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새로운 봄은 언제 올 것인가?
조혁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서울 시내 한 사립대학에서 14년째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60대 중반 김갑순씨는 2018년 1월 2일, 새해 첫 청소를 빨간 노조 조끼를 입고 시작했다. 2017년 8월, 임금 협상을 둘러싸고 한 달 여 간의 농성을 마친지 이제 겨우 4개월 지났을 뿐이었다. 한 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외쳤던 “임금 인상” 구호는 한 겨울 살을 에는 추위를 맞이하여 “구조조정 인력감축 반대”로 바뀌었다. 김갑순씨는 “어느 국립대학교는 청소노동자를 정규직화 한다고 하는 뉴스를 봤는데, 우리는 정규직은커녕, 정년 된 사람 다 내보내고 그 자리 안 채우니 이거 참...”이라면서 씁쓸해했다.
김갑순씨와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맏언니 이명희씨는 만 70세가 되는 해의 연말인 2017년 12월 31일 정년퇴직했다. 이명희씨는 정년이 되어 일터를 떠나는 시원섭섭함 보다는 한 건물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들의 상황을 걱정했다. 김갑순씨와 이명희씨가 일하던 총 10층 규모의 건물은 2016년까지 청소노동자 8명, 경비노동자 4명이 함께 일했는데, 2017년이 되자 정년퇴직한 경비노동자 1명과 청소노동자 1명의 자리를 채우지 않았고, 남은 인원이 그대로 일하게 되었다. 2017년 청소, 경비 노동자 각 1명씩 인원이 줄어들자, 건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든 자리는 안 보여도, 난 자리는 금방 눈에 띈다.”라면서 부쩍 강해진 노동 강도를 이야기했다.
2017년 연말이 되자 이 대학의 시설관리노동자들은 대규모의 인력감축을 걱정했다. 이명희씨를 비롯하여 30여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만 70세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30여명의 노동자들이 정년 퇴직하고 나면 2018년에는 정년 퇴직자의 자리를 새로 채워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원청은 2018년 1월 2일, 정년 퇴직한 시설관리노동자의 자리를 초단시간 아르바이트로 대체했다.
대학 당국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노동자 투입을 정당화했다. 등록금 수입이 늘지 않고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상황 속에서 전일제 노동자를 신규 충원하지 않고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투입하는 것이 비용 절감의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했다. 대학 당국은 청소직 노동자 기준, 1년에 1인당 33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므로, 전일제 노동자 신규 충원이 대학 재정에 심각한 부담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학 당국은 시설관리노동자들이 현 상황을 “구조조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도 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 대학 당국의 조치는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 등의 노동 조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반대는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생각은 달랐다. 노동자들은 정년 퇴직한 노동자의 자리를 채우지 않는다면,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강화될 것이고 이는 곧 같은 임금을 받고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학 본부 농성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퇴직한 자리에 청소할 사람 제대로 채워달라는 건데. 청소 일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면 아르바이트로 쓴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학교한테 우리는 사람 아니에요. 머릿수 세서 계산하는 비용이고 쥐어짜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청와대와 교육부 및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 이 대학 출신 국회의원들이 대학을 방문하여 시설관리노동자 인력 감축 문제의 해결을 요청했지만, 대학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57일 간의 대학 본부 점거 농성 끝에 노조의 요구 사항 중 아르바이트 투입 철회 등의 조건이 일부 수용되어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협상 타결의 합의문에 도장을 찍은 주체는 대학 당국이 아닌 용역회사들이었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대학 당국은 시설관리노동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임금과 인력 투입 문제를 둘러싼 대학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투쟁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투쟁의 가장 큰 원인은 대학이 시설관리노동자들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구조에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노동 조건이 노동자들의 고용 사업주인 용역회사보다는 사용 사업주인 원청의 결정에 달려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원청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용역업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청의 “심부름꾼”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은 원청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으나, 원청은 항상 법적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걸음 물러서 있을 뿐이다.
대학에서 청소·경비 등의 시설관리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대학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대학과 노동자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설관리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경우 비용 절감의 이점도 존재한다. 2018년 1월, 대학 당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학 당국이 청소직 노동자 1인 당 1년에 지출하는 비용은 3300만원 가량이다. 이는 자칫 청소 노동자 연봉이 3300만원이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학 당국은 간접 고용 구조 속에서 쓰지 않아도 될 ‘중간 수수료’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기준 청소 노동자의 시급은 7780원이며, 월 209시간 기준 12개월로 계산했을 때 기본급은 195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명절상여금 년간 50만원과 식대 1개월에 10만원, 그리고 연차수당과 기타수당을 합쳐서 연봉기준 총 2300만 가량이 노동자가 실제 수령하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지출하는 금액과 노동자들이 받는 금액 사이의 대략 1000만원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청소노동자의 고용사업주로서 용역회사가 부담하는 4대 보험 등의 회사 부담분 등의 비용과 청소도구 및 장비 구입비 등을 따져보아도 중간에서 용역회사가 가져가는 ‘중간 수수료’가 꽤 높은 수준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간 수수료’를 지불해야 함에도 대학 당국이 간접 고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대학 당국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 상 청소·경비 등의 업무는 주로 5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 연령대의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의 노동자가 업무 수행 과정 중에 혹시라도 일터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학 당국은 간접고용구조를 이용하여 모든 처리를 용역회사에 일임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일 것이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접고용구조에서의 중간 수수료는 일종의 ‘책임회피 비용’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거의 모든 대학들이 밖으로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대학 안 에서는 대학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노동하는 시설관리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에는 눈을 감고 책임을 회피해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계의 오랜 요구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의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대학에서 청소와 경비 등의 시설관리업무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이다. 대학의 시설관리노동자들은 안전하고 깨끗한 강의실, 연구실, 사무실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순찰을 돌고, 쓸고 닦고 비우는 노동을 수행한다.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이 당연히 깨끗하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동하는 노동자의 노력 덕분에 대학 구성원은 안전하고 깨끗한 캠퍼스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안전하고 깨끗한 캠퍼스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대학의 “의붓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OO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한번 관찰해보자. 그/그녀의 유니폼 가슴에는 그/그녀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마크가 아니라 용역업체의 마크가 달려있다. OO대학에서 일하고 있지만, 결코 OO대학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OO대학의 멋진 마크가 자신의 유니폼에 새겨지길 원하고 있었다. “나는 용역업체 OO개발에서 일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OO대학에서 일하고 있어요.”
노동의 의미는 단순히 일을 통해 생계를 위한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은 노동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길 원한다. 대학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시설관리노동자들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노동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있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한 겨울 인력감축 반대 농성장에서 만난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을 때가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내가 청소하는 건물의 학생들이, 교수님들이 좋은 일이 생겼을 때”라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청소하는 건물에 있는 교수가 총장이 되었을 때, 장관이 되었을 때, 자주 얼굴 보던 학생이 취업했을 때” 라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 학생과 교수가 공부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을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대학에서 시설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청소·경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사라진 사용자 책임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통해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시설관리노동자의 노동의 인정을 추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설관리노동자의 직접 고용이 이루어질 경우, 대학은 중간수수료 명목으로 용역회사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며, 이를 통해 비용절감과 정규직화의 이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강의를 하부구조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시설관리노동자의 직접 고용 정규직화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 달성이라는 목표에도 부합하며, 한국 사회에서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확산 흐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