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값싼 노동자를 길러내는 ‘당신’만을 위한 제도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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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상임활동가



청소년 노동 인권 교육을 진행해 온지 어느덧 3년, 현장실습을 나가야 하는 특성화고 위주로 서울 전역에서 교육을 진행해왔다. 3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도 있지만, 현장실습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얼마 전 LG유플러스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에 대한 반증이지 않을까.


‘노동 인권’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 다행스러운 변화


3년 전 우리 단체(우리동네노동권찾기)는 노동 인권 교육을 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학교를 찾아다녔다. ‘진로진학부, 산학협력부, 취업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관련된 과를 찾아다니며 노동자가 될 학생들을 위한 ‘노동 인권 교육’을 제안했다. 그런데 꼭 핀잔 섞인 말이 따라왔다. 

“요즘 애들 알 거 다 알아요. 끈기가 없어서 그렇지. 지들 권리는 다 알아서 대들어요. 의무나 지켜야 할 예절도 알려줘야지···.”

혹은 ‘노동 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생소하게 느끼거나,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똑똑한 사회인 되기’(사회인이라는 건 노동자고, 똑똑한 사회인은 자신의 권리를 알아야 하니까), ‘특성화고 취업생을 위한 진로교육’(취업생에게 진로란 역시나 노동자로서의 삶이므로) 등의 그럴싸한 말로 바꿔 학교에 제안하곤 했다. 


불과 작년까지도 노동 인권 교육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교육청 장학사가 “인권 교육이 잘못했다간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며 보편적 노동 인권 교육에 대해 색깔론을 입혀 힐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3년 전에 비해 노동 인권 교육이라는 말은 이제 널리 쓰이고 있으며 당연히 필요한 교육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 인권 교육을 진행해 온 많은 지역단체들과 각종 센터들의 노력과 교육청의 제도 변화가 만나면서 얻게 된 긍정적 결과이다. 그리고 무수히 다치고, 죽어나간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현실들이 이뤄낸 그야말로 피의 결실이다. 


더 나아가 노동 인권 교육의 의무화와 정규교재 제작을 향한 다양한 시도들, 학교 교사들에 대한 노동 인권 교육과 관련 제도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3.스티커.jpg

내가 바라는 나의 노동에 대해 학생들이 쓴 내용(@우리동네노동권찾기)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현장실습생들의 처지


얼마 전 특성화고 중에서도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도 좋고, 취업률도 괜찮기로 소문난 학교에서 노동 인권 교육을 진행했다. 노동 인권 교육도 몇 년간 진행해온 학교였다. 수업을 시작하며 아르바이트 경험을 묻자 많은 학생들이 현재 하고 있거나, 해본 경험이 많았다. 서로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나누던 도중 학생들의 하소연이 시작됐다. 

“저 일하던 데가 망했어요. 그래서 20만 원 떼였어요. 사장님한테 계속 연락했는데 나중에 번호도 바꿨어요. 같이 일하던 식당 아줌마도 돈 떼였는데 신고해서 받았대요. 저도 신고하려고 하는데 그 사장님이 일수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조폭일까봐 무서워서 더 못하겠어요.”  

“저는 주휴수당 하나도 못 받았어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는데 야근수당도 안 줘요. 딱 일한 시급만 쳐서 줘요. 근데 말을 잘 못하겠어요.”

“어, 저는 7시간 넘게 일하는데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해요. 근데 일당 60,000원 받아요.” 

돈을 떼이고도 그 돈을 받기가 어려운 것은 비일비재하고, 주휴수당, 야간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청소년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사업장도 없었다. 더 난감한 것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그냥 그런가보다. 원래 그런 거겠지.’ 하고 마는 학생들의 태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의 잘못일까


노동 인권 교육을 함께 가는 강사들 중에 가끔 이런 고민을 토로한다. 

“정말 학생들이 너무 몰라서 걱정이에요. 조금만 자기 권리를 잘 알고, 어디 가서 당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도 이런 고민을 한참 했다. ‘교육시간에 조금만 더 집중해서 듣고, 자신의 권리를 알아 가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했다.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동 인권 교육을 하던 중 노동법을 확장시켜 온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였다. 그때 한 학생이 이런 반문을 던졌다. 

“어디 가서 그렇게 얘기하면 혼나요. 말 많다고···. 그리고 일단 제가 잘해야죠. 그래도 대든다고 할 텐데···.”

이어서 현장실습에서 학생들의 권리를 설명할 때(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취업 나간 데가 이상해서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돌아오려고 하면, 일단 참으래요. 그만두면 다른 데 취직 안 시켜준다고 해요” 한다. 순간 머리를 강렬하게 내리치는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 노동이 열악한 이유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고, ‘잘 모르고, 말 잘 듣는 순응하는 노동, 그만두고 싶은데도 그만둘 수 없는 강요받는 노동’ 때문이다. 학생들이 잘 몰라서가 아니라 잘 모르기를 강요받고, 그렇게 가르치는 교육과 노동 현장의 어른들 때문이었다. 


순응하고 무조건 일해야 하는 노동자, 누구에게 좋을까


현장실습의 본래 취지는 아래와 같다. 

표.jpg


이 책자에 나온 본래 취지와 특징을 가지고 있는 현장실습은 현재 대한민국에 없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 있다고 들고 나온다면 기꺼이 내 판단을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저런 취지와 방향을 살려 현장실습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3년간 교육을 진행하면서 한 군데도 보지 못했다. 

너무 어렵고 이론적인 전공 교육, 전공 교육과 무관한 사업체, 취업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현장실습, 사업체와 학교 어디에도 없는 전담지도자, ‘일할 땐 노동자, 돈줄 땐 학생’의 이중 잣대, 담임선생님의 역량에 따라 갈리는 천차만별의 현장실습,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노동. 넘쳐나는 문제들로 가득 찬 현장실습, 오죽하면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그런데도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취업난,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싼값에 해결하려고 하는 기업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의 태도를 문제 삼기보다 노동미스매치를 해결한다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며 그런 기업들의 비위만을 맞추려고 하는 국가 정책들.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기 착취를 벌이고 있는 대 사기극이다. 


3.특성화고.jpg

‘노동’ 하면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적어본 시간(@우리동네노동권찾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동 인권 교육 필요


노동하는 삶의 중요성,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힘을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노동 인권 교육이 그래서 필요하다. 현재 노동 인권 교육은 단발성으로, 그나마도 고3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 위주로 진행된다. 한두 번의 수업을 통한 교육은 한계가 있다. 유럽처럼 노동하는 삶, 사회적 관계, 노동법, 노사 모의 교섭 등 다양한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초·중·고 전체를 통틀어 학교에서 교육받는 시간이 2만 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 노동 인권 교육은 2시간도 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노동자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은 공교육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 인권 교육이 필수 교육으로 정규 교육화 되어야 더 이상 청소년 노동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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