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아시아경제 / 2018. 1. 18)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소장) |
올해 16.4% 인상된 최저임금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법에 명시된 대로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기 임금이 최저임금과 직결된 노동자가 460여만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마중물임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선순환 구조 정립에도 기여한다. 작년 대선에서 가장 보수적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마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걸었을 정도다. 지난 수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넓은 공감대가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도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인건비 부담 문제로만 부각시킨 정치권 일각과 여러 언론의 인식은 숲을 보지 못하는 맹목을 드러내 안타깝다.
영세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다. 정상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결정적 걸림돌은 바로 성장 과실을 독식해온 대기업 집단이다. 재벌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행위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원하청불공정거래와 높은 상가임대료 및 카드수수료, 가맹점 본사의 과도한 로열티 및 비용전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등이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을 버거워하는 진짜 이유다.
특히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영세 자영업자는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이므로 대립하며 맞설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함께 손맞잡고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때 비로소 경제 선순환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현될 수 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면 무리한 창업을 하지 않아 과밀 경쟁으로 폐업하기 일쑤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늘어난 소득의 1차 수혜자도 자영업자가 되니 양수겸장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한계 자영업자의 경우 정부의 3조원 지원대책 이행과 함께 후속 대책이 세밀하게 보완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도리어 해고를 불러일으키고 최저임금 인상을 상쇄하는 다양한 편법이 난무하는 잘못된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양 치부돼선 곤란하다.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고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도리어 피해를 감내한다면 노동인권 침해에 다름아니다.
대다수 노조 바깥으로 내몰려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빼앗기고도 항변조차 할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앞둔 대한민국의 국부 규모를 염두에 둔다면 최저임금 수준은 지금도 한참 낮다. 이번 참에 자본주의 먹이사슬 정점에서 승자독식해온 재벌오너를 비롯한 기득권 집단의 이익전유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국민의 태반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걸린 중요한 민생 문제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7530원이 보장될 때 홀대받고 눈물흘리고 있는 청년알바와 여성노동자들, 중고령 어르신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리면 개선 대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다.
우선 최저임금을 지키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를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공동체로 탈바꿈 시키는 지름길이다. 최저임금 생태계 숲을 조망하면 상생의 활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