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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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 문화노동자


부표-악보.jpg

어느 날 우연히 언론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세월호가 잠겨있는 바다를 찾아간다는 것을 들었다. 그때 아~ 망망대해 거기를 어떻게 찾아가지? 보이지도 않는 바닷속 거기에 세월호가 있는지 어떻게 알까. 좌표를 보면서 나침판을 가지고 찾아갈까? 아니면 바다에도 길이 있다고 어부들이 거기를 안내할까?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노란 부표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 부표. 길, 별, 등대. 그 외 꽃, 구름, 은하수 등 수많은 미사어구로 표현하는 건 들어봤지만, 고작해야 부표가 우리를 찾아오라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또 한 켠으론 뜨거워지는데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부표가 그리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가두리 양식장에 떠 있는, 고작해야 어망이 담겨 있는 곳을 표시하는 스티로폼. 그러다 낡고 오래되면 쓰레기가 되어 바람 부는 대로 해변을 나뒹구는 오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부표!

돌아보니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생명 줄을 달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아무 보잘 것 없다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쳐 왔다. 오히려 그것을 흔들어대는 파도에 넋이 나간 듯 감탄사나 질러댔으니. 뒤집었다 거꾸러트렸다 자지러지게 하는 드높은 파도에 수많은 미사어구 시 나부랭이라고 읊어대니 사람들이 나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고 칭송하였다.


아~ 부표. 그리고 돌아보니 수많은 곳에 부표가 있었다. 세상 관심에서 멀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쫓긴 해고 노동자들이 나를 잊지 말라고, 나를 찾아오라고,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인권위 하늘 위에서, 전광판 위에서, 철탑위에서 줄 하나 묶고 휘청거리다 어지러움에 다시 일으켜 손짓하는 하늘 부표들. 강정에서 밀양에서 오늘도 건물주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하여, 철거되지 않기 위하여, 노점 좌판을 뒤집히지 않기 위하여.


몸뚱이로 세상의 파도를 이겨내며 한줄기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싸워가고 버티는 부표들. 지나는 차 소리가 탱크 소리 같은 보도블록 위에서, 한겨울 눈보라에 귀퉁이부터 무너져 내려서 기껏 다시 일으킨 사이 폭풍이 몰아쳐와 삶의 껍데기조차 온통 벗겨 버릴 것 같아도 천막을 놓지 않기 위해 가느다란 기둥 하나 부여잡고 온몸으로 스며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고작 비닐 한 겹 더 친다. 그러나 어느새 용역깡패들이 달려들어 칼로 목숨 줄을 위협하며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천막을 부여안고 울음조차 못 터트리는 울음.


온몸으로 짓눌려 오는 억겁의 버거움을 버티고 버텨내어 쓰러진 천막을 다시 일으켜 사람들을 불러내는 땅의 부표들. 다시 부표가 여전히 거센 출렁임 속에 휘청거리다 다시 온몸을 세우며 버티고 버티며 말한다. 나를 찾아와 달라고. 내 얘기 좀 들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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