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길을 찾다] ‘적폐’의 3단 구조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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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적폐란 누적된 폐단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 말을 처음 쓴 이는 좀 엉뚱하게도 지금은 옥중의 몸이 되신 박근혜 씨였다고 기억한다. 세월호 사건 직후 사태를 수습하겠답시고 해경 해체니 ‘관피아’ 청산이니 막 되는대로 주어 섬기던 때에 나온 말이었던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누적된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는 유의미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누가 이 말을 처음 꺼냈는지는 잠시 제쳐두고 그 적폐의 구조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적폐.jpg

박근혜 구속과 재벌 해체를 외치며 행진하는 촛불 시민들.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많은 숫자는 이른바 ‘갑을’ 관계에 걸려들어 신음하고 있다. 시장 경제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으로 이루어진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현실에서의 경제 관계란 아쉬운 쪽이(주로 돈을 받기로 되어 있는 쪽, 즉 ‘을’) 아쉽지 않은 쪽에게(주로 돈이나 여러 경제적 혜택을 주기로 되어 있는 쪽, 즉 ‘갑’) 일방적으로 엎드려 비위를 맞추는 관계이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서 경제생활이 조직되다보니 ‘갑’에 해당하는 이들의 온갖 횡포가 난무한다. 너무 종류가 많아 이름도 나열하기 힘든 ‘을’들은 그 부당함을 다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이걸 참아내면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우리는 ‘경제생활’ 혹은 ‘사회생활’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횡포가 벌어지지 않도록 시장 경제와 일반 사회에서의 여러 관계를 감시하고 또 규제하도록 되어 있는 장치와 제도들이 당연히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법 규정과 제도 및 기관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답게 아주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행정학자들에게 듣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난무하는 경제적 강자들의 횡포에 그 잘 갖추어진 법과 규정, 제도 및 기관들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업장은 무척 드물지만, 이에 대한 노동부의 행정 감독은 사용자의 횡포를 바로잡는 방편으로 쓰이는 일이 많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티끌만한 실수나 잘못만 있어도 무서운 몽둥이로 돌변하는 일은 대단히 많다. 그밖에도 ‘갑’의 횡포에 지칠 대로 지친 ‘을’들이 갖은 방법으로 그 법과 규정, 제도 및 기관들에 호소해 보아도 시원한(결코 일방적으로 ‘을’에게 유리한 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원칙에 근거한 공정한 조치를 말한다) 결과가 나오는 법은 없다. 이러한 부조리를 우리는 남양유업 사태에서 보았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고 있으며, 그밖에 열거할 수도 없는 무수한 사례들에서 볼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삶 속에서 매일 일상적으로 겪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적폐의 2차 구조이다. 국가 기구가 시장 경제와 시민 사회에서 독립된 위치에서 이를 감시하고 인도하는 공정한 심판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와 시민 사회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며 하나라도 더 뺏어가려고 날뛰는 경제적 강자들과 불가분으로 엮여 하나의 세력을 이룰 때가 많다. 여러 정부 부서마다 존재한다고 하는 이른바 ‘관피아’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후이다. 그 뿌리는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고도 경제 성장기에서 찾는 것이 옳다. 반공과 안보 이외에는 경제 발전을 최우선의 국정 목표로 내건 박정희 이래의 대한민국 국가는 그래서 ‘발전 국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발전 국가는 단순히 경제 작동을 시장과 시민 사회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부서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여 경제 활동의 역군으로 나서도록 동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철권 휘두르기도 서슴지 않았다. 


