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현장, 삶의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흔히 르포작가라고 불리는 기록노동자들입니다. 최근 이들이 ‘작가’가 아닌 ‘노동자’로 불러달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11월 29일부터 ‘답우물 성명’라는 이름으로 트윗 100자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이는 트위터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답답한 이가 우물을 판다’는 뜻을 담고 있는 ‘답우물 성명’은 기록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여겨질 수도 있는 르포작가들의 노동자 선언,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센터는 ‘답우물 성명’에 함께하고 있고, 센터의 편집국장이기도 한 이혜정 편집국장에게 르포작가들의 노동자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답우물 성명은 어떻게 시작된 성명인가요?
사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네 기록노동자들이 이야기를 하던 도중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은 희정 집필노동자가 연재중인 한겨레21의 ‘만인보’라는 코너에 실릴 좌담 때문에 만나게 되었는데요.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말하지 않는가?”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었어요. 한 사람이 “맞아.” 했고, 한 사람이 “개인은 힘이 없잖아.” 했어요. 기록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죠. “항상 남의 이야기만 기록해왔지만 이제는 우리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답우물’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요?
‘답우물’이란 ‘답답한 이가 우물을 판다’의 줄임말인데요. 모든 노동자의 심정이 담긴 말 아닐까요? 기록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소속 없이 개인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노동권이 침해받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원고료를 받지 못한다든지, 오래 준비해 온 원고가 출판사의 일방적인 계약해지로 공중분해 되어 버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거든요. 그런데 개인은 대응할 방법이 없어요. 출판사나 언론매체에서는 “미안하다. 사정이 어렵다. 다음에 하자.” 하면 끝이거든요. 답답한 거죠. 르포작가가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으니까 당사자도 “이건 명백한 노동권 침해다.” 이런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해요. 그런데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는 순간 문제는 달라지죠. ‘답답한 이가 우물을 판다’는 뜻은 그런 의미예요. ‘답답한 르포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노동자로 부르자, 인식하자’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르포작가들의 노동자 선언’이라고 보시면 돼요.
왜 트위터라는 매체를 선택하셨나요?
100자 성명이니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단기간 내에 많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라고 봤어요. 또 열린 공간이니 ‘기록노동자’들의 문제의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단시간에 ‘기록노동자’라는 단어를 기억해주셨고, 지지, 응원의 메시지를 성명서의 형식을 통해 보내주셨습니다.
‘답우물 성명’에 대해 장내의 화제였던 ‘의자놀이’ 사태와 연관 짓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어요. ‘의자놀이’ 사태는 기록노동자들에게 있어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거든요. 공지영 작가나 진중권 교수라는 개인들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사태만을 집중해서 보면 이는 기록노동자들의 명백한 노동권 침해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커진 것이죠. 이번 사태의 당사자들뿐 만 아니라 기록노동자들에게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문제가 ‘트위터’라는 광장으로 나온 거예요. ‘인터뷰의 저작권은 발언자(인터뷰이)에게 있다’는 이야기나, 다른 이의 기록을 무단으로 도용하고도 단지 ‘실수였다’며 사과도 없이 넘어가는 태도들. 기록노동자의 권리가 무시된 가운데 가능했던 일들이었거든요.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록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했고, 여기서 침묵하고 넘어간다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 뻔하니까요. 다른 수많은 논점들을 걷어내고 보면 이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었거든요. 그 지점에 대해 모인 기록노동자 네 명이 동의했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죠.
‘답우물 성명’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겼나요?
이번 성명에는 기록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만화가, 평론가, 제조업, 학습지 등등 많은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투쟁현장에 계신 분들도 참여해주셨어요. 현장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노동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어요.
기록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노동권을 침해당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죠. 강곤이라는 기록노동자는 “든든한 취재비와 넉넉한 취재기간을 보장받고 작업에 들어가는 기록노동… 그런 날이 기록노동자의 노조결성으로 확 앞당겨질 것을 확신하며…”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기록노동자들은 취재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턱없이 부족한 원고료를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악한 기록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죠.
한편 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은 다음과 같은 지지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투쟁사업장 어디나 내 문제를 기사화하고,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길 바란다. 그럴 때마다 당연히도 기록해 줄 누군가를 찾는다. 그 일이 노동인지, 누구로부터 그 노동의 대가를 받는지는 모른 체한 채… 반성하며. ‘기록노동자노조’를 격하게 지지 응원합니다! 만만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도 ‘답우물 성명’에 함께해주셨습니다. 노동자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연대와 지지의 의사를 확인했던 것만으로도 이번 성명서 운동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트위터를 보니 기록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던데요.
현재로서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단계이긴 하지만 더 많은 기록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많은 기록노동자들이 참여하길 바라겠습니다.
‘답우물 성명’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록노동자 스스로의 노동에 대한 내용도, 기록노동자들의 노동자 선언을 지지하는 내용도 좋습니다. 100자 글 맨 앞에 ‘답우물)’이라는 머리말을 달아주시고, 글의 마지막에는 ‘#기록노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주시면 됩니다.
“답우물)기록노동 육년에 신발값이 얼마더냐. 밑창 닳은 운동화는 질투를 모릅니다. 단지 기록만을 알 뿐입니다. (서분숙 기록노동자) #기록노동”
이런 형태로 글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답우물 성명’는 트위터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기록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