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국밥집에서

by 센터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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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부천에서 노동을 하며 살다 간 조영관 시인. 술이 오르면 ‘장산곶 마루에-’를 열어젖히며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그를 만나러 모란공원에 갔다가 억압의 한 시대를 저항으로 살다간 시인이 살아생전 좋아했던 장단에 그의 시를 옮겨 보았다.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환경 속에서 체득하는 리듬이 있다. 이러한 리듬은 저항운동에 혼을 불어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밥 말리는 자메이카의 ‘레게’라는 리듬에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고, 칠레의 빅토르 하라는 ‘누에바 칸시온’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민요 부르기 운동을 통해 저항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 고유의 것들이 다 사라진 불분명한 리듬 속에서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살아가지는 않는 건지. 이미 서양식 7음계에 많이 익숙해져서 꼭 옛 5음계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지만, 잊어버리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노래에 있다.
돈도 되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 우리 리듬의 노래. 그나마 한두 곡씩 내놓은 것은 그나마 이 길을 걸어온 창작자의 본능일 뿐이다. 본능적으로 술 한 잔에 굿거리 노래를 외쳤을 노동자시인의 모습이 이 노래를 통해 투영되길 바라며. 
노래에 정신을 담고 있는 몇 가지 리듬이 있다. 록은 자유와 정의와 일탈을, 레게는 저항과 항전을, 힙합은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 아, 하나 더. 뽕작은 일제가 나라를 빼앗고, 말도 빼앗고, 문화에 침투하여 육자배기, 굿거리, 중모리 등 ‘소리’라고 하는 우리 리듬의 노래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자 우리 선조들이 일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약을 처먹고, 정신을 팔아먹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즉 ‘뽕’은 히로뽕이나 코카인과 같은 마약을, ‘작’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뜻이다. 오래전에 “니기미 뽕이다.”라고 욕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다. ‘니’는 닛본(일본)을, ‘기미’는 기미요(노래)를, ‘뽕’은 히로뽕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노래를 부르는 것은 히로뽕 같은 마약을 처먹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만든 〈새마을 노래〉가 전형적인 일본 군가풍의 뽕작이다.
이 땅의 저항운동 속에서 형성된 민중가요계는 뽕작을 퇴치해야 할 저급한 문화양식으로 취급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뽕작이 대중가요와 별반 다르지 않게 저항가요 속에 뿌리내려 있다. 혹자는 민중가요의 기독교풍이나 군가행진곡풍이나 다 외래문화에서 온 것 아니냐며 얼레벌레 짜 맞추기를 하는데, 36년간 억압과 착취 속에서 강제로 주입받은 문화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뽕작은 그야말로 일제 수탈의 흔적이 살아있는 식민지 유산이다. 그러나 나도 나이 드신 노동자 분들을 만날 땐 필요에 따라 뽕작을 부르기도 한다. 시대적으로 어떠한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부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뽕작이 많이 불린다. 어차피 민중가요가 우리식의 노래로 다 채워지기엔 한계가 있고, 뽕작을 비판만 하기엔 너무 많이 와 있다. 간혹 몇 곡씩 신민요라는 우리 장단의 노래가 나오기도 하지만, 뽕작에 젖은 지금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우리 것이 서기가 더욱 어려울 터다. 뽕작에 취한 세상, 정신만은 굳건하시길.

 

 

글|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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