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어땠을까요?
올해 2년째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활동한 이남신 소장과 배석자로 애쓴 최혜인 정책부장의 평가와 소회를 회원님들과 나눕니다. 센터의 공식 평가는 아니지만 현장의 생생한 느낌이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진솔한 후일담입니다. 감이 살아있을 때 정리해 회원님들께만 우선 보내는 것이니 꼭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남신편>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가 손잡아야 한다
- 2017년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양대노총 공동총파업투쟁을 학수고대하며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들어가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노동자위원 전원이 퇴장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끝났다. 2017년 최저임금은 440원 오른 6,470원이다. 7.3% 인상율에 그쳐 8.1%(450원) 오른 작년보다도 낮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화두로 떠오르며 여소야대로 바뀐 총선 결과도 최저임금위원회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8월5일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를 앞두고 이의 신청 기간이 있지만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를 포함한 9명의 노동자위원들이 사퇴를 이미 선언한데다 공익위원 한 명도 사퇴를 표명했기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면적인 체제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28년째 이어져온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처럼 무용론에 시달린 적이 없었다. 거듭난다는 의미에서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위원회 전면 혁신을 앞장서 주장해온 나도 잘될까 하는 우려가 맘 한 켠에 없지 않지만, 그래 이제야말로 바꿔야지 하는 흔쾌한 맘이 압도적이다. 물론 노동자를 대표하는 교섭위원으로서 낮은 임금인상율로 끝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교섭을 잘했다고 평가할 순 없다. 다만 기울어진 노사역관계와 편향된 정부의 역할 등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에서 몸부림치듯 싸웠다. 작년과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조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줄기차게 드러내면서 사회공론화한 건 중요한 성과로 강조해두고 싶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다. 갓 지난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개인적 소회를 담아 평가해보려 한다. 좀 거칠지만 주제별로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보겠다.
1. 참 중요한 사회적 임금교섭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은 직간접 적용 당사자만도 500여만명에 이르니 국민임금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최저임금을 지급할 사용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600여만 자영업자들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돼있다. 단순 산술로도 1천여만명이 넘는 경제 주체들의 민감한 공동현안이 최저임금인 만큼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막중한 책무를 지닌 정부위원회가 있을까 싶다.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대세가 되기도 한 만큼 여러모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됐다. 그 무게에 걸 맞는 제몫을 최저임금위원회가 하고 있을까. 작년부터 온몸으로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컨대 아니다.
2. 사회적 화두가 된 최저임금 1만원
최저임금 시급 1만원/월급 209만원. 작년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이 작심하고 제기해 전체 노동계의 핵심 요구로 자리 잡았다. 때마침 인기 걸그룹 멤버가 출연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알바몬 광고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필두로 선진국 그룹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한 내수진작과 경제 활성화 정책이 대세가 되면서 최저임금 1만원은 상징적인 사회적 요구로 주목받았다. 가슴 아프게도 최저임금 1만원을 사회적 의제로 과감하게 제기한 당사자인 한상균위원장은 지금 부당하기 짝이 없는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있다. 마치 정당한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친재벌 정부와 강력한 사용자단체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는 형국과 참 닮아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가구생계비에 초점을 맞춰 제기된 요구다.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가구주들이다. 자신의 생계 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란 얘기다. 특히 중고령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계층으로 대거 인입되면서 더욱 최저임금이 가구생계비가 되는 노동자 비중이 급증했다. 이런 변화된 조건을 감안해 최저임금 산정 기준을 무엇보다 생계비에 근거해 결정해야 한다는 게 노동자위원들의 줄기찬 요구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갈수록 극심한 소득양극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임금=생계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내에선 쇠귀에 경읽기였다. 다만 작년과 올해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3.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 밀실구조를 깨자는 생각으로 소통을 확대할 목적으로 다음아고라 TV공개토론 요구 이슈청원을 개설하고 ‘이런시급’ 그룹카톡방도 열었다. 1천명이 목표인 아고라 이슈청원은 372명에 그쳤고 그룹카톡방도 30여명만 가입했다. 내 능력치만큼이었겠지만 참 아쉬웠다. 네이버나 다음 포털사이트엔 그렇게 많은 최저임금 관련 댓글들이 난무하는데 정작 최저임금을 직접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최저임금위원회에 대해선 관심이 뚝 떨어지니 난감했다. 텅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최저임금위원회와 내 처지가 딱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비정규직을 대표해 들어갔는데 정작 비정규직의 관심은 불러일으키지 못한채 이런저런 언론방송 인터뷰만 소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착잡하기도 했다. 뭐든 온몸으로 부딪쳐 깨트리고 싶었지만 역부족을 실감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개선을 앞당기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올해 목표라고 판단했다.
