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 성평등 노동은 장벽 제거다

by 센터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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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1.성평등정의.jpg

①현실                                        ②기회와 조건의 평등                   ③적극적 조치                      ④성평등 노동 실현


#Me too. 2018년을 여는 화두가 되어 버린 외침.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비로소 입 밖으로 낸 비명이자,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차별의 단면이다.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은 여성 폭력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해 온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표지’이며 ‘여성에게 예속적 지위를 강요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 가운데 하나’라 규정한 바 있다.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성이 한 사람의 존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 왔고, 남성 권력은 이러한 계급 구조를 철통같이 방어해 왔다. 


여성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표면적인 법 권리를 획득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로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몸 속 깊숙이 박혀 있는 철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남성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는 여성을 늘 도구적으로 사고해 왔다. 아이를 낳는 도구, 가사 노동을 하는 도구, 노인과 아이를 돌보는 도구. 이러한 사고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며 2016년 말 행정자치부가 만든 그 끔찍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지도에는 각 구별 가임기 여성의 숫자까지 나와 있었다. 여성을 삶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시민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도구로 사고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는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몸속에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을 키우느라 고달프고 힘든 여성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한 자리임을 강조한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런 도구적 사고가 바뀐 것은 아니다. 지난 12월 26일 정부가 발표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 일자리 대책’ 자료를 보면 여전히 ‘아직 여성 인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여 성장 잠재력 제약’, ‘여성 인력 활용은 기업 경쟁력에 필수’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여성은 주어가 아니라 활용되는 객체이다. 국가는 여성이 한 명의 주체적 노동자로서 재능과 노력을 꽃피워 사회에서 존중받는 독립적 시민으로 자리 잡는 것을 지원해야한다. 그러나 여성은 국가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모든 정부는 지속적으로 같은 용어를 사용해 왔다. 즉, 같은 철학으로 여성을 대우해 온 것이다. 


또한 여성 일자리 대책은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에 집중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이 해결되면 모든 여성 노동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이는 여성의 전 생애에 걸친 차별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 문제를 단순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노동 시장을 이탈하는 현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뒤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 더 나은 저임금,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 보조적인 일, 막혀있는 승진사다리, 아이의 돌봄과 가사 노동을 함께하지 않는 남성, 심각한 장시간 노동 등등. 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출발점은 차별적 입사 과정이고 시작된 차별은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된다. 


언제나 면접 과정에서 결남출(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사장의 지시로 합격자가 남성으로 뒤바뀐다. 여성이 많이 선발될까봐 성별 분리 면접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1차 노동 시장에서 탈락한 여성들은 2차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영세사업장을 전전하게 된다. 어떤 회사를 가든지 주요 업무를 맡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주요 업무는 남성, 보조 업무는 늘 여성들 차지다. 아예 직군 분리를 통해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을, 고용형태를 분리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직군 분리를 하면서 기업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한 처벌을 피해가기 위해 영리하게 다른 성을 일부 끼워 넣는다. 여성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승진에서 누락되고, 그즈음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사적 사건과 조우한다. 이 상황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는 것을 경력 단절이라 부른다면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단순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책만 만들면 되는 것일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승진에서 누락된 여성들은 40세 전후로 퇴사를 강요받는다. 고용 단절이다. 남성의 나이듦은 노하우로 인정받지만 여성의 나이듦은 ‘시듦’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고 있을 때 40세를 전후로 여성들은 전혀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40세에 이전에 일했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면 결과는 비정규직이다. 40세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는 여성 비정규직은 경력 단절과 고용 단절의 결과이다. 실제 임금이 가장 높은 나이대가 남성은 45~49세인 반면 여성은 35~39세이다. 45~49세 사이 노동자들의 남녀 임금 차이는 무려 240만 원이다(고용노동부, 2015, 성별 연령별 월임금 총액). 


이미 우리 사회는 남성이 혼자 벌어서 가족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깨진 것이다. 보수정권은 이를 1.5생계부양자 모델로 전환시켰다. 남성 1과 여성 0.5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여성들을 그 자리에 밀어 넣었다. 이 뒤에 깔린 철학은 여성은 가사와 돌봄의 전담자라는 생각이다. 가사와 돌봄을 주업으로 하되 시간을 내어 노동을 해 ‘반찬값’을 벌라는 구도이다. 그러나 시간제는 대부분이 저임금비정규직이고 승진이나 복리후생에서의 당연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4대보험이나 퇴직금, 시간외 수당 적용률도 매우 낮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주휴수당이나 4대보험, 연차휴가 등의 조항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노동법의 사각지대라는 것이다.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의 노력 끝에 이런 시간제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 중 21.6퍼센트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전체 시간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80만 원. 이들 중 71.4퍼센트가 여성이다(김유선, 2017,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2016년부터 최저임금을 밑돌기 시작했다.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정부 대책은 여전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및 유연근무 활성화이다. 네덜란드 등 서구에는 시간제 일자리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차별 없는 근로 조건을 쟁취한 후에 확대되었다. 이런 사회적 합의 없이 가장 차별 받는 시간제 일자리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다가는 여성의 일자리는 가장 열악한 시간제 일자리로 고착화될 우려가 높다. 지난 정부에서의 가장 큰 정책적 실책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성평등 철학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서비스 돌봄 노동은 대부분 여성들이 수행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노인 돌봄,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의 올해 수가는 10,760원이다. 민간기관으로 위탁한 탓에 수가에는 기관 운영비와 각종 수당, 퇴직금, 4대보험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수가는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지급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렇게 수가가 결정된 지는 몇 년 되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수가를 올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문을 닫는 기관들이 속출하고 있다. 여성노동자회 산하 기관들은 그나마 적자를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 왔다. 문을 닫으며 노동자들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았던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되면 이를 요구할 것이라는 다른 기관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가를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정부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여성의 노동, 돌봄 노동에 대한 지독한 가치 저평가 때문이다. 그동안 여성들이 그림자처럼 무보수로 해 왔던 노동이기에 그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었고, 여기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여성 노동의 저평가는 심각한 저임금을 불러 온다. 2017년 8월 기준, 남성 정규직 임금(342만 원)을 100이라 할 때 남성 비정규직(188만 원)은 55.0퍼센트, 여성 정규직(242만 원)은 70.6퍼센트, 여성 비정규직(129만 원)은 37.7퍼센트다. 이런 비정규직이 여성 노동자의 52.4퍼센트이다. 여성노동자회는 지난해부터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 비정규직 임금을 날짜로 계산한 ‘임금 차별 타파의 날’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5월 18일이다. 이는 여성 비정규직은 남성 정규직 임금과 비교했을 때 5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법을 어겨도 기업들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노동조합조차 성차별과 모성권, 사내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거나 도구적으로 활용한다. 단 한 번도 성폭력의 위협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이 있는 반면 일상적으로 그 위험에 노출된 이들이 있다. 세상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여성 노동 문제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만 해결한다고 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수립, 집행해야 하며 보다 강하고 폭넓은 연대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온전하게 동등한 시민이며 존중받는 노동자가 될 때, 비로소 성평등 노동이 실현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밑의 받침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벽 자체의 제거가 필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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