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와 85%, 엘시티 문제의 해법은?
황선웅(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 해운대 주민)
해운대 해수욕장이 대형 건설비리 사건으로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 백사장 바로 맞은편에 101층 랜드마크타워 한 동과 85층 아파트 두 동을 건설하는 엘시티 사업 때문이다. 랜드마크타워는 국내 모든 건축물 중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아파트는 국내 아파트 중 가장 높다. 시행사는 엘시티PFV, 시공사는 포스코건설이며, 공식 보고된 사업비는 총 2조 7천억원이다. 최근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이 곳은 온갖 비리의 종합판이다.
시행사 선정, 사업 계획 변경과 승인, 자금조달, 시공사 선정, 분양에 이르는 전 과정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특혜와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작년 여름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이영복 엘시티PFV 실소유주와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사기, 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에 대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엘시티 사업은 공공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실상은 공공복지와 자연환경을 심각히 해치는 사업, 부동산 개발업자와 권력집단, 소수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도저히 추진될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로비와 특혜 등 각종 부정한 방법이 동원됐다. 부동산 개발업자와 정관계 인사들의 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업 중단 및 전면적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엘시티 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공공복지와 자연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미칠 것이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는다.
건설업은 다른 어느 업종보다 횡령, 사기, 뇌물 등의 부패 문제에 취약한 업종이다. 지방은 건설 비리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강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 건설사, 정관계 인사, 전문가 집단, 언론, 금융기관에 의해 대규모 난개발이 추진되고 지역구성원 의견수렴 및 타당성 평가 절차는 성장지상주의에 밀려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엘시티 문제도 이러한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결과물이다. 다만, 국내 최고 관광명소에 국내 최고층 초호화 주거시설을 짓겠다는 발상의 대담함, 로비와 특혜 규모, 피해의 심각성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엘시티 사업의 공식 명칭은 해운대 관광리조트 개발사업이다. 부산시는 공공개발을 명목으로 이 곳의 부지를 저가에 수용했다. 엘시티PFV의 전신인 트리플스퀘어 컨소시엄은 사계절 집객 관광시설 개발을 위한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다. 사업자 공모지침서에는, 해운대 백사장 주변 다른 모든 건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거시설 건설을 전면 금지하고 관광시설의 경우에도 해안부 건물의 높이를 60m 이하로 제한한다는 조건이 명기되어 있었다.
트리플스퀘어는 사업자로 선정된 후 주거시설 도입과 높이 제한 해제를 요구하는 개발계획변경안을 제출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였다. 트리플스퀘어의 요구안은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원안 그대로 30분 만에 통과됐다. 해안부 건물 높이는 당초 최대 60m에서 411m로 7배 높아졌다. 아파트와 레지던스호텔 등 주거시설 비율은 0%에서 72%로 확대되었지만, 관광시설 비율은 14.2%로 축소됐다. 그마저도 모두 관광호텔, 전망대, 워터파크 등 비싼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시설 뿐이고 공적 성격을 갖는 시설은 없었다.
“마침내 나만의 바다에 산다,” “글로벌 수퍼리치들은 아파트 같은 호텔에서 별장처럼 삽니다.” 엘시티의 분양 광고는 해운대 해수욕장이라는 공적 자산이 결국 어떤 이들의 사적 소유물로 귀속될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세대 당 가격이 엘시티 더 샵 아파트는 12억원부터 68억원, 엘시티 더 레지던스는 14억원부터 33억원에 분양됐다. 펜트하우스 두 세대는 평당 분양가가 7,200만원으로 책정되어 국내 아파트 분양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엘시티PFV의 개발이익은 최소 1조원 이상, 많게는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이익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주거시설 도입 명분 마련과 비자금 조성을 위해 사업 경비는 부풀려 보고하고 예상 수입은 축소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든 개발이익은 엘시티PFV의 몫이다. 부산시의 지분은 없고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없다.
부산시는 오히려 엘시티 단지내 소공원과 진입도로를 자체 예산 수십억원을 들여 대신 건설해 주기로 했다. 해운대 일대 교통체증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 투입될 예산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영향평가는 약식으로 통과됐다. 환경영향평가는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영복은 1990년대 부산 다대만덕 택지전환 비리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당시 주택도시보증공사에게 진 빚 1,800억원을 갚지 않아 현재까지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이번에도 1조 9천억원의 분양 보증을 제공했다. 군인공제회는 사업 초기 수차례에 걸쳐 총 3,443억원을 대출했고 2015년에는 연체이자 2,379원을 탕감해 주었다. BNK 금융그룹을 주관사로 하는 금융기관 대주단은 1조 7,800억원 한도 PF 대출을 제공했다. 법무부는 국내 민간 상업시설 중 최초로 엘시티를 부동산 투자 이민 지역으로 지정해 주었고, 포스코건설은 해외 비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로 자신의 앞날도 불투명한 와중에 책임준공 조건까지 수용하며 시공사로 참여했다.
이 사업을 어떻게 공공개발 사업으로 부를 수 있는가? 부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업 승인 전부터 엘시티 사업을 “약탈적 도시개발” 사업의 극단적 사례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대해 왔다. 부산시는 이러한 부산 시민사회의 의견을 철저히 묵살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특혜 비리 의혹과 검찰 수사, 사업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엘시티 공사 현장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국토계획법』 제133조 1항 22에 명시된 조치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국토교통부장관, 시장, 구청장은 부정한 방법으로 개발행위 인허가를 받은 자의 인허가를 취소하고 공사 중지, 개축, 이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금 공사를 중단하면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엘시티 공사는 2019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며 주택도시보증공사 아파트공사정보에 의하면 2017년 1월 현재 공정률은 15%이다. 지금까지의 비용을 생각해 나머지 85%의 공사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공사 완공 또는 중단이라는 선택에 의해 향후 수십년 또는 백년 넘게 발생할 이득과 기회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해운대 백사장에 초고층 주거단지가 들어서면 사업 추진 주체들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고 소수 부자들은 해운대 바다와 해수욕장을 나만의 것으로 누리게 된다. 반면, 해운대 해수욕장의 공적 가치는 크게 훼손되고 교통 문제와 환경 파괴 부담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진다. 후자의 비용이 전자의 이득보다 크다는 것은 자명하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공사를 중단하고 사업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