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노조’ 세대의 등장
김재민(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촛불집회 이후 일터에서 주변에서 노조를 결성했다는 소식이 많이 들린다. 무노조로 유명한 전자제품 AS기사들, 동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 제빵사들, 택배기사들이 노조를 결성하였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고용안정 문제를 타결했다고 한다.
노조 결성이 많아지는 만큼 한국 사회가 이제는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로 들어선 것인가? 안타깝게도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최하위에 속한다. OECD 국가 노조조직률 통계(trade union density in OECD)에 의하면 2016년 현재 한국(10.1%)은 덴마크(67.2%), 핀란드(64.6%), 영국(23.7%), 일본(17.3%), 독일(17.0%), 오스트리아(26.9%) 보다 조직률이 훨씬 낮았으며 한국 보다 노조조직률이 낮은 국가는 리투아니아(7.7%), 터키(8.2%), 헝가리(8.5%) 3개만 있다.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에 의하면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2006년 이후 10%대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나마 가장 높았던 때는 2007년으로 10.8%에 불과했다. 매년 노조설립 수와 조합원은 증가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 설립 비율은 답보상태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특수고용노동자, 해고자 등 법에 의해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노동자가 많다. 둘째, 사용자들이 노조를 없애려 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대기업과 공공부문 위주의 기업 중심 교섭 구조 아래서 비정규직과 중소영세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할 기회도 없고 상급단체의 단체협약이 적용 되지도 않는다. 노동계에서는 지난 10년 간 노조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불안정·비정규·중소영세 노동자를 조직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불안정․비정규․중소영세 노동자들의 노조조직률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를 조직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설립된 신생 노조 사례에서 노조 조직화를 확대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참여연대노조, 혁신파크유니온, 화섬노조 네이버지회는 그 동안 노조가 설립되지 않았던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기관, IT 분야에서 설립된 노조이다. 이들 노조는 노동자 처우개선과 함께 직장 내 수평적 소통과 참여에 방점을 둔다. 참여연대노조와 혁신파크유니온은 활동가라는 이유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 온 시민사회 활동가와 민간위탁기관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조직 내 소통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네이버지회는 노조 출범을 메일로 알리고, ‘구글독스’에서 노조를 가입하며 카카오톡을 통해 상시적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노조가 없던 분야에서 노조를 만드는 이들은 2016년 촛불시민혁명 이후 나의 삶에서 노조의 필요성을 깨닫고 직장에서 노조를 생애 처음으로 설립하는 ‘아무나 노조세대’ 이다. 아무나 노조세대는 주말에 촛불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쳐도 월요일 직장에 출근했을 때 내 일터가 변화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음을 자각한 세대이다.
아무나 노조세대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회사에 공문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고, 조합설립신고를 내는 것도 처음이고, 노동법을 읽는 것도 노조간부가 되는 것도 처음이다. 이들은 투쟁할 때 「단결투쟁가」 보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 집회 참여할 때는 빨간색 조끼와 머리띠 보다 회사 유니폼과 가이 포크스 가면이 더 친숙하다. 직접 만나 노조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것 보다 단톡방에서 모이고 밴드에서 모여서 논의 하는 게 익숙한 이들이다.
아무나 노조세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점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 왔던 기존의 민주노조 세대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에서 노조가 아닌 직원연대의 설립, 공공운수노조를 가입해도 민주노총은 가입하기 싫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아무나 노조세대에게 빨간조끼와 머리띠, 비장한 투쟁가와 구호는 낯설고 어렵다. 아무나 노조세대는 민주노조 세대에 대해 ‘회사와 대화 안하고 정치싸움만 한다.’, ‘조합원을 보호하기 보다는 권력만 추구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다.
사실 아무나 노조세대의 민주노조 세대 문화와 운동방식에 대한 거부감 속에는 왜곡된 인식과 맞닿아 있다. 대한항공에서 처음에 노조가 아닌 직원연대가 만들어진 이유는 20여 년 전 대한항공 내에서 노조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이 사측에 의해 횡령범으로 몰렸고 그에 대한 직원들의 부정적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고, 직원연대가 기존 대한항공 내 4개 노조와 선을 그었던 이유는 노조가 그동안 재벌 일가의 갑질에 맞서 조합원을 보호하지 않은 미진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나 노조세대의 부정적 인식을 지배세력과 사측의 공세로 인한 것이라고만 단순히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기존의 노동운동 문화나 운동방식이 아무나 노조세대의 정서에 맞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노동이해 대변의 다양화 시대에 노조할 권리의 확대를 위해서 아무나 노조세대와 민주노조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로를 배척하기 보다는 빨간 조끼와 머리띠, 가이 포크스 가면과 카톡방이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나 노조세대에게 기존의 방식으로 노조를 설립하여 투쟁해야 된다고만 말하지 말자. 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어주고 판을 깔아주자. ‘너와 나는 다르지만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와 같은 민주노조 세대의 유연한 모습이 아무나 노조 세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노동조합 조직현황」. 각 년도.
김은선·차재민. 2016. 『마을과 노동, 희망으로 엮다』. 매일노동뉴스.
박명준․권혜원․유형근․진숙경. 『노동이해대변의 다양화와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 과정』.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2017. “노동조합 가입 확대, 노동존중사회 마중물”, 『월간 노동리뷰』, 2017년 8월호.
조건준. 2018. 『노멀 레볼루션』, 매일노동뉴스.
“노조와 거리두기...대한항공 촛불, 지속가능할까”, 『한겨레』. 2018년 5월 1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