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보다 중요한 원칙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이번 총선에서도 근로시간에 대한 정당들의 공약은 그 정당이 어떤 계급을 대변하는지를 보여줬다. 정의당은 근로시간을 연 1,800시간 이하로 단축하겠다고 했고 녹색당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소득분배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반면 미래한국당은 주52시간제를 폐지하고 다양한 근로시간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근로시간제를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것, 즉 일이 많을 때 야근을 시키고 일이 없을 때 일찍 퇴근시켜 임금을 덜 주겠다는 말이다.
2010년 자리 잡은 주40시간제가 주52시간제나 주68시간제로 불리며 괜한 논란이 됐던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주40시간제를 원칙으로 하며 주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근로시간제가 정착됐다. 동시에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와 근로자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해졌다. 노동계와 사용계의 요구를 절충한 것이라지만, 특별연장근로가 어떻게 변질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된 후 올해 첫 특별연장근로를 하게 된 사업장은 마스크 제조업체였다. 전연병의 공포는 마스크 대란을 가져왔고, 마스크 공급이 부족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게 된 원인이 됐다. 근로시간을 제한한 근로기준법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 장구가 전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유였다. 문제는 이렇게 물꼬를 트게 된 특별연장근로가 애초의 취지보다 다양한 사유로 신청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4월 초, 고용노동부는 630건의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접수됐다는 발표를 했다.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한 원인은 마스크제조, 국내생산 증가, 기타가 대부분이었고, 이 중 정부는 약 95%에 달하는 594건에 인가를 허용했다. 특히 최근 1주일간 66건이나 신청을 받았는데, 공공기관, 금융기관, 교육기관의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정부지원금 업무와 소상공인 대출업무가 늘어났고, 대학에서는 외국인 유학생 관리와 온라인 강의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면서 물리적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특별연장근로가 널리 허용되자 이때다 싶었을까, 탄력적근로시간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현재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라면 특별연장근로를 엄격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난해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와 인가 건수를 보면, 특별연장근로가 ‘남용’되고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67건의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접수됐는데, 이 중 인가된 건수는 910건으로 약 95%에 달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던 특수한 상황이 일부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장기간 그러한 상황이 이어졌던 것도 아닌데, 지난해와 올해 모두 특별연장근로 인가 비율이 95% 수준이라는 건, 신청만 하면 대부분 인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특히 연장근로를 포함하여 주 최대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개정법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 시점이 다르다. 아직 50인 미만 사업장은 특별연장근로를 하지 않더라도 52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수 있고,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역시 지난해에는 52시간을 초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95%나 특별연장근로가 인가됐다는 것은 신청만 하면 근로시간을 제한한 근로기준법의 원칙은 쉽게 깨진다는 강한 시그널로 보인다.
심지어 경총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예견하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전되면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하여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로 ‘코로나19 사태 등 불가항력에 의한 생산 차질 만회’를 추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동시에 수요가 줄어들고 자재를 수급하기 어려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사업장이 휴업하더라도 곧바로 휴업수당을 지급하게 한다면 사용자에게 부담이 가중되니, 휴가나 휴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권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업수당은 민법상 지체 법리에 따른 것이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채무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않았다면 채권자에게 100% 책임이 있다는 것이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기본 원리다. 이러한 지체 법리를 근로기준법에 녹여 내면서, 채권자의 귀책사유 범위가 넓어진 것을 감안하여 책임의 비율은 70%로 조정했다. 즉 민법에 따르면 자재가 수급되지 않는 경영상 사유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포섭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근로기준법은 임금노동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자재가 수급되지 않는 것 역시 경영을 이끌어가야 할 사용자의 세력 범위 내의 사유이므로, 귀책사유 범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렵다며 휴업하는 것 모두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총은 이마저 무시하며 오로지 사용자의 어려움만 호소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총은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수요폭증기가 오면 생산 활동에 집중해야 하므로, 지금처럼 일이 없을 때 휴가를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억지 근거를 내세웠다.
근로기준법은 경총의 장난감이 아니다. 바뀌는 상황마다 법을 바꿔야 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모든 법과 제도에는 원칙과 예외가 있고 원칙은 경직되어야 하며,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원칙을 넘을 정도의 예외,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허용되는 예외는 법의 취지를 몰각할 수 있다. 서류만 구비해 인가를 신청하면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승인이 되어온 탓에, 불필요한 법률적 분쟁이 야기됐고 억울한 감정을 소모시켰으며,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과의 혼란까지 초래됐던 현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원칙은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정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고, 근로시간과 휴업수당은 그러한 원칙을 구체화한 규정이다. 이때다 싶어 ‘꺾기’를 합법화하려는 미래한국당이나, 예외만 강조하는 경총에게 연대의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는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선언적이지만, 전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해소해야 할 문제지,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일방의 희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고, 이러한 변수가 생길 때마다 법의 원칙이 흔들린다면,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법으로서 존재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