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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천만 선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핍박받고 홀대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반드시 개선시켜보자고 많은 이들이 맘과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10월 27일 '10만 촛불행진'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위한 마음을 모아봅니다. [편집자말] |
▲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17일부터 울산 현대차공장 명촌중문 인근 9호 송전탑에서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 |
ⓒ 정민규 |
17일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천의봉이 느끼는 이 밤의 한기는 얼마나 될까.
2년 전 대법원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화 판결을 내렸다. 최병승은 그 소송의 주인공이었다. 그 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혔었다. 정규직만이 달 수 있는 명찰을 가슴에 다는 상상을 했다.
그건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연봉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직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느껴지는 자격지심, 현장에서 비정규직이라고 겪은 수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바로 '인간의 품격'에 관한 것이었다.
자동차 오른쪽 바퀴를 정규직이 조립하고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데, 좌우를 구분하는 의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들이 늘어남에도 회사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로 이제 비정규직도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본보기로 하청업체를 폐업하고,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계약 해지하는 꼼수를 부렸다. '대법원 판결이 나면 무얼 하나, 어차피 너희들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자신만만한 선전포고 같은 것이었다. 2010년 11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에 돌입했고 조합원들의 기세는 현대차 1공장을 점거하는 불길로 타올랐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바람은 돈 아닌 '인간의 품격'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점거파업에 돌입했지만 그들은 견결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물려줄 수 없다는 처연한 선언이었다. 그때도 너무 추웠다. 차디찬 바닥에 누워 비닐 한 장 덮고 자고, 하루에 김밥 한 줄, 초코파이 하나로 연명해도 '버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렇게 힘겹지만 현대차에 다니는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단 하나의 요구를 걸고 싸움에 임했다.
하지만 모두가 파업을 그만두라고 종용했다. 아니 일단 파업을 풀고 대화에 나서라고 겁박했다. 현대차 사측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도, 노동부도, 국회의원이 있는 진보정당도 중재라는 이름을 빌어 파업을 풀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들을 떨었고, 우호적이었던 여론도 점점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정규직 노조가 쉬어터진 김밥 한 줄도 농성장으로 올리지 않았을 때 싸움의 추는 기울어졌다. 전쟁터에서도 포로에게는 자행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25일간의 인간선언은 대화에 나서라는 전사회적인 윽박 섞인 요구에 묻혔다.
대화는 서로의 힘이 대등할 때 가능했다. 대법원의 판결이나 사회적 약속 같은 건 이미 돈으로 여론을 사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중요치 않았다. 교섭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파업에 참여했던 동지들은 공장 밖으로 떠밀렸다.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수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게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은 조금씩 소리를 잃어갔다.
한편 2012년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을 개정해서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다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한 투쟁을 못하도록 법 개정을 서둘렀다. 이른바 '정몽구법'이라 불리는 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자본과 권력의 결탁은 아주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울산이 아니라 어디라도... 우리는 모일 겁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현대차 사측은 신규채용 3000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꼼수를 들고 왔다.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갈라놓으려는 정말 최악의 이간질이었다. 그러나 지난 8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관리자와 용역깡패들에 의해 머리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도록 매를 맞아도 파업에 나섰다.
점점 폭력에 겁을 먹는 조합원이 생겨났지만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제발 법대로 하자고 전국을 다니며 호소도 하고, 국회의원을 쫓아다니며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소환해야 한다고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하지만 어렵게 이루어진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차의 변명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2명의 노동자가 야음을 뚫고 차디찬 철탑 위에 서서 노동자가 만든,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노동자가 주인이어야만 하는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로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함께해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싸움에 다시 함께 나서야 한다.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아니 모든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중재란 필요치 않다. 저들이 말하는 단 하나의 요구,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분명한 요구로 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더 나아가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거대한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곳은 울산 현대차 공장이지만, 우리가 어디서 모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이 싸움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함은 분명하다. 오는 10월 27일 토요일 우리는 모이고 모여서, 그들의 정규직화가 우리의 정규직화인 것처럼, 그들의 권리가 우리의 권리인 것처럼, 그들의 승리가 우리 모두의 승리임을 확신하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내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촛불을 들고, 횃불을 만들고, 거대한 들불이 되자. 이번에는 반드시 하청인생을 끝장내자.
▲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0만 촛불행진' 포스터 | |
ⓒ 비정규직없는일터와사회만들기공동행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