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12. 28 매일노동뉴스 연재
비정규직이란 글자를 알게 되면서
인영자 (보조출연자노조 총무부장)
노동자 대접도 못 받던 시절이 제일 생각납니다. 서글프고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남녀노소, 빈부의 차에 관계없이 출연하는 사람들. 인력시장은 순서대로 대기하다 시간이 되면 배정받아 법정에서 정해진 구전을 떼고 일을 한다. 그래도 그곳은 때가 되면 밥을 주고 노가다의 꽃이라 하여 ‘샛거리’도 준다.
거대한 사각지대의 비정규직. 보조출연자의 활동무대도 인생에서의 대역이다. 영화촬영을 위해 인덕원에 가고 있다. 끝에서 끝이다. 촬영은 9시에 시작하는데 6시에 집합을 시킨다. 새벽부터 집합을 시키고는 인솔자는 몇 분 전에 도착해 순서 없이 골라 일을 시킨다. 나머지는 그냥 돌려보내며 차비 한 푼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말없이 되돌아간다. 찍히면 다음에 ‘뺀치’ 놓을까봐.
비정규직은 이런 것인가. 아님 노예 자체를 비정규직이라 하는 건가. 가늠은 되지 않지만 수많은 출연자 속에서 비정규직이란 생각으로 경험담을 써 보기로 한다.
때는 2006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사극을 찍기 위해 집에서 1시간 반을 달려 여의도에 집합했다. 하나둘 모인다. KBS로. 두어 시간 지나자 ‘일찌’를 내기 시작한다. ‘일찌’ 내는데 한 시간, 줄서기 하는데 두 시간. 이내 차에 오른다. 촬영을 위해 차가 출발하고 어둠을 헤치며 촬영장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이 됐다. 동이 틀 기미가 없다. 차안에서 동트기만을 바라며 쪽잠을 자는 사람들, 밖을 근심걱정으로 우두커니 바라보는 사람들, 이내 동이 트자 내려서 줄서기를 두어 시간 한다.
배정을 받아 2~3시간 수염 붙이고 머리하고 분장하고 의상을 갈아입는다. 의상은 몇 달째 세탁을 안 했는지 땀 냄새에 온갖 오물 냄새가 난다. 그나마 그런 옷도 없어서 얼룩이 여기저기 난 똥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옷을 입고 촬영에 임했다.
촬영장은 깊은 산속에 있어서 낮엔 허허벌판이라 뜨겁고 밤은 겨울처럼 추웠다. 아침이라 강력하게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그럭저럭 할 만했다. 고무신과 짚신은 다 떨어져 신을 수가 없다. 자꾸 벗겨진다. 고무줄을 묶고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고무신이든, 짚신이든 신발 크기는 다 똑같다. 이런!
물이 있긴 하다. 몇백명이 촬영하는데 생수 1.5리터 8병이라니. 폼으로 갖다놓았나 보다. 목이 타들어 간다. 물 달라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분명했다. 이윽고 물도 못 먹은 채 점심을 먹으라 하는데 노가다의 꽃 샛거리는 고사하고 때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라면서 각자 알아서 자기 돈으로 먹으란다. 세상에 말도 안 해줬으면서.
하루를 일해도 두 달 뒤, 20일을 일해도 두 달 뒤에 돈이 나온다면서 어찌 밥값까지 두 달 뒤에 같이 나온단 말인가. 무자비하게 노숙자까지 동원해 명수를 맞추기도 한다. 그들은 현찰만 주고받는 사채업자처럼 엄청난 구전을 뗀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일해도 말 한마디 없는 사람들. 나 역시 아무 말 못했다. 오순도순 밥을 먹는 사람들, 며칠 일하며 어찌 버틸까 걱정이 된다. 물만 먹어도 15일은 버틴다지만….
두 달 뒤에 2일 일하고 받은 돈으로 라면이라도 먹일 수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물로 허기를 채워보는 사람들. 없는 자가 없는 자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찢어진다. 어떤 땐 단체로 식사를 거르는 때도 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샛거리 시간에 밥을 주는 것이 태반이다.
비정규직은 점심을 주지 않는 멍멍이로만 생각하는 것인가. 서글프다. 밥을 먹자마자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간다. 반장이 또 욕을 한다. 옆에 붙어 다니는 ‘새끼반장’은 한술 더 뜬다.
