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칼럼] 국민이 생각하는 불평등, 노사관계 그리고 비정규직
정흥준 센터 정책연구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은 2023년 2월 ‘국민 인식 의식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대상은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국민으로 연령, 권역별 인구 비율 기준 비례배분으로 설계된 할당 표집법을 종사상 지위와 고용형태 등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고려하여 표본을 추출하였다. 조사 내용은 불평등과 공정인식, 노사관계와 노동조합 시민 인식,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젠더, 안전보건, 기후 위기에 대한 시민 의식이다. 이 글은 불평등과 공정, 노사관계,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국민 인식을 요약한다.
불평등과 공정에 대한 국민 인식
첫째, 국민은 소득 격차와 불평등 수준을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의 소득 격차는 큰 편인데, 소득 상위 10%는 소득 하위 50%보다 14.45배 소득이 많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17.02배)보다는 낮지만, 스웨덴(6.47배), 독일(9.74배), 스페인(8.18배) 등 주요 유럽 국가들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가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1980년 33% 수준이었으나 2021년 46.5%로 높아졌다. 대신 하위 50% 집단의 소득은 1980년 24%에서 2021년 16%로 낮아져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다.
국민은 한국의 소득 격차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2023년 다섯 번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5~90%가 우리나라 소득 격차가 크다고 응답하였다. 소득 불평등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보상 불공정 인식도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능력이나 노력에 비해 공정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소득 불공정성 인식은 2009년 51%에서 2023년 62%로 높아졌다. 한편,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응답은 하락하였다. 2009년 87.2%, 2014년 78.6%, 2021년 76.9%로 점진적으로 낮아지다가 2023년 59%로 크게 낮아졌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가운데 이를 극복할 공정한 기회가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국민은 성장과 분배 모두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경제적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성장과 분배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응답이 82.9%로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다.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의 동일 질문을 사용한 것인데, 과거(2013~2018년) 조사에 따르면, 성장과 분배가 모두 중요하다는 응답이 64% 내외였으나 2023년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모델과 관련해서는 미국식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53.5%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43.3%)보다 약간 더 높게 응답했다. 2004년 한겨레가 실시한 동일한 설문에서는 반대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51.6%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모델(45.2%)보다 더 높게 응답한 바 있었다. 결과적으로 자유시장 모델과 복지국가 모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노사관계에 대한 국민 인식
첫째, 국민 다수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노동기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79.6%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2010년 87.1%보다 낮아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 대다수가 제도로서 노동조합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정신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다”는 응답이 16.3%였으나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응답은 38.7%로 나타나 중립적인 응답(보통, 45.1%)을 제외하면 국민은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가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 중 61.8%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응답은 38.2%에 그쳤다.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한다”에 54.2%가 동의하였으며 “노사 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응답은 34.3%에 그쳤고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를 규율해야 한다”는 응답은 11.5%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응답들을 종합해보면 국민 다수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지지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기업 활동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에 대해서도 다수 국민은 반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노동조합이 불평등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노동조합의 운영방식이나 활동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민은 노동조합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46.1%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답했으며 21.8%만 노동조합이 불평등 완화에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은 노동조합을 소득 불평등의 주범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국민은 노동조합의 현재 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운영이 노조 간부나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51.4%가 동의하였으며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하였다. 또한, 국민은 노동조합의 현재 활동으로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1순위로 응답(58.7% 동의)하였지만, 앞으로의 활동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데 가장 많이 응답(33.7% 동의)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노동조합 활동이 조합원 중심에서 전체 노동자를 위한 활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특히, 비정규직 취약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노동조합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함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에 대한 국민 인식
첫째, 국민 다수가 비정규직이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규모는 임금 노동자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규모가 늘어난 것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인지”에 대해 58.5%가 동의했고, 반대하는 비율(11.1%)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한, 국민 대다수(73.8%)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교하여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차별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데 응답자의 62%가 동의하였다. 한편, 비정규직 증가 원인 1순위는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 때문(42.1%)이라는 응답으로, 기업의 재정난(32.5%)이나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때문이라는 응답(17%)보다 높았다.
둘째, 비정규직 해결방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인 83.2%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전환(15.7%)보다 비정규직 고용을 처음부터 억제하거나(24.5%)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차별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응답(50.8%)이 더 높게 나타났다.
지금까지 살펴본 불평등, 공정, 노사관계, 비정규직에 대한 국민 인식은 평소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내용과 사뭇 다르기에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조사는 다수 국민이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과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정부와 노동운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