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여성 노동] 일하는 꽃은 없다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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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별 학생



여자 휴게실에는 공용으로 비치된 빨간 립스틱이 있었다. 여성 노동자 담당주임이 사비로 사온 것이었는데, 그녀는 상부에서 여성 노동자의 화장을 자꾸 지적한다고 했다. 지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고객에게 정확한 안내를 하기 위해 입술이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눈에 띄는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라’는 것이었다. 립스틱은 말 그대로 쥐잡아먹은 듯한 빨간색이어서 손대기 부담스러웠지만 담당주임의 지시대로 립스틱을 바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라는 개인의 영역이 공용 립스틱을 바르는 순간 사업장의 공공재가 된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여성 노동자는 꽃


여성으로서 서비스직에 종사하면 한 번쯤은 준비해야 하는 준비물들이 있다. 낮은 굽의 검정 구두에 검은 머리망, 검정 혹은 살색 스타킹이다. 사업장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위의 물건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또 하나의 필수 준비물이 있다. 명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것, 바로 화장한 얼굴이다.


화장 의무화는 서비스직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하지만 서비스직에서 더 강하게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다. 안내데스크, 백화점, 카페, 심지어 패스트푸드점까지 화장하지 않은 여성 노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화장하지 않고 출근하면 “얼굴에 너무 생기가 없다”, “입술이라도 발라라”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그에 항변이라도 하면, 열에 여덟은 듣게 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화장은 사회생활할 때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빽(주방)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홀에 있는 애가 얼굴이 그게 뭐니?”

나는 이런 핀잔을 여러 관리자에게 들은 바 있다. 여성 노동자의 구인 조건인 ‘단정한 얼굴’, ‘아름다운 미소’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여성 노동자가 갖춰야 할 사업장에 대한 예의, 그리고 고객에 대한 예의는 항상 화장을 단정하게 하고, 아름답게 웃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남성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예의란 무엇인가. 굽 있는 구두? 스타킹? 화장? 미소? 그들에게 요구되는 예의는 그저 세수와 빗질이다.


꽃은 꽃일 뿐이야


예쁜 용모를 유지하는 여성 노동자는 ‘꽃’ 취급을 받고, 용모에 신경 쓰지 않는 여성 노동자는 ‘여자도 아닌’ 사람 취급을 받는다. 상사와 부하 직원이라는 수직적 구조 속에서 용모는 단순히 평가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제재의 대상이 된다. 꽃이 된 사람과 여자도 못 되는 사람, 모두 상처받는다.


전반적인 한국의 여성 인권 수준이 그렇듯, 여성 노동자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폭이 좁고, 개별적인 사업장 내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왜 여성 노동은 사회 속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여성 노동에 대한 문제를 꺼낼 때마다 항상 만나게 되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

첫째는 남성이 여성보다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신체 조건 때문에, 결혼과 임신을 하면 금방 그만두기 때문에, 사적인 데 신경 쓰느라 공적인 일은 잘 못하기 때문에 비교적 책임감이 덜하고 쉬운 일을 맡고 있으며, 여성 노동자가 받게 되는 차별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의 역할과 ‘여성성’에 대한 편견 위에 그려진 ‘여성 노동자’의 이미지는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부차적 존재일 뿐이었다.

둘째는 여성 노동에 대한 모든 문제 제기가 여성 노동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여성 노동의 문제가 아예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성 노동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뒷전으로 미룰 뿐이다. 그러나 되묻고 싶다. ‘여성 노동’을 배제하고 노동자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같은 논리로 ‘청소년 노동’, ‘노인 노동’, ‘장애인 노동’ 그 모든 것을 제외할 수 있는데, 세세한 논의가 배제된 노동자 문제는 과연 유의미한가? 어떤 논의가 앞서고 어떤 논의가 뒤에 설 수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이 더 중하고 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모든 질문의 답은 ‘NO’라고 생각한다.


위의 두 논리는 노동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같은 논리 구조를 갖는다. ‘여성 노동자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왜 여성 노동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그 기저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당연해진 ‘꽃’의 논리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용모 제재를 심각한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꽃이 아닌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다르게 여성 노동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고객을 맞이해야 한다. 나는 많은 사업장이 여성 노동자의 성적인 측면을 여성 노동자 의지와 무관하게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또 다른 사업장에서의 일이다. 주류를 판매하던 사업장이라, 술 취한 손님이 무리하게 번호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성추행을 시도하는 경우가 잦은 곳이었다. 좁은 테이블 사이에 나를 가두고 번호를 줄 때까지 가지 못하게 막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사람, 팔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거나 주방까지 쫓아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대처는 당당하게 화를 내는 것도, 그들을 가게 밖으로 쫓아내는 것도 아니었다. ‘회피’하는 방법뿐이었다. 사업장에, 나의 동료와 상사에게 고통을 호소했을 때 그들이 취해준 대처, 그리고 그들이 허락한 대처가 단지 그것뿐이기 때문이었다. ‘조심해야겠다. 그 테이블 근처로 가지 마.’ 그들은 나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늘상 그런 일이 있다고만 말해주었다.


이렇듯 남성 노동자와 다르게 여성 노동자는 성희롱을 당하고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양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노동자 인권 부재의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가 마땅히 침해당하지 않아야 할 성性이 무방비하게 노동의 현장 앞에 ‘이용’되고 ‘공격’받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은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식을 만드는 초석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님을 이야기해야 한다. 차별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차별이 작은 말 한마디에서, 작은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성 노동자는 꽃이 아니다. 한국의 여성 노동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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