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노사가 경영 위기에 대처하는 법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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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지난 5월, 마지막 남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34명이 복귀했다. 12년에서 딱 한 달 빠지는 기간이 걸렸다. 그 사이 30명 넘게 세상을 등졌다. 쌍용차의 집단 해고 사태를 보면서 스웨덴의 볼보 매각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스웨덴의 국민기업이라 불리던 볼보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상황을 거쳤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숱한 기업이 무너졌다. 중장비와 자동차 제조의 명가인 볼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4개월 동안 볼보 직원 2,900여 명이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볼보는 결국 중국에 매각되었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2,900명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에서 가장이 갑작스레 실직하게 되면 온 가족이 혼란에 빠진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은 물론 의료보험 등 공공서비스도 제한된다. 목돈으로 나가는 아이들 학비며 사교육 비용은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가족 모두가 말 그대로 막막한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 의료 서비스가 이미 무상으로 지원되는 북유럽은 상황이 좀 다르다.


볼보 본사는 스웨덴 남쪽 항구도시 예테보리에 있다. 볼보가 집단 해고를 시행하기로 하자 예테보리시는 비상이 걸렸다. 충실한 납세자 2,900명이 갑작스레 지위를 바꿔 실업급여 수급자가 되는 셈이니 시에서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온 나라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웨덴 정부의 국영 직업안내소와 예테보리 지자체, 볼보 인사팀이 머리를 맞댔다. 스웨덴에서는 정리해고를 할 때 6개월 전에 해고 통지를 해야 한다. 특별팀은 해고 통지 후 바로 볼보 안에 직업안내소를 설치했다.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볼보로 출근하면서 이직을 준비했다. 해고 대상은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는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같은 노조의 보호를 받는다. 다만 스웨덴은 구조조정 명목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때 연차가 낮은 순으로 내보내도록 되어있다. 급여 설계가 한국처럼 호봉제가 아니라 일의 성격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승 없이 머무르기 때문에 같은 연봉이라면 숙련된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젊은 사람의 경우 직업 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업으로 이직이 더 용이하다는 이유도 있다. 


해고 통지를 받은 볼보 노동자들은 기존의 직종과 연관성 있는 업체로 이직을 하기도 하고, 이참에 직업을 바꿔보겠다 재교육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직 희망자를 위해 회사는 나서서 추천서를 써줬다. 경영 상황이 어려워 해고했을 뿐 어디서도 맡은 일을 해낼 능력 있는 노동자임을 보증했다. 사람들은 해고 통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출근했다. 스웨덴 정부와 지자체, 노동조합과 회사가 힘을 모아 재교육과 전직을 알선했다. 해고 통지 1년 만에 2,900명 중 2,635명이 전직했다. 경영 상황이 좋아지자 볼보는 약속대로 해고 노동자를 우선 고용했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지 2년 만에 1,556명이 볼보로 돌아왔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일어났을 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시위 중인 사람들을 강제 연행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중간에 해고 노동자 우선 고용을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기까지 11년 11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30명이 넘는 목숨이 병이나 자살로 세상을 등졌고 한국 사회에 상처로 남았다.


쌍용차도 볼보처럼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스웨덴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사회안전망과 노사 문화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해고는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 스웨덴과 달리 우리의 노사는 서로를 투쟁의 대상으로 여긴다.


스웨덴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좋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이야 노사관계의 모델로 툭하면 언급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 모두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스웨덴은 극렬한 장기파업으로 유명했다. 농성 중에 군대가 발포해 몇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험상궂었다. 비슷한 시기 덴마크에서도 전국 단위 파업이 줄을 이었다. 경영진은 될 대로 되란 듯 직장폐쇄로 맞섰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노사는 이대로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두 나라 모두 극적인 타협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1899년 덴마크의 9월 대타협, 1938년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이 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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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


덴마크의 9월 대타협은 100년도 더 전에 이뤄졌다. 그때 노동자와 경영자가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할 수 있으며, 경영자는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대신 정부가 나서 해고자에게 연금을 주고 직업을 찾아준다. 물과 기름처럼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개념인 고용 유연화와 고용 안전성을 결합한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모델이 바로 덴마크식 해법이다. 기업은 경영의 자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해고가 자유롭다. 하지만 노동자는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장 450일 직전 월급의 80%에 이르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고용노동부는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가며 노동자에게 직장을 구해주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대립에 지친 노사가 스웨덴의 유명한 휴양지 살트셰바덴에 모여 약속한 것이다. 스웨덴 경영자연합회(SAF)와 노동조합총연맹(LO)은 그 자리에서 가진 패를 다 내려놓았다. 회사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노조원들을 설득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대신 정부가 나서 무상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와 교육 지원을 약속했다. 기업은 회사가 일군 이익을 노동 환경 개선에 쓰는 한편 배당 수익의 일부를 사회 환원하는 대신 지주회사를 통한 소유 구조와 차등의결권을 보장받았다. 스웨덴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다.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노사는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첫발을 내디뎠다.


노동자와 경영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하게 여기는 것은 제도로 자리 잡았다. 기업 운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의 문을 노동자에게도 열었다. 1976년 시작된 노동 이사제를 통해 25인 이상이 기업일 경우 전체 이사 수의 1/3에 해당하는 좌석을 노동자 몫으로 보장받는다. 노동조합이 지정한 노동 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한다. 이들은 대표이사 등 회사 경영진과 함께 주요 결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의결권을 행사한다. 노동자 대표가 의사 결정에 참여하니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스웨덴의 경우 노동자 측은 물론 경영자도 노동 이사제를 적극 찬성한다. 노동자 대표가 회사의 경영 상황을 고스란히 알고 있으니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고 때로는 동료 노동자를 설득해 함께 위기를 극복하도록 머리를 맞대니 든든하다고 한다. 


해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다. 기업의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시장은 결코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기업은 절대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고, 서로 대립하고 적대하는 노사 문화에서 한쪽이 손을 내미는 일도 쉽지 않다. 만약 교육과 의료가 보편복지로 해결되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정부와 지자체, 회사와 조합이 함께 나서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다독이며 이직을 알선했다면 11년 11개월이나 걸렸을까? 그때도 해고는 곧 죽음이라며 노동자들이 강하게 저항했을까? 어떤 회사도 경영이 나빠질 수는 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해결 방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스웨덴 실업률이 10%까지 오를 전망이다.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고, 기술 변화에 따라 직업 교육을 통한 직무 변경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개별 노동자는 큰 걱정이 없다. 정부와 기업가, 각 산별 노조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기술 변화와 함께 달라진 환경에 발맞추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산업이 재편되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국가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노조와 정부 측에서 거의 매일 브리핑으로 하며 지원책을 내고 있다. 노동자는 변화의 걸림돌이 아닌 동력이다. 복지가 튼튼해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일자리도 생긴다. 쌍용차의 아픈 경험이 선순환의 첫 바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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