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드렛지 씨의 해고 이후의 삶

by 센터 posted Oct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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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흥준 센터 정책연구위원장



연재를 시작하며: 매 호에서 미국의 노동 관련 뉴스레터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미국의 노동, 특히 비정규노동, 이민노동, 노사관계 등에 관한 최근 이야기를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린 엘드렛지(Lynn Eldredge)는 지난 30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엘드렛지 씨는 직장 생활을 공군에서 시작했고, 재대 후 캔사스에 있는 비교적 큰 공장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았다. 그러나 2000년 해고 이후 그는 여섯 개의 다른 직장들을 전전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생활비는 상승한 반면, 임금은 유지되거나 심지어 하락해 왔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공장이 해외로 이전했거나 기술 발전이 노동력을 대체했거나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원인이야 무엇이든 이러한 변화는 엘드렛지 씨의 경우처럼 남성 노동자의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쳤고, 미국의 많은 가장들에게 더 많이 일하지만 임금은 덜 받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지역엘드렛지.jpg

 

엘드렛지 씨(50)1985년에 결혼했고 같은 해 공군에 입대하였다. 5년 동안의 군 복무 이후 다른 사람들처럼 일자리를 잡았고 생활이 점점 나아졌다. 그는 제대 이후 나는 위치타(Wichita)에 있는 인력센터로 갔고 거기에는 퇴역군인들을 위해 특별한 일자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력센터 직원은 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지만, 나는 오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라고 회상하였다. 비록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었지만 엘드렛지 씨는 1991년 케이스(Case)라는 작은 트랙터를 만드는 큰 공장에 바로 취직을 했다. 그의 첫 임금은 시간 당 12.01달러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약 시간당 약 21달러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케이스에서 첫 직장을 다닐 때 그는 두 아이들이 있었고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 방이 2개인 집에 살았다. 그의 생활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고 매일 작업화를 신고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 신이 났다. 엘드렛지 씨는 당시에 대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개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야근이면 노동자들은 주차장에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망원경을 가져와서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고 회상했다. 엘드렛지 씨는 마침내 승진을 했고,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그는 아이 둘을 더 갖게 되었고, 위치타에 있는 더 좋은 동네의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매니저는 그를 사무실로 불렀다. 매니저는 회사가 뉴홀랜드 건설회사(New Holland Construction)에 팔렸다고 말하며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말했다. 결국 엘드렛지 씨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고되었다. 엘드렛지 씨는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다. 해고 이후 엘드렛지 씨는 유타(Utah) 주의 시더 시티(Ceder City)로 이사를 갔다. 그 이후 그는 여섯 가지 다른 일을 전전해 왔다. 결과적으로 그는 첫 직장보다 더 나은 직장을 갖지 못했다. 맨 처음 엘드렛지 씨는 자신이 만들었던 트랙터를 파는 영업일을 했다. 이 일은 10개월밖에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일은 전화기 회사였고, 다음은 두유 회사, 그 다음은 손톱깎이 회사 등이었다. 현재 여섯 번째 직업은 유타 주 패스트푸드 점 다섯 곳의 에어컨 등 기계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는 일을 여전히 좋아하고 그가 해결한 문제들에 대해 부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현재 엘드렛지 씨는 일 년에 약 50,000달러(5,500만 원)정도를 번다. 그러나 이 돈으로 가족들이 생활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사실 이 금액은 14년 전 해고되었을 당시에 벌었던 금액과 비슷하다. 더구나 50세가 된 그에게 지금은 회사 복리후생도 없고, 퇴직연금도 없다. 그의 부인은 결국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학업을 더 해야 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야 그의 부인은 퇴직연금을 들기 시작했다. 엘드렛지 씨의 네 자녀 중 두 명은 내년에 대학에 입학을 하지만 엘드렛지 씨와 그의 부인은 등록금을 낼 돈이 전혀 없다. 엘드렛지 씨는 자신이 더 이상 아이들을 도울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가끔씩 슬퍼진다고 말했다. “월말이 되면 정말 힘들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은 외식하기가 어렵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말만 넘기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정말 힘든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엘드렛지 씨의 인생은 고임금을 받지 못하는 미국의 많은 사무직 노동자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사무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되어 있고 복리후생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한편, 빚은 점점 더 늘어나고 엄마들은 직장을 찾아 나서고 있으며 아이들은 빚으로 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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