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제도가 현장에서 안착하려면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도입 배경
집단생활에 있어서 무리 짓기와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배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연구들에서는 ‘유사한 것에 친밀함을 느끼고, 다른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인간의 본성 중 일부라고 파악하고 있다. 특히 가족, 인종, 민족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이 아니라, 학교나 군대, 직장과 같이 후천적으로 속하게 되는 집단에서의 무리 짓기와 그 속에서의 갈등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한편 사회적인 권력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며, 그 가운데 ‘폭력적 지배’를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하여 온 것 역시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다고 보는 연구들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인간이 서로 존중하며 타인의 권리를 생각하는 이상적 상태에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난제(難題)인지를 알 수 있다.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을 할 ‘권리’는 근로자의 가장 기본적 권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노동현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리 어렵지 않게 직장 내 괴롭힘을 마주하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군대식 조직문화와 장시간노동 관행, 회식 문화와 인적 요인에 기반한 평가제도 등은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 내 만연하게 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의 장기간 경기불황과 이에 따른 고용악화는 가혹한 직장 환경을 촉진시킨 또 하나의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고용된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대’에서 직장 생활 중 발행하는 괴롭힘 등 불합리함은 당연히 수인할 수밖에 없는 근로환경이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갑질 관행과 괴롭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이번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주창된 바 있다. 인권경영과 갑질예방에 관한 정책적 접근은 물론, ‘양진호 회장’ 사태를 계기로 국회에게 계류되어 있던 소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라고 하는,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법적으로 규율할 수 있게 하는, 이전과는 큰 제도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주요 내용 : 개정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면서 2019년 1월 15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 규율 기반이 마련되었다(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금지하는 한편(제76조의2),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제76조의3). 이에 따라 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② 사용자는 신고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하며, ③ 조사기간 동안을 포함하여 조사결과 괴롭힘 발생이 확인된 피해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④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주장하는 것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제109조 제1항). 아울러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사항을 필수 기재사항으로 두어 사업장 내 자율적 예방·대응 체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제93조 제11호).
한편 「근로기준법」의 개정과 같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제37조 제1항 제2호 다목),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정부의 책무 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기준 마련, 지도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제4조 제1항 제3호).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과 규율상의 특징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규정을 둘러싸고, 그 모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들도 제시되고 있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의 규율 체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포괄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규정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사업(장) 차원의 규율을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구제에 관한 사용자의 조치 의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정의 규정은 ‘행위 처벌’ 규정이 아닌, 기업 질서 규율을 위한 포괄적인 기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기보다는, 일반적․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직장 내에서의 지위’라 함은 지휘·명령 관계에 관계없이, 직장 내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들을 포괄함은 물론, ‘직장 내에서의 관계의 우위’는 조직에서의 우위 관계를 인정할 수 없지만, 연령이나 성별, 인종 등 인적 속성, 노동조합이나 직장협의회 등의 근로자 조직에서의 지위, 기타 이에 준하는 관계적 우위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은 정의만으로는 수규자들이 정확하게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나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노동현실에서는 법 자체의 효과보다도 당당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발간하는 가이드라인이나 사례집 등의 행위와 내용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조치: 개정법의 취지와 해석
직장 내 괴롭힘을 사업장에서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 환경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규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가 직원들에게는 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조직문화에 기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 직장 내 괴롭힘을 제재가 필요한 부적절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가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필수적 기재사항에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발생 시 조치를 규정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 「근로기준법」 체계에서는 예방 교육에 관한 법적 규율이 없기 때문에, 유사한 규율 방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관계법령의 내용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3조는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성희롱 예방교육의 의무(제1항·제2항), 성희롱예방교육 내용의 게시 및 주지(제3항),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금지를 위한 조치 의무(제4항)를 부과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법적 의무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개정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감안할 때, 이러한 방식이 사업장에 강행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및 발생 시 조치에 있어서 직장 내 성희롱 법제와 유사하게 규정하고 있는 취지를 감안한다면, 성희롱 법제를 참조한 기업 내의 규범이 구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행위의 수규자를 ‘사용자 또는 근로자’로 규정하여, 직장 내 괴롭힘이 사업장 내부 구성원 간의 규율 문제임을 명확하게 하였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에서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실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시스템을 구축 시에는 고객응대근로자에 대한 예방조치를 고려하여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제의 향후 과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핵심적인 사항은,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개념을 법에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기업 내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 및 조사절차, 피해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행위자의 징계 등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사항을 취업규칙 등에 반영하는 것이 법적 의무 사항이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 등을 제외하고,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에게 신고하여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자율적 해결을 도모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조직 구성원 간의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는 견해도 있다. 이와 반대로 법의 취지에 비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근로자가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미비하다고 비판하면서,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모두의 공감대를 도출하기도 전에 시행 초기의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의 규율 체계가 기업의 자발적인 예방과 구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향후 추가적인 입법적 개선 논의에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하여, 판례를 통한 20여 년의 개념 수립 과정을 거친 독일이나 10여 년의 가이드라인을 통한 기업 내 예방 및 구제를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의 규율 원칙을 법정화한 일본,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단행법령을 제정한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사례들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다양한 노력들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동안의 논의가 현실 부합성이 높은 입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처벌 중심의 접근법보다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단계적인 방식으로 행위 규제에 대한 입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그 첫 단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뿌리내린 갑질 관행이 심각한 만큼, 인식 개선과 실천이 동반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