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두 가지 모습
노성철(센터 정책연구위원)
2014년 6월 12일 콜텍 정리해고 무효 소송에서 미래 경영 위기를 대비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대법원 판결. 같은 해 11월 13일,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역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 이어 작년 2월 26일, KTX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 소속 노동자임을 인정한 1·2심 결과를 뒤집으면서 그들의 복직을 무산시킨 대법원 판결. 그리고 금년 2월 16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 조직형태변경 결의 효력 사건에서 기존 노동법 해석과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고 산별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민주노총 산별체제를 흔들고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의 대법원의 사용자 편향 판결들에 대한 끝없는 한탄에 함께 맥주를 마시던 캐나다의 한 노사관계교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정부가 자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업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침해할 때 그것을 견제하라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주어지는 거 아니냐고 되물어 더욱 짙은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다. 이번 칼럼을 통해 캐나다 노사관계의 지형을 바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단체협상과 단체행동권에 관련된 최근의 캐나다 대법원 판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과 권고가 어떻게 국가단위의 노사관계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걸 가능케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특히 그 과정에서 대법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끝으로 이런 논의의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대법원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다시 살펴보려 한다. 참고로 캐나다 대법원 판결들과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소개해 주고, 컬럼에서 다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운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로버트 햅든(Robert Hebdon) 명예교수는 우편배달 노동자, 에어 캐나다의 기계정비 노동자 및 파일럿 등 주로 공공부분 노조들의 법적분쟁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고, 최근에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파업 중 작업복귀법(back-to-work laws)의 적법성을 묻는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캐나다는 ILO의 기본협약과 권고에 근거해 노동법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특히, 캐나다 대법원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 행동권을 거부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적시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최근에 잇달아 내면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먼저, 작년 1월 16일, 대법원은 지난 1960년대 이래 연방경찰(Royal Canadian Mounted Police, RCMP)의 노조 결성과 단체 교섭을 금지한 현 공무원노동관계법이 헌법상 결사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RCMP의 단체교섭권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캐나다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공공분야 노동자들에게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보장되면서 노조 조직화가 이루어졌고, 이들이 대거 캐나다노총 (Canadian Labour Congress, CLC) 에 가입함으로써 CLC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반해, 각 주의 경찰들이 각각 노조를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정부는 연방경찰의 경우 준군사조직에 가깝고 동료 간의 유대보다는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요구되는 조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들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해 왔다. 1918년부터 1974년까지 근무조건과 관련해 집단적으로 불만을 제기할 경우 즉각적인 해임사유가 되었고, 이후에는 업무협의회가 설립되어 상부와 임금과 복지혜택 등의 근무 조건을 협상하는 장치로 운영되었지만 이번 판결은 업무협의회의 최종 결정권은 결국 고위급의 쥐고 있다는 사실 등을 지적하며 그것이 매우 불공정하고 제도이고, 연방경찰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다른 경찰이 누리는 노동관계 권한을 연방경찰에 부여한다고 해서 직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입증 책임 (burden of proof)가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총 7명의 대법관 중 6명이 (이 중 세 명은 작년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주의자 하퍼 수상에 의해 임명되었다.) 다수 의견으로 연방경찰관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 사실은 대법관들 사이에 기본권으로의 노동권에 대해 이미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수 의견서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가 중단 없는 진보를 위한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ILO의 목적에 관한 선언과 같은 맥락에서, 결사의 자유는 표현, 양심, 종규의 자유와 함께 캐나다의 자유민주주의에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건전한 시민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캐나다 노사관계에 더 큰 파급력을 가지는 대법원 판결은 이로부터 불과 2주 후에 나왔다. 서스캐츠원(Saskatchewan) 주정부의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파업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 공공부분 노조들이 낸 소송에서, 캐나다 대법원은, 서스캐츠원을 비롯해 여러 주정부들의 강력한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5대2의 다수 의견으로 파업할 권리가 기본권이자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은 파업권의 보장이 인권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며,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누려야 마땅한 존엄과 자율성에 대한 긍정이며, 결사의 자유가 약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임을 명확히 했다. 