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 감상평 - 비정규 입법 전망
남우근(센터 정책연구위원)
새누리당 122석, 더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지난 4․13 총선의 결과이다. 누군가 선거결과에 대해 ‘사이다 선거’였다고 얘기할 정도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여소야대 결과이다. 선거결과로 드러난 국민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찌되었든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해왔던 여러 분야의 정책들에 대해 강력한 브레이크가 걸릴 것은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주장해왔던 것과는 다른 흐름의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비롯해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진보적인 학술 ․ 법률 단체들은 4년 전에 했듯이 이번 선거에서도 각 정당의 비정규직 공약을 검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공개질의 대상이었던 6개 정당 중 국회 입성에 실패한 녹색당과 노동당을 제외하고 의석을 배출한 4개 정당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이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공약들이 어떤 논의과정을 거쳐서 입법화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은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에게는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공개 질의한 비정규직 관련 정책 중에서 주목해서 볼만한 정책에 대해 각 정당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 향후의 입법 과정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비정규직 입법과제에 대한 공개질의서는 총 10개의 문항으로 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정당들의 답변 현황은 다음과 같다.
질의 항목 | 새누리당 | 더민주당 | 국민의당 | 정의당 | |
1 | 상시적 업무에 정규직 채용 원칙화 | × | ○ | ○ | ○ |
2 |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 × | ○ | ○ | ○ |
3 | 근로기준법에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 명문화 | × | ○ | ○ | ○ |
4 | 기간제법상 기간제 기간 2년 연장에 대한 입장 | ○ | × | × | × |
5 | 파견법 상 파견확대안에 대한 입장 | ○ | × | × | × |
6 | 상시적, 핵심적 업무에 대한 사내하청 금지 | × | ○ | ○ | ○ |
7 | 노동법상 노동자 개념 확대 | × | △ | △ | ○ |
8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실질적 정규직 전환 | ○ | ○ | ○ | ○ |
9 | 차별시정 신청권을 노동조합에게도 확대 적용 | × | ○ | × | ○ |
10 |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가구생계비 산입, 생활임금제도 근거규정 신설 | × | ○ | × | ○ |
재미삼아 각 정당들의 노동정책 성향을 구분해보자. 10개의 정책에 대한 노사 간의 입장차이는 뚜렷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은 1~3번, 6~10번 문항에 대해서는 찬성입장이고, 4, 5번 문항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경총은 이와 상반된 입장이다. 따라서 노동 쪽의 입장에 대해서는 2점, 경총의 입장에 대해서는 0점, 중간입장에 대해서는 1점을 부여해보자. 그러면 새누리당은 2점, 국민의당 15점, 더민주당은 19점, 정의당 20점이다. 숫자를 놀이터 시소의 위치로 표시하면 차이가 더 확연하다.
새누리당이 한쪽 끝을 차지하고, 더민주당과 정의당이 다른 쪽 끝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시소의 중앙과 오른쪽 끝의 중간에 위치해있다. 시각적으로도 시소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형상이다. 정당별 의석수를 감안하더라도 시소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세 정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167석으로 300석의 과반에 해당하며 새누리당의 122석 보다 월등히 많다. 즉, 시소 오른쪽의 세 정당이 입장을 함께하는 정책에 대해 힘을 모아 추진한다면 입법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워낙 허다해서 정당들이 선거 전에 약속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당들의 실천을 촉구하고 추궁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었기에 입법 노력을 경주할 일만 남았다고 할 것이다. 정당들의 답변을 통해 희비가 엇갈리는 정책들 몇 가지를 살펴본다.
○ 입법 전망 “밝음”, 정말로?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실질적 정규직 전환
네 정당의 입장이 일치하며 새누리당이 유일하게 2점을 얻은 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실질적 정규직 전환에 대한 것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10년이 넘게 추진되어 왔지만 여전히 높은 기간제 비율, 무기계약직의 처우개선 미비, 외주화로 인한 간접고용 남용 문제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무기계약직 전환 비율을 자랑삼아 얘기하고 있고, 복지포인트 적용, 상여금 지급 등을 무기계약직 처우개선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새누리당이 이 정책에 찬성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답변 내용을 보면 정당 간에 시각차가 뚜렷하다. 새누리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세 정당은 정부 대책이 미흡하고 보다 진전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원론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네 정당의 입장이 일치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 볼 문제는 무기계약직의 임금체계 및 직제 정비문제이다. 현장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시쳇말로 입법에 필요한 ‘모멘텀’이 존재하고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지역별로 매우 난삽한 관리실태를 통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정비가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노동계는 공무직제를 통한 정규직(공무원)과의 차별 해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직제 정비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임금체계로는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을 겨냥한 직무급제 도입에 무기계약직이 실험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 입법 전망 “흐림”, 여전히! : 법상 노동자 개념 확대
공개질의한 10개 정책 중에 답변 결과가 가장 회의적이었던 것이 바로 특수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기법, 노조법 상 노동자 개념 확대 정책이었다. 새누리당은 반대했고, 더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통적인 지휘명령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사용종속 형태가 늘어나고 있고 성과를 강조하는 급여지급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종속성의 양태는 바뀌고 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하고 있다.
