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지난 9월 14일 국회 앞에서 진행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재산권 보장과 계약자유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자유로운 계약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노동자 개인은 기업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섭을 하지 못한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노동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힘이 없으면 노동조건은 개선될 수 없다. 따라서 헌법에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적인 부자유와 불평등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수정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권을 헌법에서 보장했지만, 노동권 보장을 더 풍부하게 해야 할 노동조합법이 오히려 노동권을 훼손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은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가?
한국의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과 파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제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등 노조의 활동을 실질적이고 절차적으로 촘촘하게 제한하고,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형벌을 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고용과 관련한 핵심 문제인데,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면 위법으로 규정된다. 쟁의행위의 목적은 오로지 ‘노동조건 개선’이어야 한다고 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법 개악을 막기 위한 파업도 노동조합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사용자들은 노조의 수많은 요구 중에 ‘해고자 복직 등’ 아주 좁게 규정한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서는 요구가 하나라도 들어가면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조합법은 비정규 노동자의 교섭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기업과 정부는 노동조합법은 오로지 ‘근로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주장하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단결하고 교섭하고 투쟁할 권리를 방해한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오랜 소송과 투쟁으로 최근 대다수 노동조합은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자신들은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다’면서 교섭을 거부한다. 노동자들은 긴 소송을 거쳐 사용자가 교섭 상대방이라는 판결을 받아와야 교섭을 강제할 수 있다. 또한 원청은 노동조합법에 사용자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하청·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와의 교섭을 거부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형해화한다.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더불어 정치·사회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해고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폭넓게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정치파업도 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는 계약의 형식에 상관없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다. 그런데 이런 파업을 모두 ‘위법’한 것으로 간주해버리고, 노동자를 형사 처벌하며, 거액의 손해배상을 통해 노동자를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소송기록 197건(손해배상 185건, 가압류신청 12건)을 공개한 바에 따르면,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의 손해배상액만 3천억 원이었다고 한다. 이것도 전체 금액이 아니라 조사 가능한 부분만 집계한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투쟁을 했다고 해서, 점거파업을 했다고 해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고 해서, 위험한 작업환경 때문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을 막았다고 해서 손해배상이 청구되었다. 유성기업처럼 노조파괴를 위해 손해배상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행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의 투쟁을 ‘불법’으로 만들고 ‘손해배상’을 통해 노동자를 압박하고 노조를 파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그동안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훼손하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법원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했고, 간접고용의 경우에도 2010년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에 대해 원청이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라고 인정했으며, 2021년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서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노동권 훼손이 심각하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서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러 번 권고했고,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로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함에 따라 문제가 된 국내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2022년 6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거제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호소하며 51일간 파업을 했다. 조선업 위기를 빌미로 하청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임금이 30%나 삭감된 현실이 확인되었으나, 진짜 사장인 대우조선해양은 임금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구사대 폭력을 행사할 뿐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창살에 가둔 채 파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이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었고, 그 때문에 평생 갚지도 못할 470억 원의 손해배상 폭탄이 떨어졌다. 그래서 여러 시민과 노동자가 분노했고, 국회에서도 이제야 원청의 책임 인정, 손해배상 금지를 입법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2003년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배달호 열사가 손해배상 가압류에 항거하여 목숨을 버린 지 20년 만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노동·인권·종교·문화예술·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지난 9월 14일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구성하고 법안을 마련했다. 노동조합법 개정의 핵심은 노동조합법 2조의 사용자 정의 및 노동자 정의 조항을 바꿔 일하는 모두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하며, 쟁의행위 조항을 바꿔서 파업을 손쉽게 불법으로 몰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법 3조에 있는 손해배상 면책 조항을 개정하여 손해배상의 남용을 막고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자, 보수언론과 재계, 그리고 정부 여당은 막말을 쏟아내며 공격하고 있다. ‘황건적 보호법’이니 ‘민주노총 방탄법’이니 하면서 이 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이 노조의 불법행위를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기업들은 ‘재산권 침해’라고 소리친다. 해외에서는 손해배상에 제한이 없다고 주장하며, 해외는 노동자의 파업을 함부로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손해배상도 청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춘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은 함부로 노조파괴를 시도하는 기업을 제어하고,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국회에서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거리에서 힘을 모으자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은 해당 노동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불안정 노동은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노동자 개인의 힘을 약화시켜서, 기업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힘은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노동조합법은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교섭하고 파업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불평등을 개선할 힘을 근원적으로 막아버린다. 물론 노동조합법 2·3조를 개정한다 해도, 여전히 파업을 촘촘하게 제한하는 노동조합법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책임 있는 자들이 교섭에 나오게 하며, 손해배상 폭탄에 대한 걱정 없이 투쟁하도록 노동조합법을 바꿔보자. 불안정 노동의 시대, 노동권 회복을 위한 첫걸음으로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투쟁에 힘을 모아보자.
기업의 이윤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다. 기업들은 ‘재산권’ 운운하면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에 반대한다. 그런데 재산권도 공익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한 치의 재산권 침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태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악법이 기업의 권력을 과도하게 키운다. 이런 현실에서는 노동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기후정의도 기업의 권력에 의해 파괴되고, 영세상공인도 재벌대기업의 권력에 숨 막히며, 교육도 노동자 줄 세우기에 종속된다. 노동권을 복원하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투쟁은 ‘재산권’이 마치 신성불가침인 것처럼 주장하는 가치의 왜곡에 파열을 내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투쟁은 노동자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이 국회 안에서의 공방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지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투쟁의 과정이 노동권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거리와 현장에서 더 많은 이들이 노동권을 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요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일터에서 이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노조를 만들고 교섭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노동자가 모이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저항이며, 노동자의 사회적 힘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회와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투쟁을 계기로 더 많이 모이고 행동하자. 그렇게 할 권리를 더 많이 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