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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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4.16으로.jpg

혹시 감동의 순간에 눈물이 펑펑 흐르는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저는 아주 이따금 세상 산전수전 다 겪어서 눈물이 말라 버렸을 것 같은 메마르고 팍팍한 눈빛 속에서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감동은 아주 큰 것에서만 올 것 같았는데 아주 작고 미약한 곳에서 ‘이게 뭐야’ 하는 순간에 눈물이 흐르데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가끔씩 듣는데 사실 클래식 성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합창은 더더욱 그런데 왜 합창과 함께 하냐고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다양성이 노동 대중을 만나는 것까지 막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오래전에 아는 사람 클래식 성악 공연에 초대 받아서 관람하는 중 졸다가 그 친구로부터 혼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평화의나무 합창단 정기 공연에 초대받아서 하이디스 조합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을 알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합창단에서 초대권을 준비해 놓겠다며 꼭 오라는 연락을 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농성하는 하이디스 조합원들과 기아 비정규직 고공농성 등 여러 노동자 문화제에 함께 해주거든요. 어떤 날은 조합원들 보다 합창단 인원이 몇 배나 많이 와서 앉는 자리도 채워주고, 또 공연할 때는 무대를 채워주지요. 첫 번째 공연 때는 비까지 내려서 아주 좁은 천막 안에서 빗소리가 천막을 때리는 소리와 겹쳐 음향을 제대로 펼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노래에 대한 욕심이 클 텐데 아쉬움 보다는 웃음으로 연대를 꽉 채워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분들은 원래 노동자 문화를 표방하고 연대하는 분들도 아닙니다. 오래전에 노동가수를 초청하려면 ‘음향이 몇 킬로그램 이상은 되어야 한다’라는 얘기를 하기도 해서 제자신이 노동가수라는 게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외부 조건과 음향을 탓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날 빗속에서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연에 초대될 땐 참 많은 것을 챙기게 되는데 개인 가수도 아니고 수십 명이 무대에 오르면서 조건도, 예의도 그 어떤 대접도 요구하지도 않으며 따지고 서운해 하지도 않았던 모습이 새록새록 눈길에 담겼습니다.


얘기 주제가 ‘감동’이니 감동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이디스 조합원들이나 나나, 이천에 함께 살아서 이천에서 넉넉잡고 3시 반에 만나서 6시에 시작하는 평화의나무 합창단 공연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유롭게 잡아도 한 시간 반이면 가는 길이거든요. 우리가 평화의나무 합창단 공연에서 그나마 한 자리라도 채우는 게 합창단 수십 명이 하이디스 문화제에 여러 차례 연대해준 거에 비하면 우리가 그분들에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연대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시 반 출발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해서 길 막힘이라는 난적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휴대폰으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는 조합원들은 제게 “형님, 공연 끝나면 도착한다고 나오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하며 판단을 재촉합니다. “아냐, 갈 수 있어.” 하며 고속도로를 피하고 돌고 돌아서 공연의 3분 2가 지난 시점에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연 중간에 들어갈 수 없다며 막이 단락질 때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대기실에서 20분을 텔레비전으로 보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4부에 들어가서 노래 몇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제 뒷자리에 앉은 세월호 4.16 합창단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행운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에 언급한대로 합창단원이 정말 많았어요. 거리에 설 때보다 몇 배는 많았거든요. 연주자의 피아노 선율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에 비해 합창단 노래 가사가 귀에  잘 안 들어왔어요. 몇몇 아는 분들을 확인하는 정도의 반가움 외에는 그 큰 무대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늦었지만 잘 왔고 잘 봤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서 아는 분들에게 우리가 왔다고 눈도장만 찍으면 평화의나무 합창단 연대에 온 것은 성공입니다.


공연장 밖에는 꽃을 주고받는 사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 사이 누군가로부터 아침이슬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기획된 연출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자연스럽게 아는 지인들과 노래 한 곡을 부르는구나 생각했는데 노래가 순식간에 홀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서야 ‘아 이게 기획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눈에서 감동의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그 넓고 높은 무대와 휘황찬란한 조명을 벗어나 마이크도 없고 음향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과 똑같이 서서 낮은 자도 없고 높은 자도 없는 곳에서 그 노래 한 곡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날 평화의나무 합창단 공연을 처음부터 다 볼 수는 없었지만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지향하고자 하는 길은 그 마지막 로비에서 불린 아침이슬 한 곡에서 다 볼 수 있었습니다. 늦게 그곳에 합류할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은 세월호 가족 4.16합창단과 함께 합니다. 그래서 ‘숨쉬는 4.16으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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