4. 이대로는 안된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처음 경험한 작년에도 많은걸 느꼈다. 「이런 시급 6030원」(여름철 휴가 때 일독 강추!^^)에 쓴 대로 밀실구조 혁파에서부터 제도개선에 이르기까지 개선해야 할 점이 참 많았다. 27명이 성원인 회의라 회의 진행이 잘되지 않으면 대단히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 중립 속에 민감한 쟁점 회피를 목적으로 한 위원장의 소극적인 회의 진행으로 열 받고 피곤했다. 이런 저런 성과가 있었지만 결국 퇴장했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전 세계적으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대세가 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이 초점이 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여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느낌으로 첫해 최저임금위원회를 마쳤다.
작년엔 남다른 긴장감이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첫 전원회의부터 김이 빠졌다. 몇 차례 전원회의가 거듭되면서 같은 쟁점을 둘러싸고 고장 난 레코드처럼 돌아가는 회의 내용에 내색은 안했지만 좀 지쳤다. 관행과 전례로 굳어진 영혼 없는 회의 진행과 운영방식에 질식할 듯 했다. 이미 예정된 결과를 위한 알리바이로 느껴져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가끔 언성이라도 높일 일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겼지만 그뿐이었다. 노사 양자 임금교섭에서는 볼 수 없는 3자 협상이다 보니 팽팽한 긴장이 생기기 힘들었다. 2년차에 불과한데도 어지간한 일엔 그러려니 묵인하기도 했다. 이건 교섭이 아닌데 하는 회의가 밀려왔지만,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위원으로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지 하고 맘먹곤 했다.
제대로 공개도 하지 않는 닫힌 구조에서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임금 교섭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앉아 시간만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 몇몇 사용자위원들을 보노라면 속에 불이 일었다. 10년째 줄기차게 자동 반복기계처럼 동결안(한번은 삭감안)을 당연한 듯 제출하는 사용자위원들의 심각한 행태를 보면서 이건 교섭이 아닌데 하는 회의가 밀려왔지만, 비정규직을 대표해 들어간 최저임금위원회인 만큼 제몫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열네번이나 열린 전원회의를 마칠 때마다 ‘최저임금위원회 이대론 안된다’는 판단이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5. 수정안 논쟁
최저임금 인상 수준과 함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시급&월환산액 병기와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가 표결로 작년과 똑같이 하는 것으로 판가름 난 후, 1만원 대 동결 구도가 다소 지리하게 이어졌다. 최초 1만원 요구안을 그대로 고수할지 아니면 수정안을 낼지 노동자위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 참 어려운 선택이었다.
나는 꽉 막힌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구조에선 노동자위원들이 원하는 최소 수준인 두자리수 인상이 불가능한 만큼 1만원 요구를 고수하면서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강하게 내 판단을 얘기했다. 취합된 정보로 봤을 때도 공익위원들의 전반적인 인상율 범위가 높아야 6~7% 내외를 넘어서기가 어려운 만큼 우리가 어떤 수정안을 내든 별다른 변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를 조합원으로 둔 대표자인 노동자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구조 혁파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은 분명했지만, 임금교섭인 만큼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하면 한푼이라도 올리기 위해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심돼 마지막까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수정안 관련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작년에도 퇴장해 허탈한 결과를 맞았는데 올해는 불만스럽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임금인상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낫지 아닐까 고심했다. 그러다 번뜩 노동자가 단순히 수혜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반문했다. 오히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대로 공개돼 수많은 저임금 당사자들이 가장 중요한 자기임금 결정 과정을 보면서 자기 권리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흔들었다.
“그저 임금만 올리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권리 앞에 낮잠 자는 자는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지 않았는가.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건 오버다. 나는 노동자위원으로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걸 자임하고 있지만 사실 가당찮고, 오히려 당사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아닌가. 올해야말로 지난 28년 동안 굳어져온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깨트리는 분기점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불만스럽고 아쉽더라도 올해는 제도 개선 투쟁에 중심을 두는 게 맞다. 그게 소탐대실을 막는 길이다.” 는 결론에 이르렀다. 양대노총 추천 9명의 노동자위원들도 진지한 논쟁 끝에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두 자리 수 인상 또는 작년보다 높은 인상율이라도 가능했다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최악이었다.