노조나 노동자인권단체들이 사업자들의 힘의 우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파업할 권리가 필수적이라며 판결을 환영한데 반해 정부나 보수적인 씽크탱크들은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가 노동쟁의의 볼모로 만들고, 세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필수서비스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의 행정능력을 제한하는 판결로 즉각 비판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만큼, 과거에 벌어진 공공부문 파업과 관련해 노조와 개별 노동자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소송들에 있어, 노동자 쪽에 우호적인 판결이 나올 것으로 노동계는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대법원이 노동3권에 대해 진보적인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급속한 세계화 및 정보화의 영향으로 점점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대 정부 및 사용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대법관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지난 1982년 ‘권리와 자유 헌장(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을 제정하면서, 표현, 종교, 집회, 단결의 자유를 기본적 자유권으로 포함시키고, 이 권리들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어떤 연방 및 지방 수준의 입법도 헌법 정신에 위배 되는 것임을 선언하였다. 이후, 대법원은 표현 및 종교의 집회에 관해서는 진보적인 판결을 내면서 헌장의 가치를 공고히 했지만, 헌장 상의 결사의 자유가 ILO의 기본협약이 제시하는 단결권, 즉 단체협상 및 파업의 권리와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법해석을 지난 30년간 적용해 왔다. 그 결과, 캐나다는 공무원임금동결 및 공공분야 파업노동자에 대한 작업복귀명령으로 ILO의 결사위원회에 제소된 바도 있을 정도로, 노동자들, 특히 공공부분 노동자들의 노조활동과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노동관계법 규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화 추세와 함께 거세어진 기업경쟁력 강화 논리와 이에 발맞춰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십년 동안 정권을 쥐었던 보수성향의 하퍼 정부가 노골적으로 노조 및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 입법 및 정책을 실시하면서 노동기본권 보호는 지속적으로 후퇴해 오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주 간격으로 내려진 대법원 판결들은 단체 행동권에 제한을 받았던 공공부문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그동안 노동권에서 소외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캐나다 불안정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부가 국민들의 헌법상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을 때, 사법부가 기본적 인권과 관련된 상징적인 사건들의 판결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상적인 점은 대법관들이 고루하고 엄격한 법전의 해석자로 남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며 몸을 움츠리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속성, 국가의 역할 그 안에서 개인의 기본권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다시 묻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ILO에는 각국의 대법관들을 위해 단체협상권 및 단체행동권에 대한 워크샵을 제공하고, 캐나다를 포함해 많은 국가로부터 대법관들의 참가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부디 그 명단에 우리나라의 대법관들 이름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캐나다의 권리와 자유헌장이 그렇듯이, 우리나라 헌법 역시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노조설립제도는 신고제로 운영되어야 할 노동조합 설립신고는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실업자·해고자·구직자는 단결과 노조활동의 자유로부터 배제하는 등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을 오히려 침해하고 있다. 사용자 편향적인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과 법 집행은 쟁의행위를 위법으로 간주하고 노조나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손해배상·해고로 위협하면서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의 정당한 행사를 통한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을 즉시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지난 해 9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결사의 자유 관련 ILO 핵심협약 비준방안 토론회에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총 관계자들은 당일 불참을 통보할 정도로, 정부는 ILO 핵심협약의 비준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 이용훈 대법원 체제에서 내려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예상하거나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단행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파업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업무방해죄 적용 범위를 축소시켰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단체행동권이 하위법의 적용으로 인해 침해당하는 상황에 대해 당시 대법관 13명 전원이 치열한 논쟁과 고민 끝에 전향적으로 판례를 바꾼 판결이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현 양승태 대법원 체제는 대법관 4명만 참여한 소부의 심리를 통해 업무방해죄의 족쇄를 다시 확장해 2009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장단을 맞춰 파견노동자의 직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노동자의 단체행동에 대한 법해석을 한층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마치 대법원까지 오면 패가망신이니 올 생각도 하지말라고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는듯한 대법원. ‘정부의 행정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활동가 집단’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조금씩이나마 평형에 가깝게 만들려고 고민하며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대법원. 법에 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한 쪽이 어느 쪽인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