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우리들만 있는 줄 알았다

by 센터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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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남양주시 육아종합지원센터 대체교사



저는 지난해 남양주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했던 대체교사입니다. 남양주시에는 대체교사 32명이 있었습니다. 대체교사는 어린이집에 근무 중인 담임선생님이 연차를 써야할 때 보육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담임선생님 자리를 대신해 주는 교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32명 대체교사 전원은 작년 11월 30일 계약 만료 통지문을 받은 후 2018년 12월 31일까지 근무하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대체교사-기자회견.jpg

2019년 2월, 대체교사 전원 복직과 사업 정상화를 요구하며 남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육아종합지원센터분회)


우리는 비정규직입니다. 그것도 24개월부터는 무기계약직이 되니 2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비정규직입니다. 저는 비정규직이라는 인식도 미처 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1년에 한 번씩 계약서를 다시 쓰고, 최장 23개월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일하는 게 비정규직이구나 하고 알아갈 즈음 선배 대체교사 선생님들이 23개월 이상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명도 재고용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이 있고 단체협상을 통하면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동료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어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꼭 필요하며 언제나 저희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힘들 때마다 달려와주는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노동조합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웃고 울며 지내온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우리 대체교사들은 남양주시에 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연차를 위해 정말 열심히, 보람을 느끼며 근무했습니다. 휴가를 가기 어려운 어린이집 상황을 알기에, 선생님들을 휴가 보내드릴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매주 다른 원으로 출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을 보내고 원장님과 선생님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감사했습니다. 대체교사는 원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배우는 것도 참 많았습니다.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정말 좋은 원장님과 선생님들을 만나 그분들께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원을 경험해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되었고 나중에 다시 어린이집 교사로, 원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대체교사 경험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31일, 우리 대체교사 전원은 계약 만료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사업을 1~4월까지 하지 않겠다는 센터 계획에 우리는 한순간 사랑하는 일터를 잃었습니다. 그때의 참혹하고 답답한 심경을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교사 사업 중단으로 남양주시 관내 650개소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휴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는 원장님들과 선생님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체교사 신청하려 했는데 사업을 안 한다고, 어떻게 하냐고, 교사를 구할 수 없어 선생님들 휴가를 못 보낸다고. 독감에 걸린 선생님, 유산을 한 선생님, 상을 당한 선생님, 사고로 다리에 깁스를 한 선생님들. 정말 안타까웠지만 어린이집과 선생님들은 시청이나 센터에 항의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목소리도 못 낸다고 합니다. 민원을 넣으면 시청에서 감사라도 나올까봐 전화도 못 건다고요. 어린이집도 시청과 센터 앞에서는 을 중에 을이었습니다.


우리 대체교사는 채용 당시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채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업 종료와 함께 몰아닥친 계약 만료로 인한 집단 해고는 선생님들 전원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교사가 노조에 가입하고 조금이라도 권리를 주장하면 사업을 중단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것이었나 봅니다. 그 때문에 남양주시 전 어린이집 교사들이 휴가를 갈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대체교사 사업은 상시 지속 사업이고 현장 교사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노조의 강력한 주장에 센터는 겨우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채용 방식으로, 채용 공고에 응시했던 기존 대체교사 선생님을 전원 탈락시켰습니다. 남양주시청 채용에 의혹이 있다고 이야기하니 2차 채용 공고는 공정하게 하라고 권고하겠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합니다.  공정성에 대해 어떻게 보증할 수 있겠냐, 이미 1차 채용에서 센터의 공정성은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이야기해도 시에서는 공정하게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와 더불어 공공부문 민간위수탁의 폐해가 절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위수탁 관계이기 때문에 예산만 내려주고 잘 사용했는지 서류로만 확인할 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시의 태도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그래서 재차 삼차, 시에서 지도 감독 책임이 있고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도록 지시할 권한이 있다고 시의 권한을 이야기 해줘도 그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시늉을 합니다.


1.대체교사-농성장.jpg

남양주시청 앞에 차린 농성장(@육아종합지원센터분회 )


이번에는 우리가 이런 일을 겪었지만 다음에 들어오는 대체교사 선생님들은 더 안 좋은 조건에서 근무하게 되고, 또 후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런 사회를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청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피케팅을 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보육교사가 되었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웃던 하루하루에 큰 보람과 의미를 느끼며 사는 게 다였던 우리가 농성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농성장에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이야기 듣고 연대를 오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응원에 우리는 많이 놀라고 감동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소수의 우리만 권력에 대항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 여기저기에서 투쟁하고 바른 소리 내는 분들이 많이 있으며 또 그분들이 우리를 응원해 주고 있었습니다.  


농성장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이야기 합니다. 투쟁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고 응원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사람을 얻은 것 같다고요. 우리가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사회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라고요. 정말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농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대해주고 응원해주는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아직 사회는 희망이 있고, 살 만한 것 같습니다. 우리 남양주시 육아종합지원센터 대체교사 선생님들도 더욱 힘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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