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⑦] 30원 짜리 최저임금위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최혜인
30원과 1600원. 노-사 양측이 제시한 최저임금수준 최초요구안과 1차 수정안의 차액이다. 노동계는 최초 최저임금수준으로 시급 1만원, 월급 209만원을 제시했었다. 반면 사용계는 동결, 그러니까 5580원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이번 9차 회의는 양측이 수정안을 제시하는 날이다. 1만원과 동결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멀어진 틈새를 좁히고 서로의 온도 차를 확인할 기회였다.
30원.. 400만 최저임금노동자를 농락하다
위원장 : 사용계 수정안을 말씀드린다. 1차 5610원, 전 차수 대비 0.5%, 30원 인상해서 5610원 수정안 제출했다. 노동계 수정안은 1차 1만원 대비 1600원 인하. 8400원으로 1차 수정안을 제출해주셨다.
노동계와 사용계의 최초요구안 1만원과 5580원은 4420 만큼의 간격이 있었다. 그리고 노동계가 1600걸음 성큼 다가설 때 사용계는 노동계보다 더 가쁜 숨을 내쉬면서 고작 30걸음을 걸어왔다. 동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식이었다. 탄식이 흘렀다.
사용계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야멸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계가 접점을 찾기 위해 큰 걸음을 했지만, 강자인 사용계는 ‘갑질’을 하고 있다. “30원 올려줄 테니 받던가 말던가 아 몰랑~”
30원. 209시간 기준으로 6,270원. 한 달 일해도 1만원도 안 되는 그런 인상액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최저임금을 밥 한 끼나 팥빙수 따위에 비유한다. 한 달에 밥 한 끼, 팥빙수 한 그릇도 못 사먹을 인상액이라고. 하지만 밥 한 끼 사먹자고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는 건 아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생존이자 마지노선의 삶이다. 때문에 이런 비유가 남사스럽지만, 기가 막힌 최저임금 수준과 인상액 앞에 부끄러워야 할 것이 무언지 헷갈린다.
최저임금수준에 대한 노-사의 수정안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기회인 줄 알았으나,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만 확인한 채로 마무리 됐다.
사용계의 ‘물타기 전략’ 용인한 위원장 탓이 커
7차와 8차 전원회의에서 시급과 월급을 최저임금 결정단위로 쓰는 것에 반대하며 사용자위원들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으나, 이번 전원회의에서 이전에 노동계가 제시한 중재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가구생계비 연구용역 건도 합의되었다. 그리고 임금 불평등과 제도적 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최저임금의 사업의 종류 별 차등적용은 모든 업종에 대해 동일한 금액으로 정하는 것으로 했다. 세 가지 결정이 이루어진 직후, 두 번째 안건에 대한 ‘조건부’, ‘부대사항’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이하 ‘갑툭튀’).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위원장 :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정한다. 그리고 월환산액을 병기하여 고시하도록 요청한다. 의결주문을 이렇게 정리하여 최저임금 결정단위 안건에 대해 가결을 선포한다. 두 번째 안건인 최저임금 사업의 종류 별 구분 여부에 대한 것은 모든 업종에 동일한 금액으로 의결하고자 한다.
사용자위원2 : 네 번째 안건(?)인 사업의 종류 별 구분에 대한 연구용역과 연결해서 두 번째 안건을 언급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번째 안건이란 건 없다. 전원회의의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갑툭튀’다.
위원장 : 네 번째 안건(?)은 표결하기로 했다.
사용자위원2 : 저희는 표결을 얘기한 바가 없는데요.
노동자위원9 : 운영위에서 네 번째 안건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전원회의에는 없는 게 튀어나온 거다. 안건에 대한 토론 이후에 진행해야 한다.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다음 회의가 진행된다.
위원장 : 운영위에서 의견불일치가 됐기 때문에 표결하겠다고 정리했었다. 지금 10분 정도 이 안건에 대해 토론하고 10분 후에 표결 절차를 밟겠다. 문구는 가구생계비 연구용역과 같은 맥락으로 하면 된다.
노동자위원5 : 가구생계비건과 사업의 종류 별 구분 여부는 다른 거잖아요. 가구생계비까지는 합의가 된 거고요.
노동자위원3 : 네 번째 안건에 대해 토론한 적이 없다. 안건으로 상정된 바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게 삽입이 되서 이게 갑자기 어떻게 해서 회의안건으로 상정돼서 논의하자는 건지를 말씀드리는 거다.
