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단시간 노동 현실과 시간제 노동의 새로운 상상
문지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우리나라 초단시간 노동시장이 심상치 않다. 초단시간 노동은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으로 시간제 노동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노동 형태이다. 우리는 흔히 전일제 노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간제 노동, 파트타임 노동을 얘기하지만, 법적으로 시간제 노동은 ‘단시간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지칭된다. 근로기준법 2조 1항 8호에는 ‘"단시간근로자"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 근로자의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법 18조 3항에 ‘4주 동안(4주 미만으로 근로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을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제55조와 제60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데 있다. 55조는 주당 유급휴일, 60조는 연간 유급휴가에 대한 내용이다. 즉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경우 주휴수당과 연차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주당 15시간 미만인 시간제 노동자에게 유급휴가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당 15시간 미만만 일하는 노동자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의해 퇴직금도 못 받으며, 고용보험법에서는 취업 신고 의무도 면제해서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 또 이에 따라 직장건강보험과 직장국민연금도 보장받지 못한다. 4대 보험 중 산재보험만 가능할 뿐이다. 또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넘게 일 하더라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직)로 전환도 안 된다. 이 모든 법률에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법적 보호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법에 의해 방치된 이들을 통계적, 학술적으로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한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를 초단시간 노동자로, 15시간 이상 36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는 단시간 노동자로 정의하여 시간제 노동자를 구분한다.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사이 초단시간 노동자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임금근로자에서만 보면, 2002년 186,543명이던 초단시간 노동자는 2016년 634,394명으로 약 3.4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초단시간 노동자의 연평균 증가율도 9.1%로 단시간 노동자(8.1%)나 전일제 노동자(2.1%)보다도 높았다. 초단시간 노동이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전년 대비 증가율을 보면, 2015년에 비해 2016년 초단시간 노동자는 585,453명에서 634,394명으로 8.4% 늘었는데, 단시간 노동자는 1,612,148명에서 1,843,808명으로 14.4%나 늘었고 이와 대조적으로 전일제 노동자는 17,076,541명에서 17,143,437명으로 0.4% 증가에 그쳤다. 2015년 기준 월평균 임금은 전일제 노동자 228.6만원, 단시간 노동자 76.5만원, 초단시간 노동자 30.1만원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초단시간이나 단시간 같은 시간제 노동만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초단시간 노동은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2016년 초단시간 노동자 중 여성이 약 70.6%(447,635명)로 29.4%인 남성(186,759명)보다 2.4배 많았다. 2002년 여성(120,279명)이 남성(66,264명) 대비 약 1.8배 많았던 것에 비해 더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열악한 초단시간 노동이 여성에서 증가하는 것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여성의 연령에 따른 경제활동참가율 곡선은 30대가 결혼과 육아로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비율이 높아 M자형을 이룬다. 2017년 8월 기준으로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7%로 20대(65.3%)와 40대(67.6%)에 비해 낮다. 반면 남성의 3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93.1%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낮아진다고 보아 정부는 시간제 근로를 장려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간제 근로는 기혼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한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여성의 고용률이 낮고 시간제 비율도 낮다. 여성의 시간제 노동이 확산되면 일가정양립이 원활하게 되어 여성의 고용률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실제로 2009년 전년 대비 초단시간 노동은 15.0%, 단시간 노동은 16.3% 증가하는 등 2008년 이래로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장시간 근로를 하는 국가이다. 장시간 노동규범과 이를 통해 지탱되는 낮은 생산성의 노동체제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시간제 노동이 장려됨으로써, 노동시장에서의 선택지는 이분화되었다. 기존의 일자리에서는 장시간 노동문화가 이미 확립되어서, 네덜란드 등과 같은 노동자 의사에 따른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또 시간제에서 전일제로의 노동시간 변경이 노사 협상 의제도 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일제와 시간제 중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일제 노동자와 별개로 시간제 노동자를 따로 채용함에 따라. 시간제 노동시장은 분단노동시장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 작업장 내 장시간 노동규범에 의해, 혹 탄력적 근무제의 일환으로 시간제 근로가 도입되어도 활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일자리가 적어 노동시장으로의 진출이 제한되었던 노동자들에게는 초단시간 노동이 저임금에 법적 보장도 적지만 생계 수단은 될 수 있었다. 초단시간 노동은 노동시간이 짧아 임금도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기혼 여성은 주로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하거나, 전공과 경력 등이 매치되는 원하는 분야의 일자리가 없어 선택하였다. 더욱이 초단시간 노동은 35-59세의 중년층의 경력단절 여성에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업의 저학력 고령층(60세 이상) 여성과 음식숙박업의 저학력 청년층(15~34세) 여성에서 집중적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초단시간 노동은 정부의 의도대로 기혼 여성의 일가정양립을 가능하게 하여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고용률을 높이는 방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초단시간 노동은 경제적 동기가 강하지만 시장 경쟁력이 취약한 집단을 중심으로 확산된 열악한 비정규 노동의 한 형태였다.
