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가즈아~] 노동의 교집합, 최저임금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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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 청년유니온 조합원



7년 동안 거친 다섯 번째 직장에서 세 번의 임금 협상 중 가장 많은 금액이 오른 올해였다. 작년에는 실수령액 136만 6,050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무려 18만 9,180원이나 늘어났다. 최저임금이 달라지는 매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면서 150만 원을 웃도는 월급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여기에 더해 공공기관에서 함께 일한 선·후배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주임이라는 호칭도 얻게 되었고, 재계약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저임금을 시행한 1988년에 태어난 나는 시간급 4,000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최저임금에 맞춰진 삶을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 직장 체험, 인턴을 거쳐 처음 받은 월급이 80만 원 남짓이라 교통비와 식비를 제외하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돈이 남았다. ‘88만 원 세대’로 존재했던 나는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로 받는 임금이라 당시 여유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5.수업.jpg

초등학생에게 마을시민활동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고아라 씨.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로 불리지만 이전에 없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보낸 10년지기 동료와 현장을 활보하고, 책 10권을 사볼 수 있는 경제적 자유도 만끽하며 나를 키우는 힘을 즐기고 있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배우게 된 꽃꽂이도 취미로 시작하고, 온라인 강의를 통해 사회복지학 공부도 이어가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 동생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겼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일상생활에서 오는 긴장감을 줄일 수 없지만 이전에 적응해 왔던 조직 생활 방식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가진 자원이 적었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의 폭도 좁았기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만 동료에게 말하곤 했다.


올해의 나는 예전과 비슷한 환경에 처했을 때 다르게 대응했다. 때마침 언론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면서 직장 내에서 자연스럽게 대화 소재로 꺼냈다. 동시에 나의 노동 경험을 돌아보고 주위 사람으로부터 나를 감추거나 고립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내 자신을 드러내 나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옹호하고 싶었다. 작년 말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공공기관 종사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일 경험을 공유하며 여러 동료와 선·후배를 만났다.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 서로의 불안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극복하는 과정을 겪었다. 새로 임용된 공무원보다 경력이 많아도 임금 차이로 조직 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일부터 최저임금을 받아도 업무 수준과 강도가 낮지 않은데 저평가된 노동력을 가진 개인으로 취급받는 일까지 직장에서 겪은 불편한 경험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공무원과 구분되기를 강요받는 자리에 있는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면서 나의 상태와 위치가 더욱 선명해졌고, 최저임금이 낙인으로 찍히곤 했다. 노동 문제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노동 상담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렵게 알게 된 노무사를 찾아가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해서 우리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공식적인 도움을 요청하고자 기관을 방문했을 때, 업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공무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상담을 하는 내내 제약을 받았다. 노동 인권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이 내부에 알려졌고, 이후 추가 상담을 받으러 갈 때 조직 내에서 의견 조율과 팀장의 허락을 거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공무원과 동행해 함께 상담을 받게 되어 비밀보장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상담 도움을 요청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고, 내가 가진 자원과 지지 체계를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희망의 불씨를 지펴준 청년유니온 북서권 동네모임 친구들, 깊은 관심과 사명감으로 문제를 함께 해결한 인권센터 인권 전문 상담원 선생님,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확신을 더해준 코디네이터 주임님 등 곁에 있어준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가 가능성의 범주를 넓혀 주었다.    


스펙, 연봉, 학벌과 같이 주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나에게 최저임금은 다르게 적힌다. 노동자의 삶을 숫자로 환산된 가치로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일에 성취감을 가지면서 축적한 시간이 모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힘으로 치환되었다. 이렇게 자신만의 목적과 직업관을 가지고 일하는 여러 노동자가 지켜낸 내적인 보상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은 노동하는 개인의 삶에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더 큰 행복을 가져오는 매개체가 되리라 확신한다.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도구로 인식했던 최저임금이 나의 일 경험을 새롭게 이해하고, 노동자의 희로애락을 담은 삶의 이야기를 개발하는 수단이 되었다. 더불어 노동자의 삶을 재조명하는 최저임금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었다.


노동과 연관된 최저임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다른 사회구성원과 연대하고 있다는 유대감이 든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혜택이나 피해를 비슷하게 주고받으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도움을 준 사람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지만, 공공적 영역에 기여하면서 자신이 힘들 때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자신을 기꺼이 도와주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일상생활에서 맺는 관계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때, 인상된 급여를 받는 개인의 삶이 향상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효능감은 더욱 커진다. 나 역시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4대 보험이 늘어나서 좋았다. 그간 4대 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직업을 거치면서 내게 있어 4대 보험은 직장인으로서 인정받는 수단 중 하나였다. 이전보다 4대 보험료를 많이 낼 수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나의 역량이 향상된 느낌도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가장 좋은 결정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일상의 요구와 충돌하는 자원의 불균형을 고민하며 대안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노동을 하며 우리가 지켜낸 것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일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믿음이다. 최저임금과 비례하여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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