결국 막바지에 공익위원들 스스로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한 생계비와 노동생산성을 산정 기준에서 빼고 낸 심의구간을 보면서 기가 막혔다. 최저임금의 사회적 의미를 잃어버린 숫자놀음 앞에서 진정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결단이 불가피했다. 결국 박준성 위원장의 독단적인 회의 진행과 결정으로 사용자위원안 중심으로 공익위원안 상정이 불가피해졌을 때 노동자위원들은 전원 퇴장했다. 그리고 곧장 기자들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전원회의장 앞 연좌농성 후 박준성 위원장 항의방문을 마지막으로 최저임금위원회가 입주한 고용노동부 건물을 빠져나왔다. 후회는 없었지만 맘은 쓰라렸다. 새벽 예상과 엇비슷한 7.3% 인상을 확인하고 조금 허탈한 심경이었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심을 다졌다.
6. 뭣이 중헌디 : 꼭 필요한 제도 개선 과제들
1) 투명한 정보 공개로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가장 먼저 회의 내용이 전면적이고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노사 합쳐 12명에 불과한 배석자수를 더 늘리고 기자 취재를 보장해야 한다. TV공개토론이나 생중계도 해야 마땅하다. 회의 결과도 위원 실명 공개를 포함해 속기록 수준으로 공유돼야 한다. 마지막 결정 과정은 비공개가 불가피하더라도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폭력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입법 취지대로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를 개선하고 해소할 방도를 염두에 두고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저임금위원회에 부문을 대표해 들어온 위원들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꼭 필요하다.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위원들도 있다. 당사자 중심 구조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갖는 장점이 외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현안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합리적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가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높은 벽에 막혀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는 밀실에 갇힌 최저임금위원회의 장벽을 허물고 위원들의 자질을 상향평준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 고용노동부 소속이라고? 낮은 위상 올리기
최저임금위원회 위상이 격상돼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법적 지위가 고용노동부 소속 기구로 돼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경제부처들이 우습게 안다. 올해 기재부와 산업자원통상부 특별위원은 아예 코빼기도 안 비쳤다. 필참은 아니어도 위원회가 요청하면 마땅히 나와서 정부 입장을 알리기도 하고 해명도 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다. 이래서야 국민임금인 최저임금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복잡하지 않다.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격상하면 된다. 국회 산하로 이관하는 것보다는 당사자 중심 위원회 형식을 유지하면서 정부 내 위상을 올리는 것이 더 바람직한 개선 방도다.
3) 공익위원 추천권 시정
공익위원 추천권을 바꾸고 나눠야 한다. 전원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일괄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현재 공익위원은 경영학과 교수 4명,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4명, 당연직 공무원 1명으로 이뤄져 있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인데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관련 전문가가 한명도 없다니 기막힐 일이다. 노사 당사자와 국회가 추천권을 적정하게 행사해 사회적 합의 수준의 논의 구조를 갖춰야 한다.
7. ‘을들의 연대’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대표적 사용자인 영세자영업자가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다. 왜 약자끼리 맞서야 하나 의아할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재벌 중심 양극화 경제구조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바로 과실을 독식해온 대기업 집단이다. 원하청불공정거래 구조와 골목상권 침해, 나쁜 일자리 양산으로 최저임금의 합리적인 인상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한 슈퍼갑 재벌집단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피해자인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는 손맞잡아야할 연대 대상이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면 무리한 창업을 하지 않아 과밀경쟁으로 폐업하기 일쑤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늘어난 소득의 1차 수혜자도 자영업자가 되니 양수겸장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일부 한계자영업자의 경우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실제로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자영업자는 드물다. 오히려 지나친 과밀경쟁으로 인한 어려움과 높은 임대료 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결국 재벌 중심의 이윤독식구조 혁파와 원·하청 불공정거래 시정, 임대료 인하와 카드 수수료 인하, 프렌차이즈 가맹수수료 현실화 등 경제민주화 요구와 연동한 패키지로 해결해야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지뢰들을 제거할 수 있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영세자영업자가 함께 손 맞잡고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때 비로소 경제 선순환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현될 수 있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둘러싼 이해당사자간의 연대가 한국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거라 기대한다.