화장실을 가려면 멀리 가야 한다. 출연자들도 많다. 여긴 산 속이다. 꽤 넓다. 그래서 화장실이 없는 걸까. 어쩌라고. 아예 화장실은 만들지도 않았다. 아! 이게 웬일인가. 이런. 탈의실도 없다. 모든 알아서 해야 한다. 대사 없이 ‘큐’ 들어가면 하는 전문적인 보조출연자들이기에 화장실·탈의실 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건지. 비정규직이 이런 건가. 비참하다. 슬프다.
인간 이하의 대접, 따질 곳이 없다. 억울하다. 분하다. 갈수록 더한다. 태어나면서 비정규직은 아니었는데 어찌 이리 되었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번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알 수도 없이 왔다. 요새 말하는 날치기 수법이다.
숨어서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재촉한다. “이런 XX놈들. 빨리해.” 도대체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 몰라도 상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리 인간쓰레기를 모아 일을 시켜도 그렇지. 이건 아닌데, 참!
욕 안 먹으려고 옆에 남자가 있든 말든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다음 씬을 위해 뛰기 시작하여 준비를 하고 그 대열에 들어가 숨죽여 촬영을 했다. 기침소리라도 내면 그날은 ‘서거’하는 날이라고들 했다. 잘릴까 진짜 무섭다. 내 발로 나가야지. 짤려나간다는 것이 무섭다. 그런다고 따질 수도 없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했다. 비정규직은 잠깐 머무르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나한테 한 소리가 아니라고 모른 척하는 것이 최고다. 그럴 때 나섰다간 짤리기 일쑨데. 지부장에게 전화해서 현장에 누구누구 보내지 마….
가족들은 어찌할까, 할 수 없다. 못 본 척하라 한다. 또 울화가 치민다. 숙달된 노예처럼 나도 모르게 남을 따라 한다. 어찌 백주 대낮에 남녀가 분명하고 서너 살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70세에 이르는 노인까지 있는데 어미아비도 없는지 다 같이 싸잡아 ‘개새끼·소새끼’ 할 수 있는 건가. 언어폭력은 물론 예사로 반말이다. 출연자들도 물론 실수는 있다. 소품도 그렇게 다루진 않는다. 반장들, 무서운 윗분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출연자들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목이 타들어 가도 물을 달라 하질 못한다. 몇 백명이 다 벙어리다. 멀리서 들린다. 물 달라고. 또 욕 나온다.
“지금 물 좀 주세요.” 일사병에 전부 쓰러질 지경이라 누군가 용기 내서 소리친다. 행렬은 길었고 앞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준다니까” 한다. 앙칼진 목소리다. 소름 끼치도록.
열사병으로 결국 사람이 쓰러졌는데 지랄병이란다. 어이없다. 구급약도 없는데 구급차는 꿈도 못 꾸는 것이고….
이것이 비정규직인가. 일터는 맞는 것인가. 말로만 들었던 포로수용소 내지 삼청교육대 같다. 말 안 들으면 발로 차고 때리기도 한단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학벌 좋아 예전에 잘나갔던 사람들…. 이곳에 오면 쓴 맛을 보면서도 벙어리가 된다.
그러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욕하면 욕하는 대로 반말하며 하는 말에 “네네”하며 일만 해야 한다.
쥐 죽은 듯 촬영을 끝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갔다. 몇 시인지도 모른다. 어둠이 깔린 지 꽤나 오래되었다는 것 밖에는. 2~3시간만 자란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여자들을 다 몰아넣었다. 다락방도 있었지만 지쳐서 다닥다닥 포개서 정신없이 쓰러져 자는 사람, 앉아서 자는 사람. 난 겨우 빈 공간을 찾아 앉아 날 새기만을 기다렸다. 몇 사람과 나중에 씻고 나니 나갈 시간이 30분밖에 남질 않았다. 식사문제도 그렇다. 어쩐 일로 밥을 준다하면 출연자들에겐 5천원을 받으면서 좀 나으면 3천500원짜리 같고 아주 형편없을 땐 꿀꿀이 죽 1천500원짜리밖에 안 되어 보이는 밥을 준다. 그래도 말없이 먹어야 한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래도 군말 없이 잘들 먹는다.
