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고용이 야기하는 사회적 결과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불안정 고용(모호한 고용)은 늘지만, 이에 대한 노동계의 관심과 이해는 적어
최근에 국내외 학계는 물론 언론과 미디어, 정치인들 사이에서 표준고용관계(Standard Employment Relationship)에서 벗어난 “불안정 고용(precarious employment)”이란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기존의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의 틀로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고용관계, 혹은 모호한 고용관계가 늘어난 탓이다. 우리는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거의 일상적으로 괜찮은 임금과 장기고용을 찾는 데 실패한 노동자들, 임금 이외에 급여(benefit)가 거의 없는 임시적인 일자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좌절을 보고 듣곤 한다. 고용안정성의 부재는 자신의 가정을 막 꾸려나가고자 하는 젊은이, 낯선 이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주노동자, 자녀가 자기만의 직업경력을 갖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부모, 안전한 일자리에서 대체되어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좌절감은 공적인 불안감을 확대하고 있고, 소수의 사람만이 충분히 보상을 받고 다수의 사람은 고용과 소득의 불안전성의 증가, 저임금, 불확실한 직업 경로에 직면하게 하는 노동시장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불안정 고용(또는 모호한 고용)의 확산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예를 들면, 불안정 고용이 개별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을 받고 있고, 최근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론과 새로운 최하층 계급(Guy Standing의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의 출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정 고용의 확산이 갖는 광범위한 사회적 함의와 불안정 고용이 가계와 공동체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불안정 고용에 대해서 캐나다의 노동계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아보자. 2007년 캐나다의 자선단체 토론토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 Toronto, UWT)는 『무너져가는 기반: 캐나다 대도시에서의 가족 빈곤의 지속적인 성장(Losing Ground: The Persistent Growth of Family Poverty in Canada’s Largest City)』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불안정 고용이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토론토 유나이티드 웨이(UWT)의 영향력 하에 있던 연구자 집단, 공동체, 노조 활동가들은 2008년에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특성이 공동체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해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2010년에 이 집단은 한 대학의 재정 지원을 받아 “남부 온타리오의 빈곤과 고용 불안정성(Poverty and Employment Precarity in Southern Ontario, PEPSO)” 연구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다.
2013년 2월에 남부 온타리오의 빈곤과 고용 불안정성(PEPSO) 연구프로젝트 팀은 『빈곤을 넘어서는: 고용 불안정성과 가계의 안녕(It's More than Poverty: Employment Precarity and Household Well-being)』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4,000명 이상의 개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광역 토론토-해밀턴(Greater Toronto-Hamilton)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하게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변화하고 있는 캐나다 대도시 노동시장의 특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된 특성이 가계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45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노동계급의 생계 표준에서 미증유의 성장을 야기했던 상용 전일제 고용으로부터의 후퇴를 논증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연구에 참여자들 중 겨우 절반 정도만이 적어도 향후 1년 동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부가적인 급여(benefit)를 지급할 수 있다고 기대되는 전일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 즉 불안정 고용이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을 위한 새로운 규범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불안정 고용의 확산을 논증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 이러한 형태의 고용으로부터 보호되었던 사회경제적 집단들과 부문들 사이에서 하나의 규범이 되어가는 정도를 논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에 이민자와 소수인종이 불안정하게 고용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지만, 이러한 고용 불안정성이 더 이상 여성과 서비스 노동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식경제, 미디어, 교육, 보건의료, 공공부문 일자리를 포함한 광범위한 경제 부문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두 고용 불안전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불안정한 고용이 어떻게 삶의 중요한 의사결정(파트너십의 형성, 거주 지역, 주거 환경, 가족의 형성 시기, 출산, 레크리에이션, 기타 삶의 질과 개인 및 가계의 안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많은 선택들)을 제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상용 전일제 고용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불안정하게 고용된 사람들은 고용 불안정성으로 인해 출산을 연기할 가능성이 거의 세 배나 높고 적절한 보육시설을 찾는 데 세 배나 더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또한 보고서는 불안정하게 고용된 사람들의 거의 절반 정도가 자신의 고용상태에 대한 불안이 개인과 가족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노동계의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도 이처럼 불안정 고용과 불안정 고용이 야기하는 사회적 결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불안정 고용에 처한 노동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늘어가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모호한 고용과 불안정 고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시민권, 소득 수준, 성별과 불안정 고용과의 관계 변화, 사회의 다양한 부문과 불안정 고용과의 관계 변화, 불안정한 고용이 가족 관계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등)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불안정 고용과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적 결과들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론을 만들어야 한다.
불안정 고용은 개인과 사회에게 상당한 비용을 치르게 하고,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주며, 가 계 내에서 긴장을 유발하고, 공동체 참여에 제약을 가한다. 불안정성은 그 누구보다도 노동자 집단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만, 그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확실히 불안정성은 2차 세계전쟁 이후에 형성된 표준고용관계라는 규범을 대체하는 고용관계의 새로운 규범이 되어가고 있다.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에게 이러한 전환에 대처하는 일은 노동시장 규제에 대한 접근법을 재평가하는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이에 잘 대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계약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태복음 효과(“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마태복음 25장 29절)라는 성경 구절처럼 계속 격차가 빚어질 수밖에 없는 승자독식의 사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