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센터 정책연구위원,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이고 실천가이기도 한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은 100년 전에 ‘생활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사용자는 공동체에 순비용을 초래하므로 기생적’이라는 분석과 주장을 내놓았다. 교섭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미조직 노동자는 낮은 임금을 수용할 수밖에 없고, 생계비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공동체로부터 받는 보조금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저임금을 지불하는 ‘사용자가’ 공동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사회에 기생함을 의미한다. 열악한 조건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의 존재는 사회적 재생산을 저해하므로 공공의 순손실이 인정된다.
웹 부부가 기생산업 논쟁을 하고 최저임금제가 태동한 시기에 그 도입을 반대한 경제학자와 사용자의 논리는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이어지는 클래식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저임금 산업에 고용된 여성들은 학력 수준이 낮거나 남성보다 가사 노동에 비교우위가 있다. 생산성이 낮은데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더 높은 임금을 강제하면 고용이 줄어들어 빈곤한 노동자 가족이 더 빈곤해진다.
최저임금제 도입을 반대하는 이러한 고전적인 논리에 더하여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다른 이유도 제시되었다. 여성들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며 공동의 소득을 구성하므로 임금을 적게 지불받아도 ‘괜찮다.’ 생활의 단위는 가족이므로 보조 소득원인 여성의 임금을 낮게 지불해도 된다는 주장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임금심의회는 혼자 사는 여성의 생계비를 최저임금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비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최저임금 수준의 결정 기준으로 선정하게 된 역사적 배경인 셈이다.
생활의 단위가 가족이고 가족 내에서 보조 소득원인 여성의 임금은 낮게 줘도 된다는 주장 이면에는, 생계비 수준에 기초하여 임금이 결정되고 있음에 대한 인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수준 결정에 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준거로 삼은 까닭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줘도 괜찮다는 인식과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 및 운영의 역사적 맥락은 증발하고 제도만 남았다. 최근의 우리는 최저임금 결정에 가구 생계비를 고려하는 나라가 없다거나, 임금으로 왜 가족의 생계까지 고려해야 하냐는 반박을 듣는다.
임금은 생계수단이다. 노동자는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 올려놓은 바위가 바로 굴러떨어져 반복하여 다시 언덕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부조리도, 시지프스가 살아남아 계속할 힘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기업은 노동을 통해 먹고 살고자 하는 노동자가 있어야 고용할 수 있기에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와 무관하게 결정될 수 없다. 임금은 생계수단으로서 가치를 충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계수단으로 가치를 충족하는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가늠할 때, 생활의 단위가 가족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
두 명의 성인이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명의 성인이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의 두 배가 아니다. 한집에서 같이 살며 주거비를 아낄 수 있고 밥솥도 하나, 세탁기도 하나, 냉장고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 성인 두 명이 모두 노동자라면 1인당 생활비용은 줄어든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라면 두 성인으로 구성된 가구보다 생활비를 적게 쓸 것이다. 아이는 어른보다 적게 먹고 소비도 적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일할 수 없으니 아버지 혼자 생활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생활비용은 개인이 속한 가구 유형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표1]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덟 개 가구 유형별 표준 실태생계비를 2021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분석한 결과이다. 대표 가구 유형은 임금 노동자인 성인의 수와 미성년 자녀 유무 및 수의 조합으로 정하였다. ‘2인 외벌이’ 가구는 성인 두 명으로 구성된 가구인데 그중 임금 노동자가 한 명이다. ‘4인 맞벌이’ 가구는 성인 두 명과 미성년 자녀 두 명으로 구성된 가구이며 성인 두 명은 모두 임금 노동자이다. 미성년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3인 외벌이’ 가구는 ‘3인 맞벌이’ 가구보다 소득이 낮아 생계비도 낮게 나타난다. 임금 노동자인 가구주 홀로 배우자와 두 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4인 외벌이’ 가구가 2021년에 평균적으로 지출한 생활비용은 월 557만 원이었다. 만약 가구주가 최저임금 노동자였다면 표준적인 생활에 필요한 지출비용 557만 원의 32.7%만 근로소득으로 충족할 수 있었다.
2021년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4인 외벌이 가구의 가구주였다면 표준적인 생활을 포기하거나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야 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전일제 노동을 하고 받은 임금으로 80% 이상 표준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려면 그는 혼자 살거나, 취업한 배우자와 자녀 없이 ‘살아야만 한다.’ 최저임금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표준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저임금은 생활하기에 적정한 수준을 기준으로 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적정 생계비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다양한 가구의 적정 생계비를 고려함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노동을 하더라도 아이 키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빈곤하고 궁핍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함을 당위로 한다.
다양한 가구 유형의 적정 생계비를 핵심 준거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안은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러 가구 유형 중 하나의 대표 가구를 선정하는 방안은 고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적어도 성인 한 명이 한 명의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할 때 한 부모 한 자녀 가구 또는 맞벌이 부부와 두 명의 자녀가 있는 4인 가구를 대표 가구로 정하고 그 적정 생계비를 최저임금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혹은 다양한 가구 유형의 적정 생계비를 최저임금 결정의 범위로 제안할 수도 있다.
[표2]는 다양한 가구 유형의 적정 생계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반영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 제안한 내용이다. [표 1]에 제시한 적정 생계비를 각 가구의 취업자가 전일제라는 가정하에 시급으로 환산하고 이를 가중평균하여 하나의 값을 도출한다. 위에서는 여덟 개의 가구 유형 중에서 각 가구 유형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중치로 활용하였다. 즉, 현재 한국에서 각 유형의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만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도출한 금액인 1만 4,450원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활용하여 2023년의 명목 가치로 환산한 금액은 1만 5,211원이다. 임금 노동자 가구의 경상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평균적인 비율인 83.7%로 1만 5,211원을 충족하는 1만 2,732원이 이 방안에 의한 최종 제안이다.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으로서 가구 생계비를 고려하려면 사회 내에 다양한 방식의 생활 양태가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적정한 가구 생계비를 보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개인의 자족적 삶을 지탱하고 자녀를 낳아 기를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일제로 일하는 노동자가 일을 하고도 각종 보조금에 의존하도록 할 때 ‘공동체에 순비용을 초래’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우리는 100년 전의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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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원고는 2022년 5월 24일 양대 노총이 주최한 ‘최저임금 핵심 결정 기준으로 생계비 재조명’ 공개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