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결과 평가
4·13 총선 화두는 ‘심판’이었다. 새누리당은 “야당 심판”을 외쳤고, 야당은 “정권 심판”을 호소했다. 제1 야당이 분당돼 일여다야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라 새누리당이 개헌 가능선인 180석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참패했다. 경남과 부산서도 야당에 의석을 내 줬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을 밀어내고 원내 1당으로 등극했다.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약진했고 정의당은 의석을 1석 늘려 6석을 냈다. 이번 총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세대 노동진보정치는 끝났다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이번 총선을 통해 정권심판론이 대세로 떠올랐다. 노동개악을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다. 노동자 계급투표로 일궈 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공천파동 같은 외부변수가 더 크게 작용했다.
진보진영으로 시야를 좁히면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에서 두 명의 무소속 후보가 노동자 계급투표로 당선됐다. 노동자정치의 가능성이 재확인됐다. 반대로 진보정당들은 이번 총선과정에서 거의 존재감을 잃었다. 노동의제를 앞세웠던 진보정당들은 퇴보하거나 주저앉았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실험해 온 1세대 노동진보정치는 막을 내렸다. 노회찬·심상정 후보가 생환한 것을 제외하면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현격하게 후퇴했다.
20대 국회로 눈을 돌리면, 여소야대 국면이 만들어졌지만 이것이 곧 노동자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눈앞에 닥친 노동개악을 저지할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노동문제를 대하는 시각이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막았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유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노동자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는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정책의 전면적인 변화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시키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지리멸렬하게 분열된 진보노동정치에 파산선고를 하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관전평만 하고 있을 시기는 끝났다. 노동자가 필드로 나가야 한다.
대통령 오만과 독선에 대한 노동자의 심판
▲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대변인) |
20대 총선 결과는 박근혜의 총선 목표 중 하나였던 노동개악 강행에 대해 노동자가 울린 조종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세월호 진상규명 외면 등 현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민중이 내린 심판이다. 지난해 민주노총 총파업과 11월14일 민중총궐기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민중의 저항이 선거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일각에서 새누리당 등 보수정당에 노조 경력을 앞세워 공천 연줄을 대는 데 바쁜 사이에, 민주노총은 4개 진보정당과 제 민중세력과 함께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꾸리고 전국을 돌며 실천을 펼쳐 왔다. 7명의 전략후보를 비롯한 총선공투본 후보 당선과 반노동자 정당 낙선을 2대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3명의 전략후보를 포함해 총 8명의 총선공투본 소속 후보가 당선됐고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획득을 막아 냈다. 미흡하지만 소중한 성과이며, 더 큰 승리를 위한 발판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서민을 위한 노동개악 저지,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재벌책임 강화를 위한 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총선공투본을 통해 쌓아온 공동행동과 신뢰를 바탕으로, 원내 진입한 8명의 진보 의원은 물론 모든 진보세력과 함께 더 큰 투쟁과 더 넓은 진보정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기·승·전·노동개혁만 외치지 말고, 노동자와 소통하라
▲ 김준영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 |
이번 총선 결과를 한마디로 평가하면 정부·여당 심판이다. 노동자·서민들은 빚만 늘어 소비 여력이 점점 줄어드는데 재벌의 현금성 자산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잘못된 경제 정책과 국민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감시하고, 국민이 그렇게 반대하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등 민주주의 후퇴에 국민이 표로 정부·여당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근로조건을 추락시키는 잘못된 노동개혁에 노동자들은 투표로 저항하고 투쟁한 것이다. 지금껏 정치사업과 정치적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던 산하 조직들까지 한국노총 대의원대회 결의에 따라 반노동자 정당 심판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만 보더라도 현장의 분노가 얼마나 크고, 넓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확인한 선거였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는 짤막한 반응만 내놓았다.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못된 노동개혁을 포기하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경제체제로 전환하겠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반성을 기대한 것은 아직도 내가 이 정부를 잘 모르는 것인가. 도리어 나를 반성하게 한다.
기대가 아니라 촉구한다. 총선 결과를 계기로 진정 국민을 위하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기를 바란다. 박근혜 정부는 기·승·전·노동개혁만 외치며 노동자들의 목을 죌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통하며 경제위기 극복과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 길만이 실효성 있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민생 살리기, 일자리 확대에 힘써 주길
▲ 김동욱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
우선 20대 국회를 이끌어 갈 300명 당선자들에게 축하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한 달여 남은 19대 국회도 유종의 미를 거둬 주길 바란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고 20년 만에 3개 원내교섭단체 체제가 들어선 것이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조화와 균형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20대 국회는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는 한편, 일자리를 확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총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공약들을 합리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부터 풀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을 하고 번영하는 길에 기업·국민·정부·국회가 따로 있지 않다.
세계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고 우리 경제의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년실업은 12.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는 등 일자리 문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앞에 산적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쪼록 20대 국회가 견실한 입법 활동을 통해 경제를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20대 국회, 선거제도 바로잡는 데 '올인'해야
▲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 |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됐다. 원인이나 평가는 분분하니 향후 국회가 추진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를 얘기하고 싶다. 헌법재판소가 2014년 10월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1대 3까지 나면 투표가치의 불평등을 피할 수 없다”며 이를 1대 2로 줄이라고 결정했다.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유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지만 모두 무시된 채 총선이 치러졌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가 줄어 과거 총선보다 더욱 불공정한 상태가 됐다. 진보정당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소수정당 표의 가치가 다수정당과 동등해져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와 경제가 운영된다.
20대 국회는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선거제도가 곧아야 올바른 정치가 뒤따른다. 내년엔 대선을 치른다. 국회가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보다 많은 민의가 정권을 결정하는 데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도 20대 국회가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간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됐다. 앞서 거론한 제도들은 야당도 대부분 찬성하고 있는 주장이다.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제도의 최대 피해자다. 권역별 비례대표로 총선을 치렀으면 국민의당 의석수는 훨씬 더 늘었을 것이다. 야권이 하나로 뭉치고, 여당을 잘 설득해 정치와 선거제도를 바로잡는 국회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