또 이러한 정책적·제도적 요인 외에도 사용자들이 비용 이익을 위해 초단시간 고용을 선호한 측면도 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어 요양복지산업의 사영화, 시장화로 재가파견요양사의 수요가 증가하자, 이를 초단시간 노동자로 채운 면이 있다. 실제로 초단시간 노동자는 사회복지서비스업,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회서비스업에 가장 많았다. 2008년 이후 노인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산업이 성장하면서 재가요양사 등에서 초단시간 고용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초단시간 노동자가 저학력 여성 고령층에서 가장 많은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인빈곤율과 노인고용률이 가장 높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 연상-여성 연하 결혼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남편이 죽은 후 평균 약 10년을 더 생존하기 때문에, 자산이나 소득이 없을 경우 경제적 궁핍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강한 남성생계부앙자 규범에 의해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며 남편의 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여성들로서는 남편 사망 후 주소득원의 상실로 인해 초단시간 노동같이 열악한 노동이나마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현실로 보건대 노후 보장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고령층, 특히 특별한 기술이 없는 여성 고령층이 초단시간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법이 초단시간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여 사용자의 법적 책임을 줄여주는 사이, 제도와 정책적, 수요측, 공급측 요인들이 맞물려 초단시간 노동이 증가해 왔다.
한편 초단시간 노동이 청년층에서 증가하는 것은 심각한 울림을 준다. 특히 저학력 청년층의 경우 2016년 기준 남성은 27.6%(51,598명)로 저학력 고령층 33.0%(61,633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고, 여성 역시 저학력 청년층이 20.0%(89,422명)로 저학력 고령층 43.5%(194,803명) 다음으로 많았다. 저학력 청년층은 숙박음식산업의 서비스직에서 초단시간 고용 비율이 높아, 정규직의 전일제 일자리로 이동하기가 어려운 저학력 청년층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주로 숙박음식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초단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학력 청년층에게는 잠깐 동안의 징검다리여야 할 초단시간 노동이 생업처럼 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청년층 초단시간 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10시간 이상에 밀집해 있어서, 주당 15시간 이상의 단시간 노동과의 경계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청년층 초단시간 노동자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도 관찰된다. 다만 청년층 내부에서도 초단시간 노동 경험 정도의 다양성이 있는 만큼,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응하는 행동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대학생 비율이 낮은 청년알바 업종의 초단시간 노동은 대학생알바 업종보다 저임금에 근로조건도 더 열악했다. 그러나 청년알바 업종의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대학생알바 업종군의 노동자보다 노조원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노조 가입의사, 친노조 성향 비율도 더 높았다. 청년층 초단시간 노동시장에서는 가장 노동 여건이 나쁜 노동자계층을 중심으로 노동자로서의 인식과 연대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2017년 4월 강병원 의원은 초단시간 노동자의 휴일과 연차유급휴가 적용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사회보험 가입을 위한 고용보험법·국민연금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이 가능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여,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법의 보호망 안으로 포함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노동운동적, 법적 움직임이 초단시간 노동을 좀 더 나은 시간제 일자리로 만든다면, 이제 우리는 시간제 노동에 대해 어떤 것을 기대해야 할까? 장시간 노동 측면에서 본다면 시간제 노동은 일가정양립을 위한 해결책으로 유용할 수도 있다. 다만 탄력근무제나 시차출퇴근제 같은 근로시간 유연성을 높이는 제도 중 시간제 노동이 탄력근무제의 한 유형으로서 활용될 경우, 노동의 유연화가 아닌 일가정양립을 위해서만 작동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전 작업장에서의 적용과, 노동자의 시간 조정권 보장이 될 수 있다. 시간제 근로 방식이 기업 규모나 업종과 상관없이 전체 사업장에 도입되면, 비용 이점 등의 비교를 통해 나쁜 사례를 학습하고 모방하는 자본의 동형화 행동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다. 또 법적으로 노동자에게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근로시간 유형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 시간제 근로가 노동자의 근로시간에 대한 통제력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활용된다면, 노동자 입장에서 유연한 근로 조정이 가능해져 장시간 근로로 인한 시간 갈등이 완화될 수 있다. 아울러 시간제 노동 여부가 노동시장을 구분하는 차별 기제가 되지 않도록 최저임금의 인상도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시간제 노동자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초단시간 근로 등의 시간제 근로가 장시간 근로체제를 개선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지만, 시간당 임금이 낮은 상황에서는 생계를 위해 장시간 근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즉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시간제 근로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자율권과 통제권이 주어진 조건에서만 추진되어야 하며,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과 병행되어 적정 소득이 보장되어야 근로시간 유형에 관한 노동자의 자발적 선호가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고용의 유연화를 위해 시간근로제가 악용되고 확산되는 변질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규제를 통해 전체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시간선택권 차원으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노동자 자율적이면서도 평등하게, 그리고 안정된 선택지로서 시간 유연성이 확보된다면, 결국은 아내 역할, 엄마 역할, 며느리 역할, 직원 역할 등 한정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시간 갈등 때문에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줄어들어 여성의 고용률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초단시간 노동시장은 우리나라의 법 제도, 정부, 자본의 이해뿐만 아니라, 빈곤의 덫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은 저학력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초단시간 노동 등의 시간제 노동은 장시간 노동 규범으로 작동되는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단초도 제공한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시간제 근로가 도입될 것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 규범의 철폐라는 좀 더 큰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 시간제 노동을 활용해야 한다. 여성의 일가정양립, 경력단절 방지, 고용률 제고는 이것의 성공 여하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시간제 노동에 대한 기대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문지선·김영미. 2017. “한국의 초단시간 노동시장 분석” 《산업노동연구》 23(1), pp.129~164.
조돈문·정흥준·김영미 등. 2017. 『노동권 사각지대 초단시간 노동자』. 매일노동뉴스.
“강병원 의원 '초단시간 노동자 보호법' 발의” 매일노동뉴스. 20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