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구조는 아무 죄가 없다.
김 세 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의 인상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5당 후보들이 시기상의 차이점은 있었지만,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보수·진보할 것 없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할 때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존중사회라는 두 가지의 큰 틀을 가지고 경제와 노동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이 두 가지의 큰 틀에서 중요한 공통적인 요소는 많지만, 그중에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최저임금의 인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최저임금은 생활을 이끌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이른바 노동자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1)을 보장할 수준으로 올려 국가가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높아진 소득으로 인해 경제적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노동정책과 경제정책 중에 가장 잘 지켜진 것은 최저임금의 인상이었다. 2018년 최저임금을 16.4%를 올려 사상 최고치의 최저임금 인상을 보여주었다. 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10.9%의 최저임금을 올려 2년 평균 13.6%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보여주었다. 공약 사항이었던 평균 15%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에는 못 미치지만 두 자릿수의 인상률을 보여주어 어느 정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인상은 엄청난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보수정당과 언론은 최저임금이 본격적으로 오르지 않았던 2017년 말부터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파탄이 나고 집단 해고가 나타날 것처럼 선동하였다. 제조업과 중소자영업의 침체는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 모든 오명을 뒤집어썼다. 학술적으로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보다 최저임금이 고용률과는 연관이 없다는 연구가 더 많이 나오고 있지만,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통해서 전자의 연구가 과대평가되어 보도되었다. 최저임금이 노동소득분배율을 늘리고 최종소비지출과 민간소비지출을 증대시켰다는 긍정적인 모습들은 모두 무시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제적 성과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정부는 기존의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존중사회의 모습을 점점 지워나가고 혁신성장과 같은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 없는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2018년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 최저임금의 인상 자체를 억제하기 시작하였다. 노동계와 양대노총이 심각하게 이에 대해 반발하자 2019년 1월, 정부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제도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제도개편이 나온 방법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제도개선 문제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먼저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마저도 언론 보도를 보고 제도개편안을 알게 되었다. 최저임금 제도개편안이 공식 발표되기 며칠 전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작용 등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의 속도 조절을 언론을 통해서 계속 주장하였다. 결국 최저임금 결정 제도개편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최저임금의 결정’2)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률을 제한시키기 위한 의도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2월 27일에 신창현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정부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되었는데, 기존 최저임금법에서 달라지는 것은 <표 1>과 같다.
<표 1>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변경사항
구분 | 변경사항 |
최저임금 결정기준 | ○ 기존안의 결정기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 개정안의 결정기준 근로자의 생활안정: 근로자의 생계비, 임금수준, 소득분배율, 사회보장급여현황 고용 및 경제상황: 고용에 미치는 영향, 노동생산성,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상황 |
최저임금위원회 이원화 | ①. 기존의 최저임금위원회를 최저임금구간설정위원회와 최저임금결정위원회로 이원화. ②. 최저임금구간설정위원회에서 먼저 최저임금안의 심의구간을 심의·의결하고, 심의구간이 결정이 되면 최저임금결정위원회에서 심의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안을 심의·의결 |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선임 | ①. 구간설정위원회 위원 9명은 노사와 고용노동부장관이 각자 전문가를 5명씩 추천하고 노사단체가 각각 3명씩 순차배제한 후 대통령이 임명. ②. 결정위원회 위원은 노동자위원 7명, 사용자위원 7명, 공익위원 7명을 임명. ③.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은 대통령이 3명, 국회가 4명 추천. ④. 노동자위원에는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을 1명씩 추천하고, 사용자위원에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사람을 1명씩 추천. |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의하면 크게 달라지는 것은 결정기준과 최저임금위원회의 이원화 그리고 공익위원의 선임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결정기준의 문제부터 살펴보면 기존의 노동자의 생활 안정에 초점을 뒀던 요소를 고용 및 경제 상황까지 확대했다. ILO 최저임금 협약에서는 노동생산성과 고용지표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되어있지만, 경제성장률 등의 경제 상황까지 포함하는 것은 ILO 최저임금 협약에 맞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2.2%에서 3.3%의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 2만~3만 달러 이상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이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을 보았을 때, 한국에서는 고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일반적으로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에는 고성장과 저성장의 기준점을 판단하기에 모호하여 최저임금 결정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최저임금의 의도를 살펴본다면 노동자와 그 가족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저성장시대에 경제성장률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집어넣겠다는 이유는 최저임금의 순수한 의도 보다는 경제성장률을 결정기준으로 집어넣어 최저임금의 상승을 억제하는 하나의 이유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3)
두 번째, 최저임금위원회의 이원화 문제이다. ILO 최저임금 협약에 의하면 최저임금 결정 및 논의에서 노사당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최저임금의 구간을 결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에는 노사당사자가 논의에서 빠져있고 전문가들이 구간을 결정하게 되어있다. 정부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위원회에서 노사당사자가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ILO 국제기준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최저임금 결정이 최저임금 구간설정 범위에 반드시 들어가게 되므로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서 구간설정위원회의 권한이 절대적이고 결정위원회는 구간설정위원회에 예속되는 구조로 나타난다. 결국, 권한이 절대적인 구간설정위원회에 노사당사자를 배제하고 전문가들로만 참여시키겠다는 것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전문가들이 정하겠다는 것과 같다. 올해 1월에 있었던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정책협력관은 ‘프랑스가 ILO협약을 비준했지만 전문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고 결정하였지만 전문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이전에 노사대표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것을 누락시키고 말한 것이었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주요 국가들은 노사정 대표들이 직접적으로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하거나 노사협약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보이는 데로 전문가가 먼저 구간을 정하고 그 구간 안에서 최저임금수준을 결정하라는 것은 ILO 협약 자체를 위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공익위원 인선 문제이다. 구간설정위원회에서의 전문가 위원을 노사에게 분배했다는 점에서는 다소 고무적이지만 결정위원회에서의 공익위원은 국회에서 4명,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게 되어있다. 분명히 위원선임에 대해서 공정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하였는데, 대통령 추천 의석 3인과 여당 추천의석 1~2석이 된다면 공익위원회에서 여전히 정부와 여당 추천 인사가 다수를 점하는 구조이다. 여당과 정부 추천의석이 다수를 점하는 상황에서 야당은 자신의 할당 위원을 추천을 연기하거나 아예 추천하지 않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 또한 총선의 결과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기준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서 위원회 자체가 파행운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할 때의 주요 목적이었던 ‘최저임금 결정의 합리성과 다양성, 객관성’ 강화보다는 최저임금 논의에서의 노사당사자의 힘을 줄임으로써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은 결정을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를 주요 정책 수단으로 주장해 온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오로지 효율성만을 생각하여 정부 주도로 정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은 매우 모순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앞서 설명한대로 노동자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이자 복지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서 정부가 하는 일은 최저임금을 노사당사자가 직접적으로 교섭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노사당사자의 권한을 뺏어서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사항이었던 공정경제와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으면서 모든 탓을 최저임금으로 돌리고 교묘히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낮추려는 모습 역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보수세력의 선동에 맞서 흔들림 없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보여주고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공정경제, 재벌개혁 정책을 빠르게 실시하여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린 부를 노동자, 중소상공인들에게 분배하여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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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 구절은 일본헌법 25조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생존권적 기본적 인권을 규정한 이 조항은 일본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되는 조항이다. 최저임금을 규정하는 개념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구절이 최저임금의 사회보장적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여 인용하였다.
2)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신창현의원 대표발의, 2019.02.27) p.1
3) 참고로 선진국들은 경제성장률을 반영하여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캐나다의 경우 2019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주요 기준이 되었던 2017년 경제성장률은 2% 수준이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12.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