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체에 다가갔던 우리들
정흥준(센터 정책연구위원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015년 여름부터 겨울 마지막 날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과제인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아무도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그렇다고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한 노동자인 이들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위장된’ 자영업자다. 대신 공식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혹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부른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업무위탁계약 등에 의해 노무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 등의 형태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겉으로는 독립 사업자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 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직·간접적 업무 지시와 감독 하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용어는 2003년 노사정위원회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센터는 이번 연구에서 다음의 내용들을 밝히고자 했다. 첫째, 우리나라 특수고용노동자는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둘째, 특수고용노동자는 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가? 셋째,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인가? 넷째,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질적인 보호조치는 무엇인가? 네 가지 물음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물음과 연구결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사실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정확한 국가통계는 없다. 유일하게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서 추정이 가능하지만 자영업자는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분만 알 수 있는 결과이다. 실제 특수고용노동자 중 상당수는 1인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른 53만 명이라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는 과소 추정된 통계이다. 이에 비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이번 연구를 통해 2014년 우리나라의 특수고용노동자가 약 230만 명임을 추정하였다. 이러한 규모는 전체 취업자 2,568만 명 중 약 9%가 특수고용형태로 일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일부 특수고용직종이 누락된 것으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방과 후 교사, 헤어디자이너, 임대차조사원, 가사도우미 등의 업종에서 온전히 반영한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전체규모는 230만 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번째 물음과 연구결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것일까? 특수형태근로자종사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특정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의 ‘근로자’ 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에서 배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린 오토바이 배달원은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했다. 나아가, 근로자라면 마땅히 각종 휴가와 근로시간 등이 정해져 있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예외이다. 특히, 노조법상으로도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처럼 활동하지만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나마 보험모집인처럼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용자의 노조불인정과 개입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지기 일쑤이다. 그래서 이들 특수형태근로자들은 많이 억울하다. 분명히 노동자처럼 업체의 관리 하에 일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란 이름의 임금을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기에 각종 사회적,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어 있다.
세 번째 물음과 연구결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자영업자에 가까울까? 노동자에 가까울까? 이 물음은 항상 논란거리였다. 완전한 자영업자라면 특정업체에 사실 상 전속될 필요도 없고, 위탁계약서에 제시된 업무내용만을 수행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특정업체와 전속적으로 일을 한다. 헤어디자이너, A/S기사, 배달원, 텔레마케터, 보험모집인 등 모두 특정업체에 전속적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업체가 정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지각을 하거나 회사가 정한 규정을 위반할 때는 해고에 해당하는 계약해지를 일방적으로 당한다. 대표적으로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들이나 학습지교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며 회사의 규정을 지키면서 일을 해야 한다. 계약에 없는 내용의 업무를 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면접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원차량기사들은 학생들을 수송하는 일 외에 학원청소, 책걸상 수리, 화장실 수리 등 다양한 부수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법원과 학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경제종속성과 사용종속성을 자주 사용한다. 경제종속성은 특정회사에 전속되어 있으며 출퇴근 등이 규칙적이며 수입의 대부분이 특정 회사에서 발생하는 정도를 의미하고 사용종속성은 회사의 관리감독정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경제종속성과 사용종속성 이외에도 업무의 상시성과 중요성을 의미하는 조직종속성도 조사해 보았다. 44개 직종, 1031명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회사에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 사이에서 경제종속성, 사용종속성, 그리고 조직종속성에 거의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과 별 차이가 없으며 종속성지표는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라기보다 직종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 물음과 연구제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앞의 세 가지 물음의 결론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그 규모가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이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보호조치들이 동반해 왔다. 예를 들어 영국은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회사를 위해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경우 고용 및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란 이름으로 단체협약법, 연방휴가법, 산업안전보건법, 연방정보보호법, 가족돌봄휴직법, 보편평등법 등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역시 독일과 유사한 법적보호조항을 가지고 있다. 사실 상 선진국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와 비교하여 차별을 받지 않고 있었다. 굳이 선진국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위에서 살펴 본 바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처우개선은 당연한 요구이다. 우리의 연구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개선을 위해서는 근기법 및 노조법상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근로자로 인정해야 함을 제시하였다. 특히 노동3권에 대한 보장이 중요한데, 정부의 법적 규율보다 사용주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고용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정규직 고용관계 대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특수고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일(Work)의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앞으로 과거의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되돌아 갈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열심히 일한 대가로 최소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이유 없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이 있다. 우리 센터의 이번 연구가 특수고용노동자를 둘러싼 의혹과 해결방안에 조금이라도 답을 제시했다면 그것으로도 우리의 존재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