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사자성어의 본뜻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역시 많이들 아시겠지만 ‘우문현답’에 대한 약간 다른 풀이는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고 한다. 노동 분야 이외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적용되겠지만 특히 노동 분야에는 그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풀이라고 생각된다.
촛불시민혁명의 염원을 받아 안으며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필요했던 정책이 정체되거나 다양한 문제들이 제대로 된 해법을 만나지 못한 채 적체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문제들의 장애요인을 진단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여전히 느리다고 지적하거나 때로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정부가 해법 찾기를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작년부터 한창 주목을 받아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한 숨을 고르고 있는 분위기다. 작년 7월 20일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기대와 달리 몸에 와 닿는 변화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몇 가지 긍정적인 움직임과 수치상으로 전환되는 규모 등 일정한 성과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아 보인다.
위의 ‘우문현답’에 대한 또 다른 풀이처럼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답도 현장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몇 개월간 여러 현장의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보니 ‘과연 현장에서는 정부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건가?’라는 의문이 자꾸 생기게 된다. 정규직 전환의 진행 정도나 구체성 측면에서 보자면 속 시원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전국의 시·도 교육청의 무기계약 전환율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으며 같은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무기계약으로 전환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해고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가 정규직 전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 지역의 2개 구청 역시 작년 10월, 11월에 단 두 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 아직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행보를 보더라도 이러한 분위기와 실태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기관들은 여전히 다른 기관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거나 전환 결정을 위한 회의를 연기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여론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오해와 편견도 정규직화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규직의 전환은 완전한 정규직의 전환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전환 대상이 되는 직무의 내용이 기존의 정규직과 많이 다르다. 전환이 논의되는 대상 중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직무는 환경미화, 경비, 시설관리 등이다. 이 3개의 직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공기관 전체 파견·용역의 63.6%이다. 이번에 정규직(엄밀히 말하자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지금의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나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직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규모가 큰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자회사 설립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검토를 하는 곳도 많다. 정규직 전환 정책은 2~3년마다 되풀이되는 형식적 고용승계,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도로 1호봉’이 되는 ‘꼼수계약’을 제거하고 고용안정을 보다 두텁게 보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수는 파견·용역업체 소속으로 재직하던 때와 비교하여 약간의 상승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환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고 있다. 무조건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이 모두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즉, 해당 직무가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일 경우 또는 기존의 채용 방식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진행되지 않았던 경우 등을 검토하여 완전경쟁 채용이나 제한경쟁 채용 등을 하도록 되어 있다. 어려운 공채시험과 면접과정을 통과해서 겨우 정규직이 되었는데, 단순하게 정부 정책 하나만으로 신분이 정규직과 동일하게 되기 때문에 역차별이라고 하는 일부 주장과는 차이가 많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어려운 공채시험과 면접을 통과했다는’사람들... 그 괴리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생각할수록 먹먹해진다.
앞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정규직 전환 결정이 지체되고 있음을 살펴봤는데 이 여파로 인해 현장에서는 파견기간이 종료되거나 용역업체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일이 꼬여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파견직의 경우,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게 되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의무가 생기게 된다(파견법 제6조의 2).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에서는 파견직원 중 2년이 도래한 직원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있다. 그 자리에 새로운 파견직원을 받고자 하니 전환되는 1개의 직무에 2명의 대상자가 생기게 된다. 한시적으로 기간제 계약을 통해 공백을 메우고자 협의를 하려고 해도 만약에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 제기될 법적 다툼을 이유로 또는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용역계약 또한 정규직 전환 결정이 날 때까지 기존 용역업체와 한시적으로 계약을 연장하여 대처하게 되어 있는데, 2년 전에 체결한 계약비용을 그대로 연장하여 업체와 용역노동자가 하소연을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특성을 너무 간과한 것일까. 기관들은 정말 구체적인 지침이 없이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가 없는지...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이해를 최대한 해보려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감사 때 지적사항이 나오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 ‘이런 사항은 정부가 구체적으로 지침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에 고용노동부는 ‘그런 일들은 노사간에 자율적으로, 재량껏 해주시길’바라고 있다. 중간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컨설턴트에게 적절한 권한이 부여되면 조금이라도 더 뭔가를 할텐데 그렇지도 않다. 이러한 혼란 속에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불안해지고, 기약 없이 결과를 기다려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고 있다.
작년 여름 정규직 전환 계획이 발표되고 기관, 노동부 등과 몇 차례 모임을 가질 무렵, 다른 매체에 기고한 졸고에서 이번 정부는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과 정교한 예측을 바탕으로 정책을 실현해 나갈 것을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니 아무리 정교하게 정규직 전환 과정을 예측하여 가이드라인을 짠다고 해도 어차피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느꼈다. 모든 상황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를 생각하기 보다는 현장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아 보이는 공공부문의 소극적인 자세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 단순하게 현장의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왜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찾고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일부 여론과 정규직의 오해가 갈등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양적인 접근보다 명확한 타겟을 설정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높을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침도 기관보다는 노동부가 책임을 조금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어찌됐든 정책 운영의 주체이지 않는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파견·용역 분야의 정규직 전환 국면에서는 더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노동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동부는 다른 부처와의 협상에서도 적극적인 주장이 필요하고, 노동조합과 기관 등 각 주체들도 최대한 힘을 모아주는 대승적이고 전략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일자리 현황판이 잘 관리된다고 해서 현장의 다양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장의 문제들을 현황판이 보여줄 수도 없다.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는 당사자와 실무자가 문제를 구분해 내어 분석하고 해답을 고민하여 풀어낼 때 현황판에 아로새겨진 숫자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번 정규직 전환 정책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잘 새겨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