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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
그예 민주노총이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출범 18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노총이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결합하기로 하면서 세밑 노정 대결이 점입가경 양상이다. 철도노조 파업은 최장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고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뜨거운 가운데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장례식이 치러졌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자결한 유한숙 어르신의 장례는 아직도 치러지지 못한 채 한겨울 처절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8년을 넘긴 코오롱과 콜트·콜택, 쌍용차를 비롯한 장기투쟁 사업장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최근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방증하는 현실이 전국 도처에서 엄혹하다.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인 올해는 ‘설마’가 ‘역시나’가 된 한 해였다. 지난해 양대 선거 공간에서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와 복지 담론의 영향으로 한시적으로 유화책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교조 법외노조 시비에서 명확하게 보여지듯이, 이 정부는 국제적 규범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적 상식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매카시즘류의 저급한 종북색깔 덧칠하기로 일관하면서 반노동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불길한 예감을 연중 내내 우리는 확인해 왔다.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은 박근혜 정부의 계급적 본색이 가감없이 드러난 결정적인 사례일 뿐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핵심 국가권력기관이 총동원된 관권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합법적 정통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정당한 합법투쟁마저 공권력으로 억누르면서 더욱 큰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박근혜 정부를 맞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봐야 할 절박한 이유가 시간을 더할수록 차고 넘친다.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의 아니게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양대 노총 단결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박근혜 대통령의 독한 무리수는 자충수가 돼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철도 민영화 반대에 대한 국민적 지지여론을 도외시한 채 노동자 투쟁은 무조건 불온하다는 시대착오적 색안경을 끼고 마이웨이만을 고수한 결과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인 아버지의 전례를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움켜쥐기만 하면 된다는 오만한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지금의 비상식적인 행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 이후 줄곧 출구 없는 저항으로 주눅 든 노동계로서는 마침내 위기가 기회로 반전된 셈이다. 철도노조 파업을 분기점으로 수세로만 몰리던 민중·시민운동 진영이 공세로 돌아서 승리의 도미노작전을 펼칠 호기다. 박근혜 정부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과 진보진영의 총파업 투쟁 승리가 중요하다. 그 시발점이 되는 12월28일 100만 시민행동을 주목한다.
올 한 해 내내 이어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근거가 된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착취당해 온 비정규 노동자들의 용트림이 인상적이었던 한 해였다. 무노조 삼성왕국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의 모범을 보여 주면서 전면파업과 점거농성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한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은 침체에 빠진 민주노조운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근에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과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투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공공부문을 사영화로 내몰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힘찬 투쟁을 벌이고 있는 철도노조와 전교조·공무원노조와 함께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핵심 투쟁주체로 전선을 지킨 한 해였다.
이제 세밑 계약해지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안타까운 죽음이 끊이지 않았던 한 해를 되돌아보며 산 자들의 몫을 생각한다. 노정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철도 민영화 반대투쟁 승리와 함께 쌍용차·용산·강정·밀양·인천공항·삼성전자서비스 등 다양한 갈래의 투쟁을 한데 모아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으로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뒤바꿀 원대한 전략 아래 1천800만 노동자들과 국민 여망을 대변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할 호기가 주어진 연말 한겨울이 춥지 않은 이유다. 복지 공약에다 비정규직 공약마저 내팽개친 박근혜 정부에 맞서 갇힌 새장을 뛰쳐나와 2014년 우리 모두 세상을 바꾸는 앵그리버드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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