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유지업무제도와 민주주의
조성주(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공공부문의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 각계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비롯한 공공부문 정책이 쟁점이다. 철도노조를 비롯해 보건의료노조, 지하철 노조 등도 파업에 함께 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동기본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그리 높지 못하다. 특히 단체행동권, 즉 파업이나 각종 쟁의행위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많을 것이다. 노동권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이 실질적인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이 87년 민주화 이후라는 점과 노동조합 조직률이 아직 10% 남짓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클 것이다. 물론 역대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배제정책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규모 있는 파업에도 불구하고 이전처럼 시민들의 불만이나 항의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조짐은 지난 2013년 전국철도노조가 철도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였을 때에도 나타났던 반응이다. 철도, 지하철, 병원 등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공인프라 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파업이 벌어져도 시민들의 항의와 불만이 이전만큼 크지 않다. 예전이라면 보수적인 성향의 언론들이 앞 다투어 ‘시민을 볼모로 한 강성노조의 파업’이라고 몰아붙였겠지만 언론들도 이런 논조의 기사를 별로 생산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대한민국 시민들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섣부르게 낙관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무언가 미심쩍다. 정부의 노동배제적인 정책과 각종 홍보는 오히려 더 노골적이고 집요해졌다. 그렇다고 교육과정에 특별히 노동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과정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필자는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한 역설적인 상황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때로 진보적인 성향의 시민들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내용의 대자보나 메시지를 SNS에 올리곤 한다. 분명히 감동적인 시민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시야를 달리해서 보면 ‘불편해도 괜찮다’는 시민들보다 이미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시민들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 혹여 시민들은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철도의 경우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KTX의 경우 정상운행률이 100%에 가깝다고 보도되고 있다. 화물운송부문이야 운행률이 파업의 영향으로 운행률이 떨어졌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영역은 아니기 때문에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병원 등도 마찬가지인데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긴급한 치료나 처방 등은 거의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현저히 저해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오히려 시민들이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불만을 낮추거나 또는 야기시키지 않도록 하는 괴이한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분명하게도 이런 현상을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좋아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단체행동권을 비롯한 노동기본권과 시민의 관계는 단순히 여론의 선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기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에 도입된 공공부문에 대한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소위 시민권과 노동권의 타협이라는 이상한 명분하에 일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정치체제는 ‘1인 1표’라는 정치적 평등을 통해 시민의 ‘직접통치’를 구현한다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치적 평등은 현실에서 단순히 몇 년에 한번 돌아오는 선거일 투표의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적 평등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명시하지 않고서 단순히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것만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비롯해 결사와 표현의 자유 등 현대 민주주의의 시민권은 공동체 구성원의 불편함을 근간으로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 이익집단의 결사와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이 비록 불편하고 시끄럽다 하더라도 그 다양한 의견들의 경쟁 속에서 민주주의 공동체의 발전과 공동체 구성원의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이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에 대한 과도한 제약을 넘어 민주주의 시민들과 노동권을 분리시켜 사회의 통합과 공익증진을 막아서는 반민주적인 제도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정치권이 필수유지업무제도와 같이 기본권을 제약하는 제도들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