.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한방에 아는 방법이 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를 알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 ‘백제’라는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쓰신 분이 바로 박영근 시인이다. 이제야 ‘아!’ 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다. 박영근 시인은 원래 ‘취업공고판 앞에서’ 등 수많은 노동시를 썼던 노동시인이다.

 

나도 한 때 노동자 시인을 꿈꾼 적이 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그 꿈을 잠시 접기도 했었지만. 청년 땐 성남에서 ‘소금꽃’이라는 노동자 문학회를 같이 했었지만 이천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 이상 함께하지 못했었다. 이후 2002년에 다시 시인을 꿈꿀 기회가 생겼다. 이천에서 민주노총 지구협의회를 만들면서 문화부장 일을 시작하였고, 그 곳에서 노동자문학캠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투쟁 중이던 레고코리아 노동자와 함께 캠프에 가게 되었고, 우연히 다시 접었던 꿈을 조금씩 꼼지작거려 보았었다.

 

이때부터 참 많은 시인들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노동자 노래를 했었다는 내 특별한 이력이 시인들과 잘 어우러지는데 한 몫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인천에 노동자 문학회의 사람들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꿈을 위해서만이 아닌 사람 만나는 재미로 노동자 문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천 노동자 문학회’이 모일 때마다 술에 잔뜩 취한 한 사람이 온다. 술이 잔뜩 취해서 깽판 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원래 나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분은 딱 그렇게 나타나신다. 처음에는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꼬장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모습이 불쾌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아니 뭐하는 분인데 항상 나타나서 자리를 난장판을 만들죠?”라고 물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 꼬장꾼에게 뭐라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이 넘어지고 엎어질 때마다 잘도 챙겼다.

 

그 분이 대체 누구인지 묻자 한분이 “아, 인천 민예총 활동하셨던 선배이기도 하고, 시 쓰는 박영근씨에요.”라고 대답한다. 문학회의 어울림 자리마다 나타나서 꼬장부리는 모습만 봤는데 이 날 처음 이름을 들었고, 이 분이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를 쓴다는 소리에 옛날부터 노동자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내 귀가 솔깃해졌다.

 

그 후 집에서 ‘구로 노동자 문학회’에서 준 ‘주머니 시집’을 읽다가 박영근 시인이 쓴 ‘그 눈동자’라는 시를 발견했다. 시 속에 선율이 흐르길래 불현듯 이 시에 노래를 붙이고 싶어졌고, 무작정 박영근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박영근 시인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고, ‘그 눈동자’ 시에 노랠 붙이고 싶다고 물어보았다. 박영근 시인은 흔쾌히 괜찮다는 대답을 하였고, 이에 만든 노래가 ‘그 눈동자’이다.

 

노래를 완성한 후 다시 전화를 했다. “노래를 썼는데 이 노랠 들려주고 싶다. 만나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물으니 박영근 시인은 아무 때고 인천 올 때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3일 뒤 박영근 시인을 만나려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박영근 시인은 전화를 영영 받지 않았다. 꼭 만나서 시 쓰는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었는데….

 

이 노래를 처음 기륭전자 투쟁에서 불렀는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후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도 불렀고, 쌍용자동차 22번째 죽음 장례식 투쟁 때에도 불렀고, 울산 송전탑 아래서도, 평택 송전탑 아래서도 불렀다. 요즘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 노래가 그리 쉬운 노래가 않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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