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노동절에 되살리자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이번엔 노동자 집회 문화에 대해 한 마디 보태려고 한다. 한류 문화가 하나의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매김 될 정도로 문화가 갖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진 요즘도 노동자 집회 문화는 참 끈질기게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늘 비슷한 프로그램에 판에 박은 듯한 순서와 발언, 그리고 투쟁가. 물론 그 각각이 의미 없는 건 아니고 때론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개인들의 취향이 광속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시대에 상상력의 결핍이 눈에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양대 노총과 주요 산별 단위 및 핵심 단위사업장에서 진행되는 집회들 대부분은 한 마디로 식상하고 재미없다. 색다른 문제의식으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 애써 기획하는 문화 담당자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긴 역부족이다.
조직노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규직 중심의 조직 운영을 탈피해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에 주력하는 것과 함께 시민사회와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 방위적으로 해야 한다. 보수정권의 수구적 행태를 빌미 삼아 자기 안위만을 챙기다가는 노동운동 또한 진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중투쟁으로 정면 돌파하는 것만큼이나 그 투쟁을 지지 엄호하고 안팎으로 널리 알려 낼 매개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노동 문화를 주목하게 된다. 왜 양대 노총의 집회 문화가 여러 거센 부정적 평가에도 잘 바뀌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게을러서인가. 상상력의 빈곤 때문인가. 혁명적 결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기 때문인가. 이 모두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결국 이런 현실을 개선할 구체적인 방도와 대안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나 다 바꿔야 한다고 한 마디씩 하지만 정작 어떡할지 대안을 찾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이참에 주목해야 할 제안 하나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올해가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 되는 만큼 동학혁명의 정신을 되돌아보고 그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기 위한 문화 행사를 노동자들이 주도해 판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바로 민족시인 신동엽의 감동적인 대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칸타타 금강>을 노동절을 기념해 그 주간에 무대에 올리는 일이다. 노동절은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다 숨진 선배노동자들을 기리면서 전 세계 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해 주인 되는 세상을 환기시키는 날이다. 이 뜻 깊은 노동절에 암울한 시대 반제 반봉건의 기치를 들고 목숨을 내걸고 싸운 동학농민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자본독재인 신자유주의 그늘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칸타타 금강>을 노동자가 하나 돼야 한다는 취지를 살려 이미 공공부문 노조들부터 공동투쟁을 결의한 양대 노총이 함께 주최하는 별도의 문화 행사로 꾸밀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로부터 종종 고립돼 힘겹게 고투해 온 조직노동의 현주소를 염두에 둔다면, 제대로 만든 문화행사 하나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동 문화의 외연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조로 조직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결합해 더욱 거센 노동자 대중투쟁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전국 도처에서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그칠 날이 없고 투쟁이 하루도 이어지지 않는 날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역사와 삶의 근본을 돌아보고 저 깊숙한 내면에서부터 투쟁의 원동력을 제공받아야 지치지 않고 팔팔한 기세로 천박한 자본과 맞서 싸울 수 있다. 현실을 웅숭깊게 성찰하고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대결할 수 있는 그 지점에 문화 예술의 힘이 있다. 문화는 최고의 선동이다. 문화가 시들해진 곳에서 노동운동은 야위어 갈 수밖에 없다. 위기가 기회다. 이번 노동절 때 양대 노총이 앞장서 한국 사회를 문화적으로 일깨울 큰 사고 한 번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백기완 선생의 말씀처럼 ‘변혁의 의지가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다.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쳐 온 노동운동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으로 되살아나는 124주년 노동절 주간을 미리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