촬영이 시작된단다. 전쟁 씬이란다. 폭탄에 총성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도 구급약은 배치되어 있지 않다. 동료가 다쳐서 구급약을 찾는데 새끼 반장이 말한다. “반창고, ‘아까징끼’ 없냐고. 그런 건 가지고 다녀야지.” 되레 성질을 낸다. 오래된 선배들이 말한다. “다치면 손해야.” 내 돈 내고 내가 치료하고 병원비 한 푼도 못 받아 일 못해 손해, 몸 다쳐 손해. 적당히 피해 다니며 찍으라고 귓속말 한다. 어이가 없다. 이래서 좋은 작품 나오겠나!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다. 피난 장면이 꽤 그럴싸하다. 위험도가 높다. 비가 밤새도록 내려도 촬영은 계속됐다. 산 속이라 추운데 비까지 맞아 옷이 흠뻑 젖어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유난히도 편한 일을 맡는 이도 있다. 눈에 보인다. 여러 사람 눈에도 보인다. 그들에게 아부하는 이도 있다. 그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나 보다. 수군수군 이야기가 들린다. 쟤들 4인방이야. 술대접에 성 상납까지 한다지 아마. 또렷이 그 소리가 들린다. 그들만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겠지. 먹이사슬. 동물의 세계. 머리가 아프다.
모르겠다. 허벌나게 짜투리 시간까지 촬영을 하고 여의도에 도착한 시간을 통틀어서 72시간을 일했다. 시간관념 없이 내려주니까 도착시간이 늦을 땐 노숙을 해야 한다.
오지랖 넓어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곤 에이, 모르겠다. 더러우면 피해가고 내 일 아니다 하곤 잊고 살던 어느 날. ‘1945’에서 만나 언니동생으로 지내온 문 위원장님이 사고치고 올라 왔다고 한다. 30명 정도가 언어폭행에 인간 이하의 대접을 참을 수가 없어서 폭동을 일으키고 방망이를 두드리고 필증을 내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한다. 이 몸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자신 없다고 잘라 말을 했다. 먹고 사는 게 문제인데 노동활동이라 고민이 된다. 그러나 그 날의 수모가 떠올랐다. 부당대우를 받는 많은 사람들…. 앞으로의 후배들,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
문 위원장님이면 어렵고 고된 노동운동이라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다음날 영등포 역 벤치에서 가입원서를 썼다.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문 위원장님은 머리 깎고 스님으로 촬영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신길동 쪽방을 얻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간부님들, 조합원 등 각자 사비로 활동하며 쌀·밥통·사무기기·부엌살림 등 십시일반 집안에서 하나둘씩 가지고 온 것이 그럭저럭 사무실 겸 우리의 쉼터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했다.
활동을 하며 장애물도 꽤 많았다. 말할 순 없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은 다 겪어야 하는 현실들…. 특히 보조출연자들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온 분들이 많다.
끼니를 걸러 가며 서로서로 액수에 관계없이 조합비도 내고, 한 끼라도 끼니를 해결하자고 아낌없이 내놓은 돈으로 조합 일을 열심히들 했고, 저녁 때면 허기진 배를 소주에 라면누룽지, 일명 꿀꿀이죽을 문 위원장님이 끓여 주면 서로 더 먹으려고 웃어가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소문을 들은 사측에선 간부들은 일을 주지 않았고 유언비어로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때론 함정을 파놓기도 하고. 방해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논의하고 둘이 걸어오는데 잠깐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뒤에서 소주병인지, 몽둥인지 머리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잠깐 기절한 적도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동료가 왔다. 노조는 출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원천인데 거의 모든 출연자들의 인식은 노동조합이 큰 일 나는 곳인 줄 알고 ‘빨갱이’들이 모인 집단쯤으로만 생각했다. 비리를 저지르는 곳.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을 인식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하여 밖으로 하나둘씩 떠난 동지들….
밖에서 노가다하며 열심히 참여한 동지들. 이 몸은 인생에서 제일 어려웠던 시기라 활동과 생활을 병행하기엔 어차피 보조출연해서는 안되었기에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호프집을 다니며 생활비와 활동비를 충당했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 동지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데 온 힘을 다했다.
가입원서를 받으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대선배님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정보를 듣고 어느 날 가입원서를 받기 위해 KBS로 갔는데 정말 많이 모여 있었다. 자가용도 타고 오고, 걸어도 오고….
일명 제일 끝발이 있다는 선배님과는 계속 목소리 인사를 드렸었는데 마치 그분께서 난 가입 안 해도 대신 저 사람들 가입하라고 해준다면서 따라오라고. 정녕 본인은 너무 완강히 거부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랐다고….
