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감소’의 의미
이정아 (센터 정책연구위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2018년도 적용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은 2017년의 6,470원보다 16.4% 높은 수준으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2001년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16.6%였는데, 당시 최저임금위원회는 미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가 14.7% 증가하였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다. 2002년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12.6%, 미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 증가율은 15.5%였다. 이때 생계비는 최저임금 적용년도 1-2년 전에 조사한 결과이므로, 2001-2년의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은 빠른 생계비 증가 속도를 사후적으로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2018년의 최저임금 인상률 16.4%는 비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 증가율 4.7%를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최저임금이 드디어 ‘실질적으로’ 인상되었다. 그래서인지 최저임금 인상에서 비롯한 부정적인 효과를 전하는 언론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내용은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해고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도입과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아주 오래된 이론적 가설에 토대한다.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달성되는 ‘균형 상태’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왜곡이 발생한다. 시장은 그냥 두면 노동자들이 기여한 만큼의 임금을 지불하게 되는 체계이다. 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면 그 까닭은 노동자들의 기여도가 낮은 데 있다. 그런데 정부가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그들의 기여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되면, 기업들은 그들의 생산량을 감축하고 따라서 고용도 감소한다.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최적’ 생산량을 결정하는데, 시장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땐 고용을 줄이는 선택이 ‘최적’ 선택이다. 고용을 많이 할수록 고용 한 단위당 기여도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의 기여도를 높이려면 생산량을 줄이고 고용도 줄여야 한다. 즉, 높아진 임금 수준에 노동의 기여도를 맞춘다. 기업들이 고용을 감소시켜 시장은 다시 기여와 보상이 동일한 균형 상태를 회복하고, 전체적인 경제 규모도 축소된다. 최저임금의 도입과 인상은 국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
이러한 주장은 최저임금 도입 시기의 같은 주장에 비하면 훨씬 세련된 것이다. 백 년 전, 최저임금제를 처음 미국에 도입할 때에도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넘쳤지만 주장의 근거는 달랐다. 한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지불할 수 있는 임금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주어진 임금 총액을 모든 노동자들이 나눠 가져야 하는데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한다면 그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늘게 된다. 소위 ‘임금기금설’이다. 임금기금설은 고립된 계의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열역학 법칙의 사회과학적 유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경제학 이래로 논리적, 이론적 기반을 잃은 임금기금설은 여전히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완벽하게 틀린 이론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나 싶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인상시킨다고 하더라도 국내총생산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단언컨대 그런 경험은 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여도 고용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더 지배적이지만, 고용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나? 물론 일부 부문에서는 실제 고용이 감소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의 도비가트는 180년 전에 지어진 거대한 공동 빨래터이다. 하루 약 10만 벌의 빨랫감을 전통 방식으로 빨래하는 노동자 5천여 명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세탁기보다 저렴하지 않았다면 이런 종류의 거래가 유지되기 어려웠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비가트의 고통스러운 노동이 사라지는 사회를 고통스럽게 상상할 필요가 없다. 도비가트와 같은 공동 빨래터 없이 집집마다 세탁기를 들여놓고 각자 빨래를 하는 한국의 세탁기 생산노동자들은 인도의 공동 빨래터 노동자들보다는 짧은 시간 일하지만 더 높은 보상을 받는다. 물론 세탁기는 한국 기업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제품도 아니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백 년 전에 최저임금제 도입의 지지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저임금이 기업의 투자와 공정한 경쟁에 대한 유인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전체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최저임금제의 견실한 운영은 경제 발전을 위한 투자이다. 최저임금을 높은 수준으로 인상함으로써 편의점에 무인 계산기가 들어오고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수준에서 급여가 결정되는 요양보호사 일자리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요양보호사의 일을 대신할 로봇이 있지도 않고 고령화로 인해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많아도 요양보호사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머무르는 점은 (신고전학파)경제학적으로는 아이러니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정말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은 일자리로 이행할 수 있다면, 나쁘지만은 않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특정 부문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그 부문의 노동자들이 완만하게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물질적 삶을 개선하는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는 없다.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