나오며
행정적 절차가 남아있을 뿐 사퇴를 선언했으니 나는 더 이상 노동자위원이 아니다. 위에서 거칠게 얘기했지만 2년 동안의 활동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별도의 자리에서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만큼 내 활동 경험을 밑거름삼아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제몫을 할 수 있도록 온힘 쏟을 것이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차원의 독자적인 기획도 고민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급한 사람이 우물 팔수밖에 없음을 절감한 만큼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찬찬히 찾아가야 할 게다. 모두가 힘을 보태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개선 요구가 중요하게 부각된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 1만원 쟁취 투쟁은 판이 달라야 한다. 다행히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핵심 요구로 한 내년 총파업 투쟁을 기획하고 있고 한국노총도 관련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무척 기쁘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쟁취 투쟁으로 뒷받침된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교섭장에 양대노총 위원장이 최저임금 당사자들인 비정규/청년/여성 대표와 함께 노동자위원으로 들어가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재벌왕국 대한민국의 저변을 뒤흔드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투쟁! 생각 만해도 가슴이 뛴다.
<최혜인편>
최저임금위원회 배석 2년, 짧고 굵다
최혜인(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글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며 답답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 소회를 나누기 위한 목적이다.
노동자위원인 센터 소장의 빽(?)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망설이지 않고 배석을 신청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장관급이고 위원은 차관급이라던데, 사회적 지위도 높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저 아래 동네 낮은 곳 사람들의 임금을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했다. 아마 인자한 할아버지 교수님처럼 노동계와 사용계의 입장을 반반씩 듣고, 조금 더 배려가 필요한 노동계 편을 들어주리라는 측은지심 따위를 기대했던 것 같다.
1. 최저임금위원회 투명성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대로, 최저임금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2015년부터 양대노총 밖에 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청년유니온이 노동자위원으로 참석하면서 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 성과로 배석자가 늘어났고 회의록이 더 구체적으로 정리됐고 즉각 공개되었다. 최저임금에 대해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위원회 안에서 어떤 것을 결정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합의의 수준도 노동계가 주장했던 것 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정보공개에 대한 3가지 결정사항은 비교적 빠르고 쉽게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노동계는 전원회의를 TV로 생중계해야 한다는 요구를 했지만, 즉각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이정도 합의면 괜찮은 성과였다.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합의될 수 있었던 위원회 투명성에 대한 논의가 양대노총만 참여하던 2015년 이전에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2. 최저임금 기사 댓글의 단상
최저임금이 민감한 주제인 만큼, 최저임금 관련 기사에는 댓글도 많다. 그만큼 최저임금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댓글을 보면 최저임금이 너무 낮으니 올라야 한다거나, 노동계에게 힘을 내라거나, 사장님도 불쌍하다는 내용이 주로 많다. 그런데 간혹 노동계를 가리키며 ‘왜 니들 마음대로 내 임금을 정하냐’는 비난의 댓글도 종종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워낙 낮은 탓에,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위원이 구성되는 건 형식적 대표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위원들은 얼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배석하며 지켜본 결과, 노동자위원은 열심히 싸운다. 청년, 여성,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충, 그리고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인상되지 않는 공공부문 용역 노동자를 위해 ‘감히’ 기획재정부 담당자를 전원회의장에 부르기도 했다. 물론 담당국장 대신 타부서 과장이 오긴 했지만.
그래서 노동자위원을 욕하는 댓글을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데, 모든 걸 노동자위원에게 떠맡기고 당신은 최저임금 집회 한번 나왔느냐고 반문한다. 못된 생각이란 거 안다.
심지어 한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를 사퇴하며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당사자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명확한 주장의 연장선상이었지만, 용감하게도 이런 말을 덧붙였다. “노동조합으로 고용이 보호되는 근로자를 대표하고 있으니 편의점 알바 일자리가 줄든 말든 관심 갖지 않는 것도 일견 자연스럽다.”
억울하지만 대중의 반응과 사퇴한 공익위원의 반응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2015년 청년대표와 비정규대표를 노동자위원으로 함께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노-사-공 9명씩의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더 많은 당사자 대표가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알바대표, 여성대표, 공공부문 대표, 영세사업장노동자 대표(일반노조?), 더 나아가 노동계 학자를 포함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최저임금노동자 2/3가 여성인데, 노동자위원 남녀 성비를 조정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3. 어른들의 세계
나도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한참 됐지만, 가끔 ‘어른’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걸 느낀다. 일본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의 친절이 과도한 나머지, 그것이 진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헷갈리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한데, 최저임금위원회가 꼭 그렇다.
노-사-공 위원 27명이 3년마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지만, 진짜 신입 위원은 몇 명 없다. 장기집권도 이런 장기집권이 없다. 전원회의장에서는 진지하게 토론을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하게 돼버린 것 같다. 예를 들어, 노동계 주장이 백번 옳아도 공익 입장에서 정부나 사용계 눈치도 봐야 하기에, 옳은 주장을 전부 수용할 수 없는 곤란한 입장이라는 걸 이해한 채 토론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니 매년 비슷한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주장하면 이정도 받아들여 질 거고, 그 대신 이 정도를 양보해야 할 거라는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그런데도 노사는 최저임금 1만원(혹은 동결)이 되지 않는다면 죽을 것처럼 자극적인 언어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절실함일까? 싸우면서 정든다고 했다. 장기집권 위원들, 이미 너무 친해졌다.