기회다 생각하고는 설득한 끝에 가입을 하겠다고 하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정중히 가입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르 쾅 천둥소리가 났다. 서둘러 싸인을 하고 나니 빗방울이 막 쏟아졌다. 비님이 오시길래 서둘러 비를 피해 대선배님과 안으로 들어갔는데 선배님께서 좋은 일 한다면서 속으로 대견하다 생각했다 한다. 선배님께선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난 나중에 써야 했는데 하시면서 20명가량의 명단을 주셨다. 따로 가입시켜보라고 얘긴 해놓을 테니까 하시고는 대기 중인 선배님들께 인사를 시켜주신다. 인사를 드리고 그동안 활동해야 했던 이유들을 말하듯 전해드렸다. 가입원서를 꽤 많이 받아왔다. 제일 부정했던 분들. 기분이 좋았다.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쁜 마음으로. 상근할 때라 사무실에 가서 문 위원장님께 보고를 했다. 고생했다 하시면서 한편으로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속상해서 죽겠다면서. 문 위원장님은 활동비도 못 주고 월급도 못 주는데…. 눈시울을 붉혔다. 거대한 건물은 노숙자라고 문 위원장님을 비난도 했다. 노숙자 노조…. 난 그 소리에 더욱더 열성을 하게 되었고 눈물 많고 정도 많은 대쪽 같으면서 포근한 성격의 문 위원장님. 조합 일을 하며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고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즐겁고 뭔가 뜻이 있고 확실한 건 의리, 정의, 배려, 나눔의 현장을 전보연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틈틈이 조합 일을 한지도 벌써 7년 세월이 되었다.
문 위원장님을 비롯한 동지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동지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투쟁을 약속했던 터라 누구랄 것 없이 희생을 감수했던 동지들. 법정에서 정한 최저임금, 시설 등등. 그들이 삶을 지탱할 수 있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방이 절실히 필요하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내 나라가 잘 살 수 있고 개인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비정규직이 뭔가. 제일 필요할 때 제일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 어찌 이런 대우를 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하는 일도 많고 임금도 더 높아야 한다. 궂은 일은 다 하는데 위험수당·산재, 모든 것을 통틀어 하루 일당으로 쳐줘야 하는데 두 달 뒤란 이자놀이를 하는가.
대기시간, 수염 부치는 시간, 머리하는 시간 등은 어디로 뜨는 것일까. 명세서는 간단명료하고 의문이 많아진다.
힘든 속에서도 꿋꿋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계신 분들 덕분에 이 나라가 아직은 건강하다고 생각이 든다. 정의를 위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 이름은 노동자. 머리 깎은 돈으로 사비 들여 노동조합을 지켜온 동지들. 고기도 먹어 본 녀석이 고기 맛을 안다고. 비정규직을 겪어 본 사람이 비정규직의 고통을 안다. 나눔 실천.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옛 어른들은 말한다. 자살이 왜 급격히 늘어나는 것일까.
가정도 빚에 실업자가 많으면 파산에 이르러 집을 파는 수밖에는 없다. 나라도 노동자의 위치가 서질 않으면 결국 나라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젊은 사람들의 실업·취업난·명예퇴직, 줄어드는 일자리, 대기업의 횡포를 방치하는 국가.
노동력을 존중하고 노동자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국가가 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노동계가 스스로 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굳은 결심은 하늘을 찌른다.
[수상소감]
비정규노동센터에 몸을 담고 계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들도 많았을 텐데 두서없는 하루의 일상을 가슴으로 읽어 주신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보조출연자의 생활상을 알릴 수 있는 계기도 됐고 다른 비정규직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6년 세월 속에 보조출연자, 일명 엑스트라들의 힘겨운 삶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도 받았고 또한 어렵사리 단협도 체결했는데 최저임금에 인간 이하의 대접, 언어 폭행, 간이시설물조차도 쓰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예로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라는 것이 마치 불법다단계의 돈 버는 방식과 흡사한데도 아무 말 못했던 우리 보조출연자들, 서로서로 협력해 법에서 정한 것만큼은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밭에서 배추 한 포기만 뽑아 가도 감옥에 가는 세상에 서서히 드러나는 불법들, 심지어 상납관계를 밝힐 증거 자료들이 드러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황당하기만 합니다. 피멍어린 가슴을 안고 사는 보조출연자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고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매일 눈물 마를 날이 없으시던 우리 위원장님, 문계순 전국보조출연자노조 위원장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