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일자리 정책과 일자리위원회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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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정책국장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다.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 방문에서 선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함께 대통령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안이 취임 직후 국무회의에서 처리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마련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일자리위원회 구성, 일자리 로드맵 발표로 이어졌다. ‘소득주도성장론’과 함께 일자리의 질과 양을 모두 개선하겠다는, 혹은 그렇게 기대된 정책 방향은 노동계를 비롯해 국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취임 1년 후 진행된 ‘고용대란’ 논란은 정부의 고용 정책, 정책 의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용통계와 관련된 쟁점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고용지표가 악화 혹은 정체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진단된다. 특히 일자리 양은 물론, 소득 분배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에 모든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간 갈등이 심심치 않게 알려지며 정부 내부에서도 합의된 대안이 있는지 의문이 생기고 있다.


5.일자리.jpg

2017년 6월, 청와대 본관에서 일자리위원회 민간위원 위촉장 수여식 후 기념촬영.


일자리위원회 구성과 운영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에 놓겠다고 표명한 만큼 이를 실행하기 위한 로드맵 마련과 실행기구 구성 결정은 속도를 냈다. 일자리위원회는 고용 정책과 연관된 장관과 출연연구기관 원장과 노동계, 전문가를 포함한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 위촉과 산하 부문별 전문위원회 구성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결국 구체적인 정책을 담당할 전문위원회들은 2018년 들어서야 정식 위원 위촉이 이루어진다. 이 기간에 첫 책임을 맡았던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상당 기간 운영에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 이후 4월 들어 이목희 부위원장이 취임한다.


한국노총은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큰 내부 논쟁 없이 결정한 반면, 민주노총은 참석 여부를 두고 상당한 내부 논쟁을 거친다. 일자리위원회가 민주노총이 탈퇴하기로 했던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 성격인지, 새 정부와 어떤 협의구조를 가질 것인지 등이 쟁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노정 교섭(협의)에 응하는 것을 조건으로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며 병행추진하기로 한다. 


이러한 참여 조건이 사후적으로라도 충족되었는지는 노정, 노사정 관계와 관련해 별도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당시 내부에서 논쟁한 쟁점은 앞으로도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재구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그 이전에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그 산하의 여러 업종·특성별 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의 관계가 문제다. 고용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노사정 사회적 협의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이고 협상의 카드가 되기도 한다. 이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어디에서 다룰 것인가가 쟁점이 되는 등, 계속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한편, 돌이켜보면 당시 구성 과정에서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일자리위원회는 설치규정에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한 주요 정책 등에 관한 사항을 효율적으로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일자리위원회 구성 이전에 이미 정부의 일자리로드맵은 대선 공약 등에 기반하여 사실상 제시된 상황이었다. 일자리위원회가 이후에도 정책을 새로 마련한다기보다는 이미 마련된 정책을 이행하는 다소 수동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부 위원회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한계일 수도 있다. 위원회가 부여된 위상에 걸맞게 정책을 총괄하거나, 각각의 위원들도 위촉된 이유에 걸맞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8차까지 진행된 일자리위원회 본회의는 정부가 이미 제출한 의안에 대해 민간위원들이 약간의 의견 표명을 한 후 통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위원들, 특히 관련 분야 전문성을 가진 민간위원과 사전에 의안에 대한 충분한 협의가 진행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최근 의료영리화로 비판받는 의제는 노동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하 위원회(보건의료특위)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상정되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고용 정책에 대한 정부 내 갈등과 맞물려 일자리위원회가 여러 부처의 일자리 관련 정책을 통괄한다는 명목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일자리 정책 방향을 수립, 제시할 수 있는 위상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는 부처 간 이견 조율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공공부문 일자리에 필요한 재원과 제도 개선, 민간부문 일자리에 필요한 재정 정책, 거시경제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관건이나, 오히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다른 부처가 미시적인 정책 방향을 바꾼다고 해도 그 효과에는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부처 간 심의·조정’의 핵심은 기획재정부와의 협의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정부 내 일자리 정책에 대한 조율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이 말뿐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히 경제 정책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평가하고 조정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실제로 일자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일자리 정책을 통괄하고자 한다면, 자체적인 정책 기획 기능을 갖출 필요가 있고, 기획재정부가 일자리 정책에서는 일자리위원회의 논의를 우선하게 하는 등 정부 내에서 정책 수립, 조정, 집행 방식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고용 악화와 정책 혼선


앞서 일자리 로드맵이 일자리위원회 구성 전에 이미 마련되었다는 점은 지적했다. 정부가 신속하게 정책 의지를 밝히고 추진해갔다는 점에서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만큼 충분한 준비와 정부 내 공감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자리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물론 정부 내 합의도 부실했다는 점은 이후 고용 정책의 혼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정책 준비 시기가 짧았던 만큼 꼼꼼한 실행 계획과 특정 정책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 대책도 충분히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정책이다.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실현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보완 방안이 처음부터 병행되었어야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런데 일자리위원회는 미시 정책이라고 할 업종별, 부문별 일자리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시경제와 전체 노동시장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 내에서라도 정책적 준비와 보완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하나 그렇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부는 뒤늦게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는 등 정책적 보완에 나섰다. 물론 여전히 불충분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일자리 확대에 대한 접근 방향을 더욱 선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일자리위원회 8차 회의는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개최되었는데 기업(사실상 재벌대기업)의 우선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 직전 회의에서는 의료영리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바이오헬스 新성장동력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계획’을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결하고 말았다. 


물론 좋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거시경제가 개선되어야하고, 민간부문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가 공급되는 제조업 활성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재벌 개혁, 공공서비스 강화와 같은 정책 방향이 민간 일자리 확대와 상충되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그런 정책 방향 하에서 좋은 일자리를 확대할 다양한 정책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사실상 ‘기업 규제완화’로 이해된 ‘혁신성장’ 정책이 일자리 정책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고용 정책의 실패를 보완할 방법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격이다.


정부가 주로 책임져야 할 공공부문 일자리 부문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위한 예산이 재정당국의 의지 부족과 국회의 비협조로 제대로 마련될 것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 의지로 추진하기 용이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회서비스원(공단)의 신속한 추진이 필요하나, 개별 공공기관과 지자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생명안전, 사회복지 등 필수 서비스 확대를 통한 일자리 확대 방안은 아직 본격적인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형편이고, 자칫 실종될까 우려된다.


‘일자리 정부’에 걸맞게 성과를 내려면


사실 고용 문제는 정부의 개별 정책에만 책임을 묻기 이전에, 거시경제 동향과 산업구조와 시장동향, 인구구조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경제 체제 자체와 산업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경제 체제를 바꾸는 개혁도, 고유한 고용 정책 자체도 둘 다 모두 모호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고용 정책 자체로도 다시 정책 방향을 점검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정부가 책임질 공공부문에는 애초 계획처럼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 예산 반영과 함께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체·왜곡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과 함께 비정규직 사용, 외주화를 촉진하는 인건비 지침과 평가 제도를 개선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는 당장 가능하다. 민간부문에서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재벌 개혁과 하청 노동자 보호,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생존권을 보장하는 산업 구조조정 등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이 상당 부분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에 제시되었거나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던 정책들이다.이러한 일자리 정책은 노사관계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자리위원회이든 다른 노정협의를 통해서든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자리 정책에서 정부가 재벌 대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목소리는 귀담아 듣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일자리위원회가 이를 위한 총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위상을 강화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오히려 과감하게 정책 추진 체계를 바꾸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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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형 정책국장은 일자리위원회 공공전문위에 민주노총 추천 민간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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