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우수상] “바보야, 문제는 노동이야!”_정권찬

by 센터 posted Mar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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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노동이야!”

 

정권찬 자동차판매 영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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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정권찬을 징역 6개월에 처합니다

순간, 판사의 선고 내용을 적으려 했던 내 손은 힘이 빠졌다. ‘잘못 들었나?’ 하는 의아한 눈으로 판사를 쳐다봤다. 얼굴을 하얀색 마스크로 가린 판사는 물었다.

정권찬씨, 하실 말씀 있으세요?”라고.

대리점주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합의를 이행하라던 투쟁에서 검사의 벌금 구형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그것도 법정구속 되고 있는 이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그렇게 나의 2022128일 오전 10시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형사법정에서 박제됐다.

두 손은 차가운 은빛 수갑으로 채워지고 포승줄로 몸이 꽁꽁 묶인 채 호송차에 탑승했다. 자꾸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호송차는 매정하게 출발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익숙했던 곳의 풍경은 너무 낯설었다. 나는 서럽고도 서러운 비정규 노동의 참담한 현실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얇은 하얀 고무신 때문인지 발을 딛는 군산교도소 바닥은 내장이 오싹할 만큼 한기로 진저리가 쳐졌다. 나는 본방으로 가기 전까지 대기해야 할 방으로 들어갔다. 손톱으로 양철판을 긁는 것 같은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의 잠금장치가 잠기자 비로소 내 몸이 갇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법정구속으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놀랄 일은 안 봐도 알 정도지만 어쨌든 나는 현대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서 당일 오후에 인도해야 할 고객 생각에 정신이 아득했다. 그러자 딱 봐도 오래된 수용자 안내 문포스터를 봤고 호출벨을 눌러 교도관에게 전화 한 통화를 간곡히 부탁했 다. 규정을 확인한 교도관은 잠시 후 나를 구불구불한 긴 복도 어딘가로 데려 가더니 전화 박스 하나를 안내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교도소 측으로부터 이미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차오르는 울음을 참기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나까지 울어버리면 얼마 허락되지 않은 통화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 눈물을 억지로 삼키니 목젖이 매운 상태로 겨우 말했다.

여보울지 말고 오늘 인도해야 할 고객 등록 서류가 법원 주차장 차 안 가방에 있는데 정규 형님에게 대신 부탁 좀 한다고 전해줘.”

아내는 알았다고 하면서 계속 괜찮아?”, “괜찮아?”라고 일렁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통화가 끝나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걷는 내내 울음을 참으려 꽉 다문 입 때문에 턱이 아플 정도였지만 그런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꼬리 아래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타고 내렸다. 다시 방안에 갇히자 그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내가 현대자동차를 판매한 것은 2005년경 여름이었다.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입학하고 딱 한 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고픈 간절함이 있던 터에 마침 생활정보지의 구인 광고를 보고 영업은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자동차 전시장을 찾아갔었다. 그렇게 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비정규직 노동은 시작됐지만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었던 현실조차도 모를 만큼 전에 다녔던 직장의 근로조건도 원시적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세상은 온통 비정규직 천지였던 것이고 정규직이란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렇다 할 학연도, 지연도, 인맥도 없던 나는 차를 한 대도 판매하지 못하면 수입이 ‘0’원이어서 현장을 처절하게 개척해야 했고 판촉비를 아끼려 새 사양이 나오면 캐비넷에 쌓아뒀던 구형 사양의 카탈로그를 들고 가가호호 아파트훑기, 빌딩타기, 상가훑기를 했었다. 하지만 나와 판매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와 대리점주들의 방조 아래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오징어 게임과 똑 닮은 혈투장의 주인공이 되어 갔다.

그런데 그 혈투장 한가운데서 대리점주들은 차를 누가 팔든 꼬박꼬박 대당 무려 30%의 수수료를 떼갔다. 우리는 거기에 또 3.3%의 세금을 공제한 후 분배받는다. 이 금액으로 썬팅 등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통신비, 차량유지비 등 영업에 꼭 필요한 비용 등은 고사하고 점심 식대마저 스스로 해결하고 나면 손에 쥔 건 서러운 눈물뿐이다. 조선 말기 농민들의 소작료율이 생산물의 약 33%였다고 한다. 우리들이 떼준 수수료가 얼마나 착취적이고 봉건적인가. 조선 말기 농민들보다도 못한 노예들인 것이다.

