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면서 맑고 아름다운 운동을 하자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14. 1 .16)
정세가 어지럽지만 푸른 말의 해를 맞아 좀 한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늘 더 중요하다 여기면서도 예외 없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인 건강 이야기다. 매년 초엔 건강을 위한 갖은 결의로 요란하다가도 시들해지곤 했던지라 올해는 좀 달라져야지 마음먹었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면서 어떤 활동인들 얼마나 진득하게 잘할 수 있겠는가. 쉰 줄에 들고 보니 거창하게 세상까진 아니더라도 내 가족과 이웃, 동지들을 위한 최소한의 운동요건이 건강 지키기가 아닌가 싶다. 운동이란 게 모두 평등하게 잘 먹고 잘살자는 건데 내가 건강해야 운동의 묘미도 더 깊어지고 많은 이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게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나는 왜 건강해지려 하는가. 열심히 뛰는 것보다 더 지혜롭게 쉬엄쉬엄 일하고 싶어서다. 심신을 고루 잘 다스려 오래도록 열정과 체력을 유지하며 활동하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다. 경험으론 건강할수록 활력도 넘치고 상상력도 풍부해질 뿐 아니라 여러 사업도 거뜬히 해치우면서 뒷심도 딸리지 않았다. 다른 이들을 위한 마음밭이 더 넓어지기도 하더라.
그래서 믿음직한 선배의 소개를 받아 고심 끝에 체형교정 및 체력단련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물과 현미 등 대부분의 먹거리들을 멀리한 채 쌀밥과 김치와 계란을 주식으로 삼아 3개월 동안 특수훈련에 돌입했다. 워낙 몸 운동을 멀리해 온 탓에 고생스럽긴 하지만 조금씩 뿌듯함이 커지고 있다.
노동운동과 진보정치가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기간 동안 많은 활동가들의 심신이 병들고 나약해졌다. 중장년이 되기까지 자기 한 몸 돌볼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헌신의 대가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채 어두운 삶의 수렁으로 빠지거나 전선에서 기약 없이 떠나간 이들도 꽤 많다. 출구 없는 장기투쟁 속에서 지친 동지들도 적지 않다. 근본적인 다른 청신호나 진정 혁신적인 변화가 절실한 시기다. 나는 나부터 온전해져야 운동과 세상살이 모두가 원만해지고 유의미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만나면 첫인사로 덕담을 나누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합리적으로 토론하며, 일상적인 자기성찰을 당연시하며 자리를 놓고 헐뜯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경쟁하는 운동은 비현실적인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먼저 다독이며 나와 싸운 상대를 북돋아 주면 바보가 되는가. 아니다. 우리가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 진보정치운동이나 변혁운동이라고 할 때 그 운동의 핵심 요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세상 만들기에 있었고, 그 중심 내용은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었지 않은가. 하향 평준화된 실력과 남 탓이 난무하는 정파갈등 구조 속에서 운동은 병든 닭처럼 꼬꾸라질 수밖에 없다. 고대하기는 120년 전 동학농민군의 시퍼런 기상으로 올해는 너른 나눔과 연대가 넘실거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내 몸과 마음을 이기적으로 챙기면서 맑고 아름다운 운동을 하자. 비정규직 운동도 그렇게 안팎을 두루 살피며 희망을 만들어 가길 소망하면서 17세기 시인 막스 에르만의 잠언시 일부를 매일노동뉴스 독자 여러분과 새해 덕담으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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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속임수에 조심하되
그것이 너를 장님으로 만들어 무엇이 덕인가를 못 보게 하지는 말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모든 곳에서 삶은 영웅주의로 가득하다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이 되도록 힘쓰라
(중략)
하지만 상상의 고통들로 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말라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 속에서 나온다
건강에 조심하되 무엇보다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너는 우주의 자식이다 그 점에선 나무와 별들과 다르지 않다
넌 이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
너의 일과 계획이 무엇일지라도
인생의 소란함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너의 영혼을 평화롭게 유지하라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아직 아름다운 세상이다
즐겁게 살라
행복하려고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