4. 보이지 않는 손
노-사-공이 모이긴 했지만 최저임금을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다. 노동계는 거의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순간 퇴장을 했고, 사용계는 일부퇴장, 일부반대를 한다. 결국 공익위원의 영향력이 가장 큰데, 10여 차례 전원회의 중 말 한마디 안 하는 공익위원이 있을 정도로 공익위원들은 말을 아낀다. 귀를 활짝 열기 위해 입을 닫은 것 같지도 않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이나 최저임금수준에는 노사가 주장해 왔던 생계비나 노동생산성 등이 반영되지도 않는다. 그럼 노사는 도대체 왜 치열하게 자기주장을 한 걸까? 최저임금 정하라고 모아 놓은 27명의 위원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손이 최저임금을 정하게 만든 데는 노-사의 책임도 크다. 노동계는 올해 1만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최초요구안을 고수했다. 노동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고 1만원은 최소한의 요구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설득력 있는 교섭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구나 심의촉진구간이 3.7%에서 13.4%로 넓게 나온 것을 감안하면, 최대한 상한에 가깝게 결정될 수 있도록 수정안을 냈어야 했다. 물론 노동계는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결정수준을 미리 타진했고, 수정안 제출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당시 수정안을 내지 않았던 것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5. 불균형
솔직한 표현으로, 형편없는 위원들도 많이 앉아 있다. 사용계 간사인 경총과 영세사업장 대표로 온 한 위원을 제외하고는 사용자위원들은 공부도 안하고 준비도 안하고 그냥 몸만 오는 것 같을 때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만 일단 막겠다고 오는 것 같다. 논리와 열정으로 보면 노동계가 압승인데, 사용계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역시 가진 자는 여유롭고, 더 갖고자 하는 자는 절박하다. 자본주의가 내제하고 있는 노사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노동3권도 있고 노동법도 있고, 최저임금법도 있는 건데,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누군가는 최저임금은 복지가 아니니 저임금노동자에게 복지를 늘리자고 했다가, 복지를 늘리려고 하면 일 안 하는 사람에게 왜 혜택을 주냐고 한다. 코에 걸어도 노동자 쥐어짜기고 귀에 걸어도 노동자 쥐어짜기다.
전원회의에서 사용계는 최저임금과 낙수효과, 실업에 대해 줄곧 이야기 한다. 마치 최저임금이 동결되면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면 일자리가 늘고, 일자리가 늘면 우리 모두 행복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실소가 세어 나올 수밖에. 때로는 이런 식의 논의가 의미 없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최저임금위원회는 소중하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한강대교에 매달려 해고가 부당하다고 소리쳐도, 높은 광고탑에 올라 자기 존재가 노동자라고 소리쳐도 노동자는 불법점거에 대한 진압의 대상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노동자를 대변하는 제도적 장치는 별로 없다. 여태 최저임금위원회에 문제가 많다는 소회를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위원회는 민주적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노동자위원이 9명이나 앉아 있다. 노동자위원의 발언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록이라는 공식적인 문서가 된다. 아스팔트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더 절실하고 생동감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갖는 힘도 분명히 있다. 노동계는 이 구조를 잘 활용하면 된다.
7. 마치며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며 발견한 사실이 있다. 최저임금은 새벽에 결정된다. 노동계는 퇴장했기 때문에, 마지막 전원회의의 분위기를 모르겠지만, 남아 있던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발걸음 가볍게 서울행 기차를 탔을까? 밤늦게까지 핸드폰 붙잡고 검색 창에 ‘최저임금’ 네 글자를 써놓고 수십 번도 넘게 새로고침을 하다 잠이 들었다.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중앙일보는 최저임금이 새벽에 ‘기습통과’됐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전원회의장에 앉아 적(?)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감정노동이다. 세종시에 다녀온 날이면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된다. 그래도 적(?)의 실체를 직접 보고 관찰하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다. 정책국 일도 일종의 사무직인지라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많은데, 최저임금위원회는 일상에 짜릿함을 주는 짧고 굵은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작년에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면, 올해는 재밌었지만 힘이 들었다. 노동계의 대표성을 보완하고 최저임금위원회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내년에는 더 시원하고 짜릿하게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의 관심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