특수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노동법의 모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근기법과 노조법의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고, 외국의 입법례를 따라 유사근로자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우회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당들의 답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입법 전망은 밝지 않다. 아마도 노동법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개념에 손을 대기 어렵다는 점이 작용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입법안보다도 더 민감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자본의 움직임도 정치권에게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입법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소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다.
○ 입법 전망 “흐린 후 맑음”, 그러나 핵심을 비켜감! :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
박근혜정부가 노동시장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해왔던 기간제법 개정(기간제 고용기간 2년 → 4년 연장)과 파견법 개정(뿌리산업 등 제조업에 파견 확대)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처리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정부는 노동유연화를 위한 법 개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고, 최근 프랑스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 노동시간 연장을 전격 단행한 것이 참고가 되어 이념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물론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정부가 추진하는 파견확대, 기간제 계약기간 연장에 대해 명확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서 정부 의도대로 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작 개정이 필요한 내용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남용 근절이라는 애초의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기간제한이 아닌 사유제한으로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파견법 역시 파견확대가 아니라 파견과 도급을 엄격히 구분하고 불법파견을 단속할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근혜정부의 노동유연화 입법을 저지하는 동안 실제로 필요한 개정 논의는 해보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정부 안에 대한 반대 입장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의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이러한 판단을 하는 근거이다. 노동 입장이 반영된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 여부는 대선 결과에 따라 다시 기대를 해봐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
○ 입법 전망 “오후에 갬”, 반짝 기대감! :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 근거조항 명문화
필자가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갖는 입법 전망 중 하나가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한 생활임금 관련 조항 명문화이다. 생활임금은 법적 개념이 아니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조례를 통해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지방계약법, 지방재정법 등 상위법과의 충돌로 인해 매우 형식화된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에 대한 근거조항을 마련하고 지방계약법에도 생활임금의 확산을 방해하는 조항을 개정하면 보다 실질적인 생활임금제도가 도입될 것이다. 한국의 생활임금제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요구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정당들의 경쟁구도 속에서 도입된 측면이 강하다. 첫 도입 후 3년 만에 전국의 80여개에 달하는 지자체가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등 매우 빠른 확산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빠른 확산과 함께 내용이 부실해지는 면도 많아지고 있어서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법 개정의 유인효과를 어느 정도 발휘하느냐에 따라 입법 전망이 달라질 텐데 일정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 간의 득표 전략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생활임금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점도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총선 결과와 맞물려서 몇 가지 입법 과제에 대해 전망해봤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먼저 현장에서의 왜곡된 인사노무 관행을 통해 확산되었고, 제도화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공고히 해온 과정을 밟아왔다. 여전히 비정규직 입법논의는 추가적인 유연화를 저지하는 국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직노동의 주체역량이 ‘저지’를 넘어서서 ‘쟁취’로 나아갈 정도가 안 되는 상황이고, 정치권에서의 여야 간 의견차이도 새로운 논의 틀을 만들기에는 그 간극이 크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것에 대한 사회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에 비해 입법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인가?
사족
3년 전 어느 노동조합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대학교 청소경비 용역노동자들이 대학교에 직접고용 되면서 정년제도가 적용되자 오히려 고용이 불안해진 문제를 다루는 토론회였다. 대학이 청소, 경비 노동자들에게 적용한 정년이 65세였는데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당시 조합원의 절반 정도가 이미 정년을 넘긴 것이다. 조합원들의 요구는 더 일할 수 있게 정년을 70세로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토론회 장소를 가득 채운 조합원들은 토론자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 일하겠다는 의지를 눈빛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른 토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정년 연장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토론문을 준비해갔지만 토론순서가 다가올수록 답답함이 밀려왔다. 70세에 가까운 나이 든 노동자들이 더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해야만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답답했다. 결국 토론의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여러분, 70세 가까운 나이에 더 일하고 싶으세요? 지금까지 일했으면 이제 손주 재롱을 보면서 여유 있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년 연장이 아니라 편히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론회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비정규직 문제는 차별 양상이 더 다양하고 심각해지면서 여전히 한국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고용안정과 임금 인상으로 귀결되는 노동에 대한 협소한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 ‘인생 이모작’을 권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일모작만 제대로 하고 여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원으로서 선거운동에 참여했었다.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주요하게 제기했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싸고 노동에 대한 관점이 협소해지는 것을 막아줄 단초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정규-비정규를 넘어서서 ‘탈노동’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갖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