적폐라 할 만한 일들은 그 철권의 뒤에서 이루어졌다. ‘경제 발전과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명분하에 이렇게 자의적으로, 아니 경제적 강자들에게 유리하게 휘고 왜곡된 법과 제도와 장치의 결과 대단한 경제적 성장이 벌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실은 그 경제적 강자들과 바로 그 ‘발전 국가’의 주요한 인물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이른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혹은 관경유착의 형성이다.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 중에는(국내에도 잘 알려진 장하준 교수도 그 중 하나이다) 박정희 시절의 ‘발전 국가’가 아주 중립적이고 효율적으로 경제 발전을 인도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68년에 태어나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의 기억과는 전혀 배치되는 일이다. 내가 5살 때에 배웠던 단어 하나는 ‘와이로’라는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이 단어는(아마 일본어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네 아저씨도 모두 쓰는 말로서, 뇌물로 찔러주는 돈 봉투를 일컫는 말이었다. 관공서를 갈 때에도 와이로, 외국에 나갈 때도 와이로, 집을 살 때도 와이로, 심지어 학부모가 교사를 만날 때도 와이로.  이렇게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였으니 나는 이 와이로라는 것이 그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한 윤활유 정도로 알면서 자라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다시 적폐의 3차 구조가 또 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여 각종 정보기관, 검찰 및 경찰, 감사원과 국세청 등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사정기관이다. 이 구조는 본래 국가 관료 기구 전체가 ‘제대로’ 즉 법과 원칙과 정의와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는지를 국가수반이 감시하고 파악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권력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기구들이라고 하겠다. 앞에서 말한 적폐의 2차 구조, 즉 사방에서 도처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강자들과 정치 및 국가 구성원들의 정경유착 및 관경유착은 만약 이 최정점의 기구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크게 막을 수 있고, 전체 국가 및 경제 사회의 방향도 효율성과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쪽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듯이, 이 정점의 사정기관이야말로 그 적폐가 가장, 아마도 인양된 세월호에 쌓인 뻘보다 더 두껍게 쌓여 있는 곳이다. 이는 무슨 거창한 정치학 행정학 연구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작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권력 심층의 작동 방식을 보라. 여기에서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것은, 이 권력 구조 최정상의 여러 기구들이 여러 적폐 세력들의 농간에 의해 단순히 무력화되거나 방치된 것이 아니라 그 세력들이 자기들의 사적 이익을 취하는 강력한 도구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참 쓰라리고 하릴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겪는 적폐를 분석해 보면 이렇게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당장 눈앞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은 이런저런 이름의 경제적 강자들 즉 ‘갑’들이다. 그 횡포에 못이긴 이들이 법과 원칙과 정의와 제도를 동원하려고 하면 그것을 맡은 이들이 구축해 놓은 황당한 세계에 마주치게 된다. 2차 적폐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고 부조리한 유착 구조와 부패가 어떻게 이렇게 사회의 기득권으로 안착되어 있을 수 있을까? 국가 권력 정점에 존재하는 3차 적폐 때문이다. 사정기관, 정보기관, 검찰 및 경찰, 청와대 등은 그 내부를 차지한 최고위 지배층 인사들의 사적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는 사안들만을 돌보며 그것도 거기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끌게 되어 있다. 요약을 해보니 전근대 시대인 조선 시대의 지방 권력과 중앙 권력과 지방 토호들의 관계를 그냥 묘사해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갑’과의 씨름에 온 정신이 팔려서이다. 납품업자,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택배 지원 등 모두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악다구니를 해야 하며 그러다보면 ‘갑’과의 관계가 이 세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나아지고 나빠지는 결정적인 열쇠는 대부분 이 ‘갑’과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회에 부정부패가 만연하든 말든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또 청와대와 여의도의 주인이 어떻게 바뀌든 그에 대해 생각할 여력도 없고 또 자신의 삶과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갑’의 권력과, 도무지 복마전이라고 밖에는 묘사할 길이 없는 세월호 사건에서의 해경과 해수부 행태와, 최순실이라는 얄궂은 인물을 놓고 미쳐 돌아가던 청와대 및 정부 최상층의 작태는 다른 것이 아니다. 경제 발전이 최고의 국가 이익이요 정부도 기업도 사회도 모두 이를 위해 존재하고 이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믿으며 채찍질을 반세기동안 하며 달려온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이 세 가지가 동일한 한 덩어리의 ‘적폐’이다. 현재의 권력 구조와 검찰의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과 같은 데에서 보이는 대기업 대자본의 횡포를 견제하고 막을 수 있는 방책을 제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기업 대자본의 횡포가 독주하게 되면, 거기에 호가호위하는 각종 인자들이 조금이라도 힘이 약하고 이용해 먹을 여지가 있는 ‘을’들을 가혹하게 뜯어먹는 이 참상을 막을 길이 없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누가 집권을 하든, 이 반세기 한국 자본주의 모델에서 쌓여온 ‘적폐’는 청산되어야 한다. 우선 뱀의 머리를 치듯이 그 정상에 있는 청와대, 정보기관, 수사기관의 적폐를 인적으로 제도적으로 청산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거기에 기대어 지금까지 사회 전체를 거미줄처럼 감싸고 있었던 1차 2차의 적폐 구조와 끈들도 허물고 끊어내야 한다. 여기까지 정권이 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일상을 파고든 이 크고 작은 적폐들을 치우는 일은 우리 손으로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야 할 일이다. 정권이 바뀌는 날만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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