 

대리점주들이 우리들로부터 가져가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판매한 수수료는 100%를 취득한다. 거기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에서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추가로 확보한다. 현대자동차의 대리점 경영 지침서에 따르면, 인센티브란 전체판매실적에 따라 판매 수수료(기본 수수료) 외에 대리점 운영, 판매 증대, 직원 판매 동기 부여 강화를 위해 지원되는 지원금을 통칭한다. 나를 형사 고소한 대리점주도 인센티브가 대리점 전체실적을 기준으로 책정된다는 점은 인정한 사실이다.

 

대리점주들은 일반적인 사업주와 다른 특색이 있다. 이들은 생산 설비 투자라던가 유지, 연구 개발이나 투자, 판매하지 못한 상품의 재고 관리 등의 위험 부담이 없다. 대부분은 현대자동차에서 하는 영역들이기 때문에 오직 판매노동자 즉 사람만이 자신의 사업자산인 것이다. 따라서 대리점 모든 사람이 판매한 전체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는 자신과 함께 판매한 모든 사람들과 분배되어야 합당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분배하는 대리점주들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센티브를 분배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곳에서 노조 가입이 증가했다. 그러나 일부 대리점주들은 단체교섭에서 점심 식대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에게 지급 의무가 없다거나 편의점 컵밥을 제안했다.

라틴어로 빵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콤파니아라고 불렀었고 그게 현재 ‘Company(회사)’라고 한다는데 이들에게는 사람’, 그러니까 노동인권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와 대리점주 사이와의 문제이고 국가는 비정규 노동에 아무런 역할이나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나는 대리점주로부터 현재까지 형사 고소와 그로 인한 구속, 해고통지, 가처분, 가압류, 손배소송을 직접 당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경찰, 검찰, 노동청, 노동위원회, 법원 등 여러 국가기관을 경험해 봤다. 심지어 생존권 투쟁한 나를 강력방에 배정한 교정기관까지도. 국가는 노동자에겐 엄격했지만 사용자에겐 무척 관대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문회의 최종진술을 하고 있는데 의장이 웃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발생했고 나는 격분해 왜 웃었습니까!”라고 소리치니 의장이 한다는 소리가 이 상황이 참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라며 웃은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런 비웃음보다 힘들었던 건 바로 입증책임이다. 노동위원회는 하나의 준사법기관이고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요구한다. ‘저 사용자는 분명 나쁜 놈일 거야생각하고 취업과 동시에 꼼꼼하고 부지 런히 증거를 모은다면 모를까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한다. 설사 그렇게 증거를 모은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모은 증거라는 게 대부분이 법률가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에게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노동위원회를 찾은 많은 노동자들을 더 절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꽤 탄탄한 증거가 제출된 사건에서도 인정되는 비율은 매우 낮아서 어쩌면 노동위원회가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구속되면서 즉시 항소를 했기 때문에 징역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리점주는 내가 징역형을 선고받아 업무를 할 수 없어 해고했다며 항소 이후 해고통지를 했다. 중앙 노동위원회 판정 당시 나는 1심이 파기되고, 벌금형이 선고된 상황이라 대리점주의 주장에 큰 모순이 생겼었다. 당연히 나는 이 부분을 탄핵했었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부분 판단 없이 기각하고 말았다. 하기야 조합원 열 명 남짓인 자신의 사업장에서 수십 차례의 단체교섭에 대리인만 보내는 것과, 17만 조합원의 위원장이 그 단체교섭에 나오지 않는 것을 등치시켜며 기각시킨 노동 위원회에게 무엇을 더 바라랴.