사용자위원8 : 업종 별 최저임금 구분해서 하자는 건 전원회의 통해서 계속 주장했던 거다. 그런데 공익위원이 사업별로 구분하기엔 아직 데이터와 근거가 부족하니 이런 부분을 좀 더 연구하자는 얘기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 안이 나왔던 거다. 당시에 그렇게 하자고 발언한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 와서 이 부분을 반대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사용자위원의 이 발언은 사실관계와 맞지 않다. 사용계가 제시한 사업별 차등적용의 근거가 부실한 건 맞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차원에서 더 연구를 하자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 이것도 ‘갑툭튀’다.
위원장 : 운영위에서 의제 상정을 한 거다. 그래서 하는 거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연구용역은 두 번째 안건인 업종별 차등 결정과 관련됐다. 이게 부대조건이다.
이미 정해진 안건에, 그리고 의결된 안건에 갑자기 부대조건을 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사용계는 전 산업에 단일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과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하는 게 한 세트이고 조건부 찬성이라고 했다. 위원장도 연구용역이 부대조건이라고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면 땅콩 몇 알을 끼워주듯이 말이다.
대한민국 임금하한선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방식이 주먹구구식이다. 회의를 진행하는 위원장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회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며 편향적인 태도로 회의를 끌어가고 있다. 투명한 회의 공개의 필요성을 매 회의마다 절감하게 된다.
노동자위원6 : 이 부분을 어떻게든 결정해야한다는 건 알겠다. 다만 그게 왜 1호 안건에 결합된 건지 모르겠다. 위원장이 지금 부대사항으로 한다는 뜻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아니라면 분명히 해야 한다. 이건 기타 의결사항이다. 즉 심의안건은 두개다. 하나는 2016년 최저임금 심의안건이고 두 번째가 기타로 해서 사업의 종류 별 구분 관련 연구용역 발주 건이다. 회의 절차에 맞게 해야 한다.
사용자위원4 : 이게 왜 기타야. 그럼 가구생계비 연구용역 건도 기타로 넣어.
지난 번 노동자 폄하 발언과 노동자위원에게 욕설을 한 사용자위원은 또 반말을 했다. 이미 결론 난 안건을 트집 잡으며 사용계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다. 하나를 줬으니 하나를 양보하라는 식이다. 노동자위원은 안건 상정 절차가 잘못된 거 같으니 운영규칙 등의 근거를 확인해줄 것을 위원장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적 회의장에서 거래가 웬 말이냐
운영위와 정회를 반복한 끝에 후퇴한 결론을 내렸다. 만장일치로 합의된 가구생계비 연구용역 건을 원점으로 돌리고 각종 연구용역 건을 제도개선 과제로 묶어 넘기게 됐다. 사용계의 주고받는 일괄거래 방식이 먹혀든 결과다.
가구생계비를 조사하여 최저임금 심의의 참고자료로 삼는 것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제도적 진전이었던 반면, 업종별 차등적용은 임금 하한선마저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사회 분열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한 발상이었다. 또한 National Minimum Wage라는 최저임금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큰 문제였다. 경중도 다르고 파장도 다른 둘을 일괄로 묶어 거래하는 사용계의 협상 방식이 참 후졌다.
사용계가 업종별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을 관철시킬 의도였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했어야 하지만, 모두가 곤란해 할 만큼 사용계가 준비한 차등 적용의 근거는 부실했다. 몇 년 동안 주장해왔던 것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건, 관철시킬 의도 없이 거래의 무기로 사용할 요량이라는 의미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노동계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원자폭탄 수준의 노동시장 분열 정책이다. 사용계의 공격에 올해는 가구생계비 연구용역을 포기했지만, 내년, 내후년에도 어떤 중요한 걸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사용계의 물타기 공격을 막고 방어할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
정말 열 받는 회의였다. 위원장은 사용계의 물타기를 사실상 용인하며 회의를 진행했고, 사용계는 전략한 대로 노동계와 공익위원들의 합리적으로 판단했던 가구생계비 연구용역 건 합의를 후퇴시켰다. 400만 최저임금노동자를 대표하기에도 부족한 27명 위원들의 결정과 논의 맥락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사용계와 위원장은 자격이 없다. 특히 위원장의 회의진행 방식이 심히 우려스럽다.
노-사의 수정안을 확인하고 회의를 마쳤다. 장작 8시간에 걸친 긴 회의였다. 법정 의결 시한도 많이 지났다. 이제 세 차례 회의가 남았다. 다음 주 월, 화, 수 연속으로 잡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될 예정이다.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합당한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 있도록 회의장 밖에서 많이 응원해주길 바란다.