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정규직] 온전한 정규직 방안 모색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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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웅 센터 정책연구위원장, 부경대학교 교수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매우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가이드라인 발표 후 한 달 만에 추진단 및 컨설팅팀 발족, 기관별 심의 및 협의 기구 구성, 현장 실태조사 등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9월에는 전환 규모와 방식을 구체화한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1단계 전환 대상은 총 852개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 국공립 교육기관, 공기업 등에서 일하는 31만 명의 기간제, 파견, 용역 노동자이다. 그 중 실제 전환 인원과 전환 방식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확정해 올해 안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겠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정책의 허와 실


이전 정부들의 정책보다 긍정적인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전환 대상 고용형태에 기간제뿐 아니라 파견·용역 노동자도 포함시켰다는 점과 전환 심의위원회 등에 노동계 참여를 보장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아울러 상시지속적 업무의 판단 기준을 완화했다는 점, 무기계약직 처우개선을 추진한다는 점, 2~3단계에 걸쳐 전환 대상 기관의 범위를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과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 민간위탁기관들로 확대한다는 점 등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조치들은 촛불항쟁,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 정국에서 적폐 청산과 불평등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집권한 현 정부가 당연히 추진했어야 할 정책들이다. 장기간 힘들게 투쟁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반영된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당한 허점도 보인다. 정책 목표에 반하는 조치들, 즉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사 관계 정상화, 노동 시장 불평등 해소를 저해하는 조치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 기업 부담에 대한 지나친 고려, 혹은 정책 의지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정규직 고용형태 간 전환’인 ‘자회사 방식’과 ‘무기계약직 방식’을 정규직화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개별 기관들이 그러한 왜곡된 방식을 선택하는 데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범사용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 표준 방식을 너무 낮은 수준에서 설정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온전한 정규직화’ 요구에 제약을 가하고 기업의 편법 대응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자회사 방식과 무기계약직 방식은 정상적 정규직화 방식이 아니라 부분적 처우개선 조치로 분류했어야 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도입을 허용하고, 예외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했어야 했다. 두 방식이 고려된 주된 이유는 인건비 부담과 노사 관계 부담 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중 그러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기업이 있는가? 무기계약직 전환이 정규직 전환을 광범위하게 대체하고 자회사를 통한 아웃소싱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기간제, 무기계약직 모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노사정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표준 모델로 제시했어야 옳다.


자회사 방식은 어느 경우든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이는 논란거리가 거의 없는 사안이다. 민간 파견·용역업체 기간제 노동자를 공공기관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그렇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사용자-고용주-노동자 간 이중 계약 구조에 있다. A라는 업체(고용주)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A와 아웃소싱 계약을 맺은 B라는 업체(사용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A의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A의 직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를 ‘소속 외 노동자’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2016)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일 뿐 아니라 2002년 노사정 합의에 의해 국내에도 공식 적용되고 있는 정의이다. 사용자와 고용주가 어떠한 지분 관계(모기업-자회사 여부)에 있냐는 것과 노동자와 고용주가 어떠한 근로계약(정규직/비정규직)을 체결했냐는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여부를 판정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올해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공공부문 파견·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모두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내년 조사에서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율이 줄어들고 정규직 비율이 높아질까? 조사 문항을 보자. ‘임금(급여)을 지난 주 일한 직장에서 받았습니까? 아니면 파견업체 또는 용역업체로부터 받았습니까? ①지난 주 일한 곳 ②파견업체 ③용역업체’ 답은 올해와 같이 ② 또는 ③일 것이며,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도 달라지지 않는다. 과대포장하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의 성과도 전혀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


간접고용 확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를 강조하며 원청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계에 맞서 재계는 현재의 비정규직 규모 추정 방법에 문제가 있고 하청업체 노동자 중 상당수는 정규직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자회사 방식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이러한 재계의 주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주장들은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와 배치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원청-하청기업 간 평균 임금 격차는 하청기업 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보다 크다. 남우근(2017), 민주노총(2017) 등은 그간 국내에서 진행된 자회사 방식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이 대부분 노동 조건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2017년 법정최저임금은 8.84유로(1만 1,544원)이다. 임시간접고용(temporary agency work)의 법정최저임금은 그보다 4.4퍼센트 높은 9.23유로(1만 2,054원)이다. 독일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산별 협약을 통해 보호된다.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원청기업의 사용자 책임이 법적, 제도적으로 강제되지 않고 원청-하청기업 간 노동 조건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자회사 방식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기본 원칙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자회사 방식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 이 경우에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당사자 및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수 조건으로 요구되어야 하며, 모회사-자회사 간 임금 격차 해소 방안, 모회사에 대한 자회사 노조 교섭권 보장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은 ‘무기’라는 수식어가 의미하듯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정년 전까지 고용기한의 제한은 없지만, ‘계약’에 의해 정규직과 다른 임금, 직급, 승진 체계를 적용받는 모순적 고용형태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유사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모든 직접고용 전일제 무기직(indefinite work)은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무기계약직은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요구에 편법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증가했다.


외국의 사례도 드물고 국내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고용형태이기 때문에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에 관한 논쟁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등 국내 대부분의 통계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한다. 노동계, 언론 등에서는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뜻에서 ‘중규직’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규직과 구조적으로 차별화된 직제라는 점에서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이다. 정년이 보장된 시간제를 정규직으로 정의하지 않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기간제 전환을 정규직 전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정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간접고용·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역시 실제로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어느 한 유형의 비정규직에서 다른 유형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고용형태 간 전환’일 뿐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명칭 변경, 정원 관리 체계 변경, 인사 관리 체계 강화, 복지 포인트·명절 상여금·식비 지급 등 무기계약직 처우개선을 위한 긍정적 조치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러한 조치들이 근본적 해법은 될 수 없다. 무기계약직은 유지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고용형태이다. 기간제, 시간제, 간접고용 등과 달리 허용 가능한 예외적 경우를 찾기도 어렵다. 정규직제 편입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중앙행정부처, 지방자치단체, 국공립 교육기관 등 공무원(civil servants)으로의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독일 등의 사례를 참고해 정규직 공무직제(public employee)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 대통령령인 정부관리규정 개정을 통해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남우근, 2017).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경우에는 정규직제 확대 개편을 통해 포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비정규직-비정규직 전환?


노정 교섭에 의한 공공부문 산별 표준안이 마련되지 않고 개별 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전환 방식이 결정될 경우 비정규직-비정규직 간 고용형태 전환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공공기관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민간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에도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비용 부담을 높이지 않으면서 불평등 해소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유형의 비정상적 고용형태를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행정공학적,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간부문으로의 파급 효과를 염두에 두고 우선 공공부문부터 고용형태 정상화-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노사정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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