 

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수사기관에 형사 고소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노동청에 형사 고소했을 때 근로감독관은 저보다 많이 아시네요라고 할 정도로 전문성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그건 검찰이 나에게 보여준 것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최근 시사IN’에서 검찰에 대한 시민의 인식 저변을 보여주는 대형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했는데 검사는 권력자의 부패와 기업의 비리를 단호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항목에 약 70%의 시민이 그렇지 않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 내 사건이다 보니 객관성을 잃은 줄 알았는데 실은 시민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대리점주의 부당노동행위 8건을 묶어 형사 고소를 했고 지방검찰청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했었다. 고등검찰청에 전화하면서까지 기간을 연장받아 정말 피말리며 항고이유서 작성에 몰두했고 몸무게가 무려 5킬로그램이 넘게 빠져서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4건이나 재기수사명령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한 건도 어려운 재기수사명령을 4건이나 받았으니 기대감이 컸었지만 결국 지방검찰청은 불기소 처분을 반복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대리점주는 인센티브를 전직원에게 8개월 간이나 통장에 입금했었다. 그런데 첫 단체교섭 직전 일방적으로 중단한 사건에서 담당 직원의 업무상 착오였다는 대리점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검찰의 결론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왜냐면 담당 직원은 입금할 때마다 대리점주에게 결재를 올린다했고, 계산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하라는 것도 대리점주가 시켰냐는 질문에 사실이 그렇다한 음성 녹취록을 항고이유서와 함께 증거로 제출했었다. 고등검찰청은 그에 따라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고 보는데 지방검찰청은 대리점주의 지배 아래 있는 부하직원의 진술 번복을 처음의 불기소 처분 이유로 똑같이 썼던 것이다. 보지 않으려 하는 건 검찰도 마찬가지다.

특히 검찰은 주장이 상이하여 대질조사 등이 필요하다며 수사 지휘를 했었고, 근로감독관은 그런 내용의 우편까지 보냈었는데 그런 점에서 노동청이든 검찰이든 대질조사 한 번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가 어렵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또는 법치국가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약탈적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도 법치도 그 자본 아래 있다이 선언이자 확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노동인권과 사회적 약자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에서도 나온다.

법원은 2003. 7. 22.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 자동차판매연대지회만 보자. 우리 지회가 2015년 설립된 후 많은 대리점이 폐업됐고, 수많은 동지들이 해고됐다. 그 과정에서 한 대리점주는 동지 9명을 마치 처형하듯 일정 간격으로 해고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로 인해 동지들의 삶은 처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대리점주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이게 노동을 대하는 우리 법원의 현주소다. 그걸 뚫고 피눈물과 희생을 재단에 바친 후에야 마침내 우리 지회는 근로3권을 쟁취했다. 우리 지회는 대리 점주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현안사항에 대해 전국 각지에서 합의가 잇따랐다. 나는 지회의 지시를 받아 합의를 파기하고 출근하지 않는 대리점주의 집 앞에 노조현수막을 게시했다. 이로 인해 나는 사실을 적시한 죄로 검찰의 벌금 구형을 훨씬 웃도는 법정 구속이란 참변을 겪었다. 9명을 살인한 대리점주는 벌금형이고, 살고자 외친 노동자는 감옥행인 21세기 대한민국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판사의 이름도, 직인도 없는 나의 구속영장에는 도망의 염려에 체크가 됐다. 도망의 염려라니. 나는 당일 오후에도 아반떼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었고 계약 후 미출고만 40대였었다. 내가 어딜 봐서 고객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도망간다는 것인가. 이토록 우리나라는 비정규 노동자가 헌법상 근로 3권을 쟁취하기도 어렵지만 지키기엔 더 어려운 나라다.

최고법 헌법에는 근로라는 표현만 있을 뿐 노동이란 단어는 없다. 우리 지회는 근로 3권을 쟁취했으니 나는 근로자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리점주들이나 원청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도 우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법상 근로자가 하위법상 근로자가 아닌 복잡한 법리는 무엇이며, 도대체 나의 진짜 사장은 누구란 말인가. 근로자가 주체를 표현하면서 노동자라고 외치는 순간 감히 시건방 떤다고 국가는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2021.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개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설명자료의 노조법 개정배경을 보면, “최근 국제사회가 노동과 무역의 연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노동기본권 보장은 단순히 노동의 문제를 넘어 경제· 통상의 문제로 확대된다고 했다. 국가는 알고 있다. 자본에 의해 점점 쪼개지고 흩어지는 비정규 노동을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 조국은 국제 사회에서 떠밀려날 것을.

바보